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는 어립니다. 조정에서 대신들과 정사를 논하면 폐하의 단점만 보일 겁니다. 이제부터는 폐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원전 209년 환관 조고가 허수아비 황제(진 2세 호해)에게 수근댔다. “천자를 ‘짐(朕)’이라 부르는 이유를 아느냐”는 것.
 짐(朕)이란 단어는 ‘징조’ ‘조짐’의 뜻이어서 무슨 일인지 아직 모른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천자의 일을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는 게 조고의 수근거림이었다.
 무슨 뜻이냐. 한마디로 조고는 황제와 다른 대신들과의 소통을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진 2세는 늘 구중궁궐에 쳐박혀 있었고, 모든 국사는 환관 조고의 수중에 떨어졌다.  

 

■황제의 어차와 옥쇄를 수중에
 환관 조고의 일화가 바로 ‘문고리 정치’의 가장 악명높은 사례가 됐다.
 이 비극은 대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이 전국 순행중 어이없이 붕어하면서 시작됐다.
 진시황의 행차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이는 세사람이었다. 황제의 다섯째이자 막내아들인 호해(胡亥)와 그 호해에게 형법을 가르쳤던 환관 조고, 그리고 승상(총리) 이사 등이었다.
 진시황에게는 20여 명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입바른 소리를 잘했던 맏아들 부소(扶蘇)는 변경으로 쫓겨나 있었다. 460여 명의 방·술사를 생매장한 이른바 갱유사건 때 “아니되옵니다”를 연발하다가 추방된 것이었다. 반면 막내아들 호해는 시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시황제는 5번째였던 기원전 209년의 순행 때 막내 호해 만을 데려간다.
 환관 조고는 바로 중거부령(中車府令)과 부새령(符璽令)을 겸직하고 있었다.
 중거부령은 무엇인가, 바로 궁중의 어차와 가마를 총지휘하는 직책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조고는 옥새를 출납하는 책임을 맡은 부새령을 겸직하고 있었다.
 무슨 뜻인가. 조고는 ‘중거부령’으로서 황제의 손과 발이 되었고, ‘부새령’으로서 황제의 명에 날인하는 결제도장을 수중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엄청난 권력이 아닌가. 황제의 최측근 세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황제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때는 그런 권력이 무용지물이었다.

 

 ■유언을 조작하라!
 그러나 시황제의 5번째 순행, 즉 현장지도가 제국의 운명을 갈라놓았다.(기원전 210년)
 황제가 순행 도중 중병에 걸린 것이다. “황제의 행방을 절대 알리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 시황제는 최측근인 환관 조고를 부른다. 죽음을 예감한 황제가 조고를 시켜 유언을 담은 밀서를 작성시킨 것이다.
 ‘맏아들 부소는 어서 함양(진나라 수도)으로 돌아와 장례를 받들라.(與喪會咸陽而葬)’ 
 한마디로 자신이 죽고나면 황위를 맏아들 부소에게 전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고는 이 유언을 부소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 해 7월 시황제는 결국 순행도중 붕어하고 만다. 한마디로 객사한 것이다. 이때부터 황제의 가마를 담당하고, 황제의 옥새를 관리하는 조고의 흉계가 착착 진행된다.
 조고는 우선 황제의 시신이 함양으로 운구될 때까지 황제의 죽음은 철저하게 비밀로 부친다.
 조고는 황제의 어차인 온량거(온梁車)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황제의 죽음을 아는 이는 아들 호해와 환관 조고, 승상 이사 등 5~6명에 불과했다. 승상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제국을 건설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결국 조고의 회유와 협박에 못이겨 타협하고 말았다.
 이들은 시신 썩는 냄새와 구별하지 못하도록 소금에 절인 생선을 온량거에 가득 넣었다.
 조고는 마각을 드러낸다. “정권이 맏아들 부소에게 가면 우리 모두 죽는다”면서 호해와 이사 등을 설득한다.
 세 사람은 맏아들 부소에게 전달될 밀봉편지를 뜯어 내용을 조작한다.
 “참소를 일삼는 부소는 어서 자결하라.”
 황제의 옥새가 찍힌 ‘조작된 밀서’가 변경에서 만리장성을 지키던 맏아들 부소에게 전달된다. 아버지가 죽은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부소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자진하고 만다.

