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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호빗, 인간과 비인간 사이

 지난 2003년,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650㎞ 떨어진 플로레스섬의 리앙 부아 동굴에서 수수께끼 같은 화석이 발견됐다. ‘호미닌(인류의 총칭)’ 화석이었다.
 과학자들은 화석에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 ‘호모 플로렌시스’라고 한 뒤 ‘호빗(hobbit)’이라는 애칭을 달아주었다. ‘호빗’은 1937년 발표된 J R R 톨킨의 소설(<호빗>)에서 처음 등장하고,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된 난쟁이족이다. 이 화석은 어른 여성의 것이었는데, 키가 약 1m 가량의 단신이었다. 뇌의 용적이 불과 420CC였다. 그래서 호빗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호빗의 연대는 9만5000년 전~1만7000년 전 사이였다. 과학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모 플로렌시스’ 화석을 복원한 모습. ‘호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도서출판 주류성 제공

■호빗족의 정체 
 인류가 진화하면 할수록 키와 뇌의 용적이 커진다는 게 정설인데…. ‘호빗’의 키(1m)는 200만 년 전의 화석인 루시와, 뇌용적은 침팬지(400CC)와 각각 비슷한 것이다. 인류의 진화사에서 이런 종이 발견된 예가 없었다. 논쟁이 붙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호빗’을 특이한 인류라 했다. 현생인류는 맞지만 비정상적인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작은 뇌를 갖고 태어났거나, 아니면 장애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아예 ‘호빗’을 하나의 종으로 편성·분류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고인류의 하나인 호모에렉투스(자바 직립원인)가 진화한 것이 아니냐고 보았다.
 즉 자바직립원인이 플로레스 섬에서 고립적으로 진화한 종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덩치가 컸던 동물들이 마다가스카르와 크레타 섬 등에 살게 되면 덩치와 두뇌가 작아진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고립된 섬에서는 큰 두뇌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먹을 거리는 부족한데 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할 두뇌가 크다면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10년 전에 발견된 인도네시아 호빗족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떻게 하든 살아남는 인류의 무한능력이다. 진화과정에서 부담이 된다면 과감하게 키를 줄이고, 그 큰 두뇌까지 줄일 수  안다는 점에서…. 호빗처럼….

 ■맹수에 물리고…
 최근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What does it mean to be Human?)>(리차드 포츠 외·주류성)를 번역한 배기동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와 함께 ‘인류의 기나긴 여정’을 살펴보자.   
 알다시피 신체구조상 인류는 나약하기 이를 때 없는 존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몸집이 큰 것도 아니요, 송곳니나 발톱이 날카로운 것도 아니다. 특히나 초기 인류는 외부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예컨대 1948년, 남아프리카 스와르트크랜스 동굴유적에서 수천 점의 동물뼈가 발견됐다. 그 가운데는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라는 이름이 붙은 인간의 화석이 포함돼 있었다. 18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였다. 인골을 관찰하던 과학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이 있었다.
 젊은 고인류의 두개골에 두 개의 작은 둥근 구멍이 포착된 것이다. 이 두 개의 구멍은 동굴에서 발견된 표범의 송곳니와 동일간 간격으로 나 있었다는 것이다. 동굴에서는 당대 주요 단백질원이던 개미의 집을 파헤쳤던 뼈도구가 확인되기도 했다. 무슨 뜻일까. 표범이 개미집을 파고 있던 고인류를 공격해서 두개골에 치명상을 입혀 죽였다는 증거인 것이다.
 1985년부터 조사된 케냐의 올로게세일리 유적에서는 주먹도끼가 2300여 점이나 널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지대인 이곳에서 인류의 화석이 전혀 발굴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고민에 빠졌던 발굴단은 인근 물가의 저지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90만 년 된 초기 인류의 두개골 화석을 발견했다. 이 인골을 자세히 살펴보자 식육맹수의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대의 초기인류는 안전한 고지대에서 터전을 잡고 살다가 먹을거리를 구하려 물가의 저지대를 내려왔을 때 맹수들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는 얘기입니다.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다가 비명에 간 초기인류의 비참한 최후가 화석에 담겨있는 것이죠.”(배기동 교수)
 이 뿐이 아니다. 280만 년 전 인골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어린 아이의 두개골인데, 눈 주변에 맹금류의 부리자국이 선명하다. 주변을 달던 독수리가 천진난만하게 놀고있던 아이를 먹잇감으로 채 갔을 것이다.  

