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팟캐스트입니다.
이번 주는 '우리 역사 속의 환관 이야기'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조에 처음 환관의 기록이 보입니다. 사실 우리 역사를 훑어보면 중국처럼 환관을 대량으로 양성하고 기용하고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궁형이나 자궁(스스로 거세)을 통해 환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답니다. 다만 어릴 때 개(犬)에 물려 고자가 된 케이스가 훗날 환관이 되었다고 하네요. 물론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 황제의 조칙에 따라 환관을 만들어 중국에 보내는 경우가 있엇다고 하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도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환관들이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고려 의종 때 환관 정함은 사치향락과 황음에 빠진 의종을 대신해 권력을 마음껏 주물렀습니다. 오죽했으면 “나라의 권세가 모두 고자(정함)에게 있구나!”하는 한탄이 개경거리에 울려퍼졌다고 합니다. 정함을 비롯한 환관들의 득세는 결국 무신란이라는 왜곡된 역사를 불러오는데 일조했습니다.
원나라 간섭기에는 원 조정에서 출세한 환관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원나라 황태후의 총애를 받았던 환관 방신우가 있었는데요. 방신우가 비록 거들먹거리기는 했지만 고려라는 국호를 잃을 위기를 넘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답니다.
조선조가 개국해서 뜻있는 대신들이 환관의 폐해를 설파하고 환관혁파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했습니다. 그러나 최측근의 자리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환관들을 임금은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필요악이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김사행과 조순 등은 조선초 공신의 반열에 오를만큼 득세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환관들의 말로가 그랬듯이 임금의 사랑이 식거나 임금의 힘이 떨어지거나, 혹은 임금의 죽으면 급전직하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김사행과 조순은 목이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환관은 연산군 조의 환관 김처선이었을 겁니다.
김처선은 연산군이 무오사화·갑자사화 등을 일으켜 대대적인 ‘사람 사냥’에 나설 때 바른 소리를 했답니다. 그러다 결국 죽음을 각오하고 연산군의 면전에서 “그만 좀 하시라”고 맞서다 비참한 죽음을 당했답니다. 연산군이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김처선의 ‘처’자를 씨는 모든 이름과 모든 관직을 없애버리라는 엄명을 내렸답니다.
중종반정이 일어났지만 비참하게 죽은 김처선을 선양하는 작업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환관 주제에 임금에게 대든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환관의 존재를 폄훼한 것이지요. 그러나 연산군의 횡포에 그토록 당당하게 대든 사대부가 과연 몇이나 있습니까.
환관 이야기의 끝은 결국 환관을 위한 변명이 되었군요.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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