 

 ■대궐의 문고리를 잡다
 결국 막내아들 호해는 21살의 나이에 환관 조고의 음모 때문에 2세 황제가 된다.
 제국의 권력을 틀어잡은 조고가 한 일이 있었다. 스스로 낭중령(郎中令)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낭중령’이 무엇인가. 대궐의 문호(門戶)를 관장하는 직책이었다. 조고가 권력을 잡자마자 ‘낭중령’에 취임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대궐의 출입을 관장한다? 이것은 황제와 대신들 간의 통로를 틀어쥔다는 것이다.
 ‘중거부령’과 ‘부새령’의 직으로 황제를 멋대로 뒤바꿔 권력을 찬탈해놓고, ‘낭중령’의 직으로 새 황제의 눈과 귀를 막고 대신들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그야말로 구중궁궐의 문고리를 차지, 권력의 문고리를 독점한 것이다. 이를테면 ‘문고리 1인방’이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진나라는 조고의 나라가 됐다.
 우선 2세 황제에게 “살아있는 황족을 모두 죽이라”고 건의했다. 이로써 공자 12명이 시장바닥에서 도륙 당했다. 공주 10명은 기둥에 묶어 창으로 찔러 죽였단다.
 또 50만 명을 투입, 아방궁 공사를 재개했다. 반대여론에는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은 하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인데 무슨 잔소리냐”고 호통쳤다.
 이를 두고 후한의 명제는 “이는 사람의 머리로 짐승 울음을 내는 것(人頭畜鳴)”이라면서 혀를 끌끌 찼다.

 

 ■문고리 권력의 최후
 변방의 부역에 징발도 끊이지 않았다. 연좌제로 처벌이 강화됐다. 길 가던 백성의 절반이 전과자가 됐다. 형벌을 받은 자의 절반이 죽어 시장바닥에 쌓였다.
 세금을 많이 걷고, 사람을 많이 죽이는 자가 ‘현명한 충신’이 됐다.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던 승상 이사(李斯)도 결국 역모죄로 옭아매 죽였다.
 이 무렵 조고가 2세 황제에게 했다는 말이 바로 “폐하는 팔짱만 끼세요. 정무는 제가 더 처리할게요”라는 말이었다.
 조고의 탐욕은 파국을 불렀다. 아예 2세황제를 쫓아내고 스스로 황제가 될 꿈을 꾼 것이다.
 이 때 그 악명높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등장한다. 모반을 목전에 둔 조고가 사슴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이 동물은 말입니다.”라고 우겼다는 바로 그 고사 말이다.
 어리석은 황제가 “이게 사슴이지 무슨 말(馬)이냐”고 했지만, 상당수의 대신들은 조고를 좇아 “말이 맞다”고 했다는….  
 황제는 결국 조고의 압박에 못이겨 자결하고 말았다. 하지만 천하를 움켜쥘 것처럼 보였던 조고 역시 허망한 죽음을 맞는다.
 억울하게 자살한 진시황의 맏아들인 부소의 장자(자영)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 3족이 주살된 것이다.
 어렵사리 황위에 오른 자영(진시황의 장손자)은 나름 무너져가는 진나라 제국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천하는 이미 유방과 항우의 2파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진나라는 불과 3개월 만에 멸망하고 만다.(기원전 206년) 진시황이 통일제국을 세운지 불과 15년 만에, 환관 조고가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한 지 3년 만에….
 ‘중거부령(황제의 어차관리)’, ‘부새령(황제의 옥새관리)’, ‘낭중령(궁궐의 문호 관리)’ 등으로 상징되는 ‘문고리 권력’의 처음과 끝은 이렇게 비참했다.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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