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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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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에서 출토된 1500년전 '행렬도 토기', 말갑옷의 비밀 경주에 ‘쪽샘’이라는 지명이 있다. 황오동·황남동·인왕동 일대의 약 38만㎡ 면적인데, 이곳에 쪽빛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샘이 있다고 해서 ‘쪽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라의 천년고도 답게 경주는 그 어느 곳을 파도 유물밭인데, 바로 이 쪽샘 지구가 그렇다. 4~6세기에 살았던 신라 귀족들의 무덤이 800여기가 집중된 곳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부터 주택과 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고분 훼손이 심해지자 2002년부터 민가와 사유지를 매입하고 2007년부터 본격발굴하기 시작했다. 발굴은 20년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다.2009년 경주 쪽샘지구 C 10호 목곽묘에서 확인된 말갑옷이 복원을 끝내고 첫 공개됐다. 복원결과 말갑옷은 736매의 철편으로 중무장한 신라 중장기병의 것임이 드러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
사명대사는 왜 "조선의 보배는 가토 기요마사의 목"이라 했을까 “승장 유정의 정예병이 왜적을 참획(斬獲)하는 공을 여러번 세웠다. 그렇지만 속세를 떠난 유정이 군직(軍職)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파격적인 상을 내려 훗날의 공효를 거두지 않을 수 없다. 유정에게는 당상관(堂上官·정 3품 이상)의 직을 제수하여….” 1593년(선조 26년) 4월 12일 선조가 승병장인 사명대사 유정(1544~1610)에게 “당상관(정 3품 이상)의 상급을 내리라”는 특명을 내렸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쓴 사관이 붙인 평가가 폐부를 찌른다.“전란을 당해 날래고 건장한 장수들조차 두려움에 떨었는데 엄청난 전공이 도리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늙은 승려에게서 나왔다. 이것이 어찌 무사들만의 수치이겠는가.” 의 사가는 쉰살이 된 사명대사의 분전을 인용하면서 임진왜란 때 ..
최초의 '전 백성' 여론조사 실시…세종의 숨겨진 업적 “전국의 전·현직 관리는 물론이고 세민(細民·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에게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 그 결과를 아뢰도록 하라.” 1430년(세종 12년) 3월 5일 세종대왕은 가히 혁명적인 명을 내린다. 호조가 ‘전답 1결 당 조 10두 징수’를 골자로 한 공법(세금) 방안을 제출하자 세종이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 최초의 여론조사에는 무려 5개월여가 걸렸다. 꼭 4개월이 지난 7월5일에는 ‘여론조사 중간점검 회의’까지 열었다. 이때 호조판서 안순(1371~1440)은 “지금까지의 조사를 보면 경상도에서는 찬성이 많고 함길·평안·황해·강원 등은 반대가 많다”고 중간보고했다. 세종은 “각 도의 (여론 조사) 결과가 도착하면 중앙 및 지방의 관리들은 공법의 장단점과 해결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라”..
'제5의 진흥왕 순수비'가 선 감악산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요즘 사대부의 아내들이 귀신에게 아첨하고 혹(惑)하여, 산야의 음혼(淫昏)한 귀신을 제사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특히 송악산과 감악산이 심합니다.” 1431년(세종 13년) 6월25일 대사헌 신개(1374~1446)는 “부녀자들까지 귀신에게 올리는 제사에 빠져있다”고 한탄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부녀자들이 송악산과 감악산에서 제사를 지낸 뒤 술판을 벌이고, ‘귀신을 즐겁게 한다’며 풍악을 치고 즐기고, 밤을 세운 뒤 돌아오면서…광대와 무당이 난잡하게 말 위에서 방자하게 놀아도….”이 상소를 받은 세종대왕은 “만약 사대부 아내가 감악산·송악산 같은 산천 제사에 참여해서 기도를 올리면 그 남편까지 처벌하도록 해라”는 명을 내렸다.()황해~임진강~서울 축선에 자리잡고 있는 감악산 정상에 우뚝 선 감악산비. ..
