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960년 사위청문회 통과한 응렴(경문왕)…'엄청 예쁜' 둘째공주 점찍었지만 ‘경문대왕님(景文大王主), 문의황후님(文懿皇后主), 대랑님(大娘主)이 석등을 세웠다’. 전남 담양군 남면 학선리의 개선사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통일신라시대 석등(보물 제111호 개선사석등)이 서있다. 높이가 약 3.5m나 되는 석등의 8각 기둥에는 해서체로 쓴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 미뤄볼 때 석등건립연대는 868년(경문왕 8년)이 분명하고, 명문은 891년(진성여왕 5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남 담양 개선사터에 있는 석등의 1933년 모습. 석등의 8각기둥에 해서체로 쓴명문이 새겨져 있다. 신라 경문왕와 부인인 문의황후, 그리고 대랑(대낭)이 석등을 조성했다는 내용이다.|김창겸 교수 제공 그렇다면 ‘경문왕과 부인인 문의황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랑’은 누구일까. 왕와 왕후.. 관청 노비에서 세종의 후궁으로 깜짝 출세한 여인…왕후보다 더 행복했다 역사는 히스토리, 히스토리는 이야기입니다.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보는 코너, 이기환의 ‘하이-스토리’ 시간입니다.세종을 흔히 만고의 성군이라고 합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업적과 함께 세종의 일거수일투족도 인구에 회자되었죠. 그렇다면 세종을 둘러싼 여인들은 어떨까요. 한번 알아볼까요?세종은 2살 연상의 소헌왕후 심씨(1395~1446)를 비롯해서 모두 여섯분의 부인을 두었습니다. 정부인인 소헌왕후와의 사이에는 8남 2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영빈 강씨(1남)·신빈 김씨(6남)·혜빈 양씨(3남)·숙원 이씨(1녀)와 궁녀인 상침 송씨(1녀) 등 다섯분의 부인들이 더 있었고, 그 분들과의 사이에 10남2녀를 더 두셨습니다. 슬하에 총 18남4녀를 두신 거죠.경기 화성 남양동에 있는 신빈.. 우월한 유전자 갖춘 '18남 4녀' 세종의 자식들…한결같이 똘똘했다 흔히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재위 1400~1418)은 왕권을 강화하고 신생국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국왕으로 꼽힌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태종에 남긴 ‘불멸의 업적’을 꼽으라면 바로 ‘세종대왕’을 낳고, 세종대왕을 후계자로 바꿔 삼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재위 1418~1450)은 어떨까.놀라지마라. 세종은 정부인과 8남 2녀, 후궁까지 합하면 무려 18남 4녀를 두었다. 훈민정음 창제와, 4군6진 개척과 쓰시마(對馬島) 정벌, 측우기·자격루 등 과학기기 발명, 17만명 국민투표에 의한 공법실시, 농사직설 간행 등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업적을 쌓은 임금이 아닌가. 그런 분이 이렇게 자식복까지 많으니….(보물 제966호). 세종의 둘째딸인 정의공주가 죽은 남편 안맹담(1415~1462)의 명복을.. 끔찍한 '고양이 집사' 숙종 임금의 달콤 살벌한 두 얼굴 고양이는 주인을 자기 자신과 동격이나 심지어는 자기 집을 관리하는 집사 취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 하고, 주인은 고양이를 ‘주인님’이라 한다죠. 재미있는 건 약 250년 전의 저작인 이익(1681~1763)의 은 바로 그러한 고양이의 습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고양이를 잘 그려 변묘(卞猫)라는 별명을 얻은 변상벽의 ‘묘작도’. 고목 위의 참새들을 향하여 나무를 기어오르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고양이와, 웅크리고 앉은 채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는 고양이를 소재로 다루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숙종의 퍼스트캣 ‘김손(김묘)’“고양이는 여러 해를 길들였다 해도 하루 아침만 제 비위에 틀리면 주인도 아는 체하지 않고 가버린다.”제가 고양이 집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사마천 소동파도 낙방했다"…김홍도 풍속도가 고발한 과거시험 '난장판'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풍속화인데,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다. 일산(혹은 우산)이 마당을 뒤덮었고, 일산마다 5명에서 6~7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뭔가를 작당하고 있다. 그 사이 어떤 이는 행담(行擔·책가방)에 기대어 쪽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그림 윗부분의 표암 강세황(1713~1791) 글이 흥미롭다.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전성기인 30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공원춘효도’. 조선 후기 과거제도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고발·풍자하는 풍속화이다. 1952년 미해군이 가져갔던 작품이며, 미국 개인소장가가 갖고 있던 것을 이번에 서울옥션이 구입환수해서 경매에 내놓았다. 표암 강세황의 제발이 눈에 띈다. 봄날 새벽(춘효·春曉)의 과거장(공원·貢院) 풍경이라는 글이다. |서울옥션 제공 “봄날 새벽 과거시험장.. 엎어져있던 인수봉 계곡 바위, 뒤집어보니 고려 불상이었네 2015년 5월 북한산 인수봉이 빤히 올려다보이는 계곡에서 희한한 바위가 보인다는 이야기가 자원봉사자와 북한산 구조대 사이에서 돌았다. 그냥 돌 같은데 누군가 정교하게 깎은 흔적이 역력했다. 석불 같기는 한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국립공원공단 북한산국립공원측이 고양시와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수봉 계곡에 엎어져있던 바위를 뒤집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2015년 발견되었던 인수봉 석불입상. 그러나 그때는 몸통이 엎어져 있어서 불상인지 확인하지 못했다.|수도문물연구원 제공북한산국립공원측은 올해 북한산 지역의 비지정문화재 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북한산국립공원 측은 구조대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산에서 금석문이 새겨진 .. "저 자 땜에 담뱃대를 뺄까"…명재상 채제공을 충격에 빠뜨린 두 학생의 비아냥 역사를 이야기로 만나보는 이기환의 ‘Hi-story’입니다. 지난주 1618년(광해군 10년) 무렵 조선에 들어온 담배가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다고 했는데요. 최초의 흡연가인 계곡 장유(1587~1636)라는 분을 소개해드렸지만 이 분은 새발의 피라고 했죠. 누구냐. 다름아닌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재위 1776~1800)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혜원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 기녀가 한 손엔 장죽을 다른 한 손엔 생황을 들고 연꽃을 감상하고 있다. 담배는 시름을 달래주는 묘약으로도 알려졌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담배가 얼마나 중독성이 강했냐 하면 담배 전래 후 50년 정도가 지난 1668년(현종 9년)의 기록인 헨드릭 하멜(1630~1692)의 ‘부록·조선국기’는 “조선의 아이들은 4, 5세만 되면 담.. 금은동 명품으로 치장한 1500년전 신라인…170cm 장신 여성이었다 피장자가 누구인가. 금동관을 펴서 얼굴을 덮고, 또 키가 170㎝ 내외에 달하는 장신이며, 금은장도까지 착장한 6세기초 신라 최상위 귀족 여성이 아닌가.지난 6월2일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을 발굴하던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금동신발이 노출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급히 공개했다. 금동신발이 발굴된 것은 1977년 인왕동 고분 발굴 이후 43년 만의 일이라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발굴을 책임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금동신발도 중요하지만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노출된 금동달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 머리맡에서 노출되는 금동달개는 금동관의 부속일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었다.황남동 120-2호의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고리, 가슴걸이 노출모습. ..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