이번주 팟캐스트 9회는 ‘환관’ 이야기입니다.
‘문고리 권력의 원조…. 환관 그들을 위한 변명’ 입니다.
중요 부위를 스스로 자르거나, 혹은 형벌을 받아 잘린 남성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기>라는 불후의 역사서를 쓴 사마천도 궁형을 당한 뒤 ‘치욕’이라는 낱말을 19번이나 쓰면서 괴로워했답니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는 것보다 더 엄청난 치욕은 없다. 하루에도 창자가 9번 끊어지는 것 같다”고 괴로워했답니다.
사마천이야 강제로 잘렸다지만 환관이 되려고 스스로 자른 남성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은 왜 사마천의 말마따나 ‘몸이 망가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잘라야 했을까요. 명나라 공식역사서를 보면 명확한 이유가 나옵니다.
“환관은 황제의 배후에서 황제를 조종해서 권세를 장악했다. 그 위세가 구족에 이른다.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너도나도 자식 손자들을 거세시켜 부귀를 꿈꾸는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황제의 문고리를 잡는다는 뜻이 아닐까요.
문고리 정치의 원조는 누구였을까요.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주인공이죠. 바로 기원전 210~207년 사이 진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환관 조고였습니다.
조고는 황제의 어가를 책임지고, 황제의 옥새를 관리하고, 끝내는 궁궐의 출입을 통제하는 직책을 맡아 국정을 농단했습니다. 이로써 황제와 신하, 황제와 백성들 간의 소통은 끊어졌습니다. 황제와의 ‘소통의 문’을 쥐고 흔든 문고리 권력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명나라를 두고 흔히 환관의 나라라 합니다. 내로라 하는 환관들이 악명을 떨쳤습니다.
‘만세’를 연호한다는 황제의 권세에 비견된다며 ‘구천구백세’를 외치게 했다는 환관 위충현의 권세는 어땠을까요. 당대 사람들은 위충현과 그의 내연녀 객씨의 권세를 황제보다 더 높이 평가했답니다. 또 있습니다. 환관 유근 역시 백관들에게 단체기합을 줄 정도로 위세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권세는 아침이슬처럼 덧없이 사라졌습니다.
조고는 삼족을 멸하는 극형을 받았고, 위충현은 천참만륙(千斬萬戮), 즉 천갈래 만갈래 찢기는 형을 받았습니다. 유근은 무려 3357회의 칼질형을 받았습니다.
자, 이제 환관들의 슬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관련기사>
거세된 남성 환관…그들을 위한 변명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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