고종이 '대인배의 나라' 미국을 짝사랑한 결과는 “제3국이 한쪽 정부에 부당하게,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는 다른 한쪽 정부가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한다.” 1882년 5월22일 제물포 바닷가의 임시장막에서 조선과 미국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열렸다. 한문 3통, 영문 3통으로 된 조약에 서명한 이들은 조선의 전권대사 신헌(1810~1888)과 미국전권대표인 로버트 슈펠트 해군제독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해괴한 조약이었다. 도장은 신헌에 찍었지만 조약의 교섭권을 행사한 쪽은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1823~1901)이었다. 교섭과정에서도 블랙코미디가 이어졌다. 1905년 미국의 아시아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과 중국, 조선을 방문한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사진 아랫줄 가운데). 그러나 사절단장인 윌리엄 테프트 국방장관(앨리스 바로 뒤)은 일본의 가쓰라 수상..
‘날 잊지말라’고 보내온 부인의 다홍치마에 쓴 다산 정약용의 편지 “눈서리 찬 기운에 수심만 더욱 깊어지고 등불 아래 한 많은 여인은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고 그대와 이별 7년. 서로 만날 날 아득하네.” 1806년(순조 6년) 겨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부인(홍혜완·1761~1838)이 남편에게 ‘절명시’에 가까운 애끓는 시를 쓴다. 병들어 약해진 마음에, 언제 유배에서 풀려날 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의 안타까운 그리움을 한껏 담은 시였다. 아내는 이 시와 함께 시집 올 때 입었던 빛바랜 다홍치마를 전남 강진의 남편에게 보냈다. 시를 쓴 1806년은 다산과 부인의 결혼 30주년 되는 해이기도 했다. ‘하피첩’. 다산의 부인이 유배중인 남편에게 혼인 때 입었던 다홍치마를 보냈다. 다산은 빛바랜 다홍치마가 “글 쓰기에 훌륭하다”면서 두 아들에게 보내는 ..
"뻣뻣한 젊은 것들을…", 조선시대 직장갑질, 신고식 문화 “너는 볼 일 없는 재주로 외람되게도 빛나는 관직에 올라…더러운 너를 받아주는 것은 천지의 넓은 도량을 본받았기 때문에…지금까지 전해오는 고풍을 이제와 그만둘 수 없으니 아황죽엽주에 용머리와 봉황꼬리 안주를 즉각 바치도록 하라. 선배(先進)들.” 첫눈에 봐도 범상치않은 글이다. ‘송재선’을 ‘선재송’으로 이름과 성을 뒤바꾼 것도 그렇고, 이름 앞에 신귀(新鬼·새로운 귀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그렇다. 여기에 ‘전통에 따라’ 선배들에게 거위새끼의 털처럼 노란 술(아황·鵝黃)과 대나무 빛깔(竹葉)과 같은 술인 아황죽엽주와, 생선을 상징하는 용머리(龍頭), 닭을 의미하는 봉황꼬리(鳳尾)를 대접한다면 너그럽게 받아주겠다는 내용이다. 글의 뒤에 ‘선배’를 뜻하는 ‘선진(先進)’ 3명의 수결(手決·사인)도 눈..
죽고 살아남은 조선의 4대문, 그 아픈 역사 얼마전에 돈의문, 즉 서대문을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로 복원한 모습을 공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울의 4대문은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숙정문(북대문) 등이다. 이중 철거된지 104년이 지나도록 복원되지 않은 유일한 문이 바로 돈의문이다. 원래는 원상회복 방침이었지만 주변토지 보상과 교통난 해소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 증강 및 가상현실로나마 아쉬운대로 ‘상상속의 돈의문’이라도 감상할 수밖에 없다. 돈의문 철거소식을 의인화해서 알린 매일신보 1915년 3월4일자. ‘나는 서대문이올시다’라는 제목으로 철거의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돈의문이 철거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이었다. 그해 3월4일자 매일신보는 ‘난 경성 서대문이올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