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68)는 스포츠계의 상식을 초월한 인물이다.
하루 8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체인스모커였다. 경기 중 전반이 끝나고 하프타임 때가 되면 잽싸게 담배를 피워댔으니 말이다. 훈련도 빼먹기 일쑤였다.
시건방도 무진장 떨었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훈련에 관심도 없으면서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월드컵 축구를 시청하느냐는 질문에 “없다. 날 TV 앞에 앉혀놓을 유능한 선수가 없으니까…”라 너스레를 떨었다.
슈퍼스타의 상징인 9번이나 10번 대신 14번을 단 이유를 두고는 “9번은 디 스테파노, 10번은 펠레가 이미 달고 있으니까 헷갈릴까봐”라 으쓱댔다. 그랬으니 ‘게으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디 스테파노-펠레-크루이프-마라도나로 이어지는 레전드 계보에 빠짐없이 올라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지저스 크루이프 슈퍼스타’라는 뮤지컬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만큼 숭배의 대상이다.
아약스·네덜란드 대표 선수와 바르셀로나 감독으로서 이룬 성공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크루이프는 1970년대초 리누스 미켈(Rinus Michels) 감독이 구상한 ‘토털풋볼’을 그라운드에서 완성한 축구혁명가였다. 그가 언급한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축구’는 단순한 시건방이 아니라 ‘토탈풋볼’을 일컫는 개념이었다.
“머리를 써야 토탈풋볼을 구사할 수 있다. 공수전환 때 조직적으로 움직여 공간을 메워주려면 체력보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두뇌플레이가 중요하다.”
이전까지는 ‘공격 따로, 수비 따로’인 개인기와 드리블 위주의 축구였다. 하지만 토탈풋볼은 공격수와 수비수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공간을 유기적으로 메워주고 최전방부터 철저한 압박으로 상대공격을 원천봉쇄하는 전술이다.
20~30m의 좁은 지역에서 ‘없는 공간’을 장악하려니 선수들 간의 두뇌플레이가 필요했다. 이렇게 완성한 토탈풋볼 덕분에 ‘압박’ ‘오버래핑’ ‘오프사이드 트립’ 같은 현대축구의 전술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그렇게 펠레·마라도나와는 또 다른 차원의 축구영웅인 크루이프가 폐암 투병 중이다. 아무래도 젊을 적 피웠던 담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의 축구철학처럼 ‘이길 때도 아름답게 이겨주기’ 바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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