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프로페셔널…안대회|휴머니스트
일찍이 박제가 선생은 벽(癖)이 없는 인간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쳤다. 여기에 치(痴)를 하나 더 붙이자. ‘벽과 치’. 이덕무 선생이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읽는 바보라는 호를 지은 이유다. 요즘 말로 한다면 ‘마니아’ 혹은 ‘폐인’이라 할까. 뭐 그런 뜻으로 한다면 10년 이상 고전에 빠져 불과 한달 반 만에 책을 두 권 내는 등 내공을 뿜어내는 저자야말로 ‘벽과 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각설하고 저자는 ‘벽과 치’, ‘마니아와 폐인’을 ‘프로페셔널’이라 칭했다.
저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카스트적인 신분사회질서가 횡행했던 조선에서 독보적인 ‘벽과 치’로 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이들의 삶을 발굴하는 일 또한 지난한 작업이었을 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먼저 18세기 국수에 올랐던 정운창이란 분을 보자.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아 잠깐! 조남철(부안)·조훈현(영암)·이창호(전주)·이세돌(비금도) 국수도 모두 백제계 아닌가. 한성백제가 서울을 앗긴 것도 개로왕이 바둑에 탐닉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바둑 하나로 대를 풍미했던 삶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조선의 엄홍길·박영석이라 할 수 있는 등반가 정란, 술주정뱅이·환쟁이·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붓으로 세상을 탄생시킨 최북, 조선의 다빈치라는 조각가이자 천문학자이자 지도학자인 정철조, ‘종놈’의 신분으로 맑고 고고한 시를 남긴 천재 문인 이단전 등 프로페셔널 10인의 삶을 담았다.
저자의 표현대로 ‘벽과 치’와 어울리는 단어는 광(狂), 나(懶), 오(傲)인 것 같다.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린다며 눈을 찔러버린 최북은 제 손으로 귀를 자른 반 고흐를 어쩌면 쏙 빼닮았을꼬. 술에 젖어 산 정철조는 소주와 막걸리를 섞어 이른바 혼돈주를 즐겼으니 그야말로 폭탄주의 원조격이다. 하지만 그들의 ‘벽과 치’, 그리고 ‘광과 나와 오’를 받아준 조선의 사회도 대단하다. 생면부지의 ‘종놈’이 건넨 시집을 보고, 그 자리에서 벽도화(碧桃花)를 건넴으로써 천재시인을 인정해버린 재야문단의 권력 이용휴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가지 더. 왕(영조)의 전속 기술자가 된 최천약을 빼놓고는 제대로 돈을 번 이들이 거의 없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밥벌이도 못하는 조선의 프로페셔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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