180만년전 호모 하빌레스의 발목뼈. 윗부분에 악어가 물어뜯은 자국이 선명하다. 아마도 물려죽었을 것이다.|주류성 제공

■질병에 시달리고…
 인류의 또 다른 적은 질병이었다. 케냐 투르키나 호수 동쪽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180만 년 전)’ 성인여성의 뼈는 비정상적이었다. 연구결과 변형된 여성의 뼈는 비타민 A의 과다섭취로 인한 고질병이었다. 이 여성은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분석은 흥미로웠어요. 맹수의 간에는 인간에게 독이 될 정도의 비타민 A가 축적돼있는데 여성은 그것을 잘못 먹었다는 겁니다, 경쟁자들, 즉 다른 식육동물과의 싸움에서 이겨 그 고기를 먹을 수는 있겠지만…. 이 여성은 재수없게도 비타민 A를 과다섭취하게 된 거죠.”(배기동 교수) 
 잠비아의 카베에서 나온 두개골에서는 인류사상 최초의 ‘충치’와 같은 치과질환을 목격할 수 있다. 이 두개골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35만 년 전)의 것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공동조상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유럽의 갈래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아프리카의 갈래는 현생인류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각설하고, 어쨌든 카베의 두개골의 옆머리 부분에 생긴 작은 구멍이 두개골의 안쪽에 큼직한 함몰부를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치아질환 혹은 중이감염의 증거라고 한다.
 
 ■화산폭발에 절멸의 위기 겪고…
 홍수와 가뭄,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도 약하디 약한 인류를 괴롭혔다.
 “지금 현생인류가 70억명에 육박하지만 한 때(7만년 전 무렵)는 멸종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인류로서는 크나큰 위기를 넘긴거지요.”(배교수)
 무슨 말인가. 사실 사람들의 외모는 다양하지만, 유전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균질하다. 반면 인간과 98.9%의 유전자를 공유한 침팬지는 사람보다 숫자도 훨씬 적고, 사는 장소도 작다. 그러나 유전적으로는 미토콘드리아 DNA나 세포핵 DNA가 훨씬 다양하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진화의 다양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인간 집단들은 하나의 조상을 갖고 있는데, 이 하나의 조상은 과거에 상당기간 아주 작은 집단이거나 혹은 과거에는 큰 규모였지만 언젠가 급격하게 줄어든, 이른바 병목현상을 겪었다는 겁니다.”(배교수))
 과학자들의 Y염색체 분석에 따르면 9만~6만년 사이에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일찍 죽거나 자손을 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멸의 위기를 겪은 것이다. 그러니 절멸의 위기에서 빠져나온 극소수의 조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므로 유전적으로 균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은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자연재해라는 설이 많다.
 “특히 7만4000년 전 일어난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의 폭발을 주목하는 이들이 있어요. 엄청난 규모의 화산재와 화산암이 동남아를 뒤덮었고, 유럽도 기온이 하강했으니까….”(배교수)
 아닌게 아니라 토바 화산이 폭발하자 무려 2,800㎦의 마그마와 화산재가 분출됐다. 이 때의 화산폭발지수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8’이었다고 한다. 이 때의 화산폭발로 지구는 핵겨울로 접어들었다.
 기원후 61년 폼페이를 최대 두께 6m로 순식간에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이 뿜어낸 화산재의 용량은 불과 2㎦였다. 2㎦(비수비오)와 2800㎦(토바). 토비 화산의 폭발은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비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류는 이때 절멸의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남아공의 스와르트크랜스에서 확인된 180만 년 전 고인류(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의 화석. 표범의 송곳니가 고인류의 두개골을 정확히 찍어 치명상을 입혔다.|주류성 제공

■직립보행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1969년 7월20일 에드윈 올드린·마이클 콜린스 등과 함께 아폴로 11호를 탔던 닐 암스트롱이 달표면에 첫발을 내디디며 역사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우주시대의 개막을 알렸으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1978년 아프리카 대륙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또다른 의미의 ‘인류의 첫발’이 발견됐다. 360만 년 전 고인류가 남긴 발자국들이 확인된 것이다.
 이 발자국들은 바로 인류 직립보행의 획기적인 서막을 연 ‘위대한 발자국’이었다. 단단한 화산재 속에 남아있는 발자국은 이 자리에서 세 명의 고인류가 꼿꼿하게 서서 앞으로 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이 세명의 고인류는 360만 년 전의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라 할 수 있을까.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류가 면면히 그 맥을 이어가며 끈질기게 살아 남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다못해 신체조건이 열악하기 이를데 없는 난쟁이 ‘호빗족’ 마저 6만년 가까이 터전을 잡고 생존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인류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직립보행이었다.
 다 알다시피 인간은 두 다리로 곧추 서서 걷게 됐고(직립보행), 그에 따라 손이 자유로워져 도구를 제작할 줄 알게 되었으며, 큰 두뇌를 갖고 상징과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일한 동물이다.
 예컨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크기와 두뇌의 용적이 침팬지와 비슷했다. 하지만 직립해서 걸을 수 있었다는 그 장점 하나만으로 무려 200만년 이상 존재했다.(420만 년 전~200만 년 전) 

치명적인 치아감염으로 숨진 것으로 보이는 호모 하이델베르크인의 화석. |주류성 제공

■노인부양의 뿌리
 지난 2001년 조지아 공화국의 드마니시 유적에서 178만 년 전에 살았던 늙은 남성의 화석이 발견됐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화석에서 윗턱과 아랫턱의 뼈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늙은 남성의 이빨이 이미 죽기 전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살아있을 때 이미 이빨이 빠져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이빨이 없으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그것은 바로 소속 구성원 가운데 젊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두고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부양(扶養)의 증거’라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놀랍지 않는가. 공자가 효(孝)를 인간의 덕목이라고 한 것이 불과 2500년 전 인데…. 이미 178만 년 전에 부모를 공경하고 부양하는 효의 사상이 시작됐다는 것인가.

 ■주먹도끼와 협동사냥
 케냐의 올로게세일리에 유적(90만 년 전)에서 발견된 2300여 점의 주먹도끼들은 무엇을 웅변해주는 것일까.
 주먹도끼는 선사시대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 즉 ‘다목적 주머니칼’이었다. 이 도구는 정교한 자르기 작업부터 나뭇가지를 쳐내는 기능까지 겸할 수 있었던 ‘맥가이버칼’이었다. 프랑스 ‘생 아슐(St Acheul)’ 지역에서 맨처음 나왔다고 해서 아슐리안 주먹도끼라 한다. 유적 조사단은 이 주먹도끼들과 함께 발견된 완전한 형태의 코끼리뼈를 확인했다. 코끼리의 갈비뼈와 목뼈, 척추뼈 등에서 날카로운 자국, 즉 도살흔이 발견됐다. 또한 근처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됐다. 이는 곧 90만 년 전 이곳에서 살았던 고인류가 힘을 모아 정교한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제작했고, 또 공동으로 자신의 몸보다 120배나 큰 코끼리를 사냥해서, 해체한 뒤 음식자원으로 확보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직립보행의 증거로 남은 360만 년 전 고인류의 발자국. 탄자니아 라에톨리 유적에서 발견됐다. 닐 암스트롱의 ‘위대한 도약’에 비견되는 발걸음이다. |주류성 제공

■인류최초의 장례식
 1950년대와 60년대 조사된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유적에서 흥미로운 유적과 유물의 양상이 보였다.
 수많은 석기들과 도살된 동물뼈들의 재가 쌓인 화덕자리가 노출됐다. 6만5000년~4만5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뼈들도 보였다. 그들의 뼈에는 다치고 병든 흔적들이 역력했다. 부상 후에도 오랫동안 치료한 흔적도 보였다. 이들은 동굴의 천정에서 떨여져 쌓인 석회암 더미에 낮은 구덩이를 파고 죽은 사람을 매장했다. 문제는 이 무덤의 흙에서 소나무와 전나무의 흔적이 확인됐고, 꽃가루 뿐 아니라 꽃술도 포함돼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쥐나 새 같은 동물들이 꽃가루를 옮겨왔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무덤이 너무 동굴 깊숙한 곳에 있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사람 위에 꽃과 소나무·전나무를 올려놓고 형형색깔의 꽃을 헌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장례식이 아니었을까.
 이런 것들이야말로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짓는 단적인 예들이다. 나약한 인간이 비인간을 넘어설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나 할까. 

 ■전쟁은 없었다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앞서 설명한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유적에서 확인된 3구의 네안데르탈인 인골 중 하나이다. 이 인골의 왼쪽 옆구리는 예리한 첨두석기에 찔려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 누군가 이 네안데르탈인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의도적인 살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인골 외에는 그 어떤 화석 인골에서도 살인이나 전쟁에 의한 대량살상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를 탈출한 현생인류가 대륙의 네안데르탈인을 몰살시킨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간 전쟁을 벌였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당대에 그려진 벽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종 간의 ‘전쟁도(戰爭圖)’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한 장소에서 전쟁 등의 이유로 사람들을 대량학살하는 그런 참상은 우리 현대인들에게만 볼 수 있는 아주 최근의 현상이라 볼 수 있어요.”(배교수)
 그렇다. 다툼없이 오손도손 수백만년을 살아갔던 인류였는데…. 만물의 영장소리를 들으며 생태계의 ‘최상위 계급’으로 등극하자 이제는 저희들끼리 물고뜯는 약육강식의 포식자로 전락한 것이다. 금수와 다름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수백만년 지켜온 인류의 평화를 한순간에 날려버린…. |경향신문 문화에디터 겸 스포츠경향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