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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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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동 명품으로 치장한 1500년전 신라인…170cm 장신 여성이었다 피장자가 누구인가. 금동관을 펴서 얼굴을 덮고, 또 키가 170㎝ 내외에 달하는 장신이며, 금은장도까지 착장한 6세기초 신라 최상위 귀족 여성이 아닌가.지난 6월2일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을 발굴하던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금동신발이 노출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급히 공개했다. 금동신발이 발굴된 것은 1977년 인왕동 고분 발굴 이후 43년 만의 일이라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발굴을 책임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금동신발도 중요하지만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노출된 금동달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 머리맡에서 노출되는 금동달개는 금동관의 부속일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었다.황남동 120-2호의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고리, 가슴걸이 노출모습. ..
추사에게서 욕 바가지로 먹은 '미친 초서' 이광사 작품이 어땠기에 =보물 제1969호, =보물 제1982호…. 간송문화재단이 소장한 두 작품은 2018년 나란히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 19 재유행’으로 관람할 수 없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준비한 ‘새 보물 납시었네’ 특별전의 같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매우 어색한 조우다. 왜냐. 은 18세기 대표 서예가인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친필로 쓴 서예이론서이다. 하지만 역시 보물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는 제목이 말해주듯 원교(이광사)의 필결(서결의 다른 표현)을 읽은 후 쓴 비판글이다. 그러니까 원교의 서예이론서와, 그 이론서를 ‘기본이 안됐다’고 비판한 추사의 글도 같은 해 나란히 보물이 되어 한자리에 출품된 것이다. 원교 글씨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초서. ..
"순종은 딴 생각말고 즐기라"며 만든 박물관의 웃픈 탄생 사연 …동물원 식물원도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관 15주년을 맞아 조선왕실 문화의 진수가 담긴 ‘대표 소장품 100선’을 선정해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공개된 ‘소장품 100선’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유물들이라는데요. 그런데 하나 드는 궁금증은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사인데요. 100년이 넘은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이 처음 설립된 이유가 좀 치욕스러운 대목이 있다는데요. 어떤 역사가 숨어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 모습.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문=동서양을 통틀어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언제인가요? 답=박물관을 영어로는 뮤지엄(museum), 프랑스어로는 뮤제(musee), 독일어는 뮤제움(Museum)인데요, 모두 고대 그리스의 ..
은진미륵 '새까만 눈동자'의 비밀…못난이에서 상남자 불상으로 바뀐 이유 “이걸 어떻게 새겨 넣은 거지?” 지난 2007년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정비사업에 전문가로 참여한 최선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현 학예실장)은 두 눈을 의심했다. 아파트 6층 높이(18.12m)의 은진미륵 불상에 비계를 설치해 올라간 것도, 얼굴을 코 앞에서 친견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은진미륵의 눈과 마주친 순간 최선주 학예연구관은 숨이 멎는 듯했다. 2년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상입상. 은진미륵으로 알려져있다. 밑에서 보기엔 눈을 돌(화강암)에 새긴 뒤 눈동자와 눈의 양 옆 내외안각 주름 부분을 검은 색으로 채색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막상 올라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따로 흑색 점판암에 눈동자와 내외안각 주름을 제작한 뒤 미리 파놓은 원..
조선판 '세월호 사건'에 운하공사까지…태안 앞바다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얼마 전 충남 태안의 신진도라는 섬에 방치되어있던 폐가가 사실은 177년 된 유서깊은 건물이고, 그 건물이 인근 해역을 지키고 관리하던 수군지휘소였음을 알려주는 흔적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요. 조선시대엔 이곳 앞바다에서 조선판 세월호 사건도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산림청 공무원이 우연히 찾아낸 이 폐가에서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팟캐스트에서 알아보려 합니다. 177년전 안흥량을 지키는 수군 지휘소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폐가건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해문화재과 제공문=폐가는 원래 존재했던 것 아닌가요? 산림청 공무원이 어떻게 찾았다는 겁니까? 답=지난 4월21일이었는데 신진도의 산림연수원 시설관리인으로 근무하던 정동환이라는 공무원이 연수원 근방의 숲을 답사하다가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발견..
청동기시대판 0.3㎜ '나노' 기술…다뉴세문경의 원조는 빗살무늬 토기였다? “그게 사실이오?” 고(故) 한병삼(1935~2001)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생전에 문화재 중간상인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고해성사’를 들었다. 때는 1960년대 충남 논산 훈련소라 했다. 참호를 파던 병사들이 의문의 물체들을 발견했다. 흙과 녹이 잔뜩 묻은 고색창연한 청동기 세트가 묻혀 있었다. 국보 141호 정문경. 지금까지는 다뉴세문경으로 알려져 왔다. 기원전 3~2세기 무렵 최절정기에 제작된 청동거울이다. 고대 청동기 제작에서 황금비율로 여겨지는 구리 대 주석 비율(67대 33)에 가장 근접한 66대34를 기록했다. 황금비율에 속하는 유일무이한 거울이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제공■논산훈련소 군인들이 수습한 희대의 청동기동심원과 삼각형 문양이 잔뜩 새겨진 청동거울(정문경 혹은 다뉴세문경 혹은 고운..
0.3mm의 예술...전세계 단 3점 뿐인 고려 극초정밀 나전칠기 제품 돌아왔다 ‘세밀가귀(細密可貴)’라는 말이 있다. 고려시대 극한의 정밀한 공예품을 가리켜 ‘세밀하여 귀하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이 ‘세밀가귀’란 말은 본디 고려시대 공예품 중 나전칠기 기술을 콕 찝어 표현한 것이다.일본의 한 소장가가 갖고있던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그릇)이 구입 환수되어 2일 언론에 공개됐다. 전세계에 단 3점 남아있던 온전한 형태의 나전합 중 1점이 환수된 것이다. 유일하게 매입가능했던 유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환수라 할 수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즉 1123년(인종 재위 1122~1146)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에 “고려의 나전솜씨는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고 언급했다. 현존하는 고려나전 제품을 보면 중국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할만 하..
1400년전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를 빚은 신라 조각가는? 1995년 새해를 여는 1월1일 아침 신문 1면에 수수께끼 광고가 실렸다. 빨간 스마일 마크인지, 혹은 윙크 얼굴인지 모를 도형 하나만 가운데 놓고 그 밑에 ‘새해 복많이 받으시라’는 신년 인사만 달아놓았다. 이 수수께끼는 연휴가 끝난 4일 아침 신문의 전면 광고에서 풀렸다. ‘럭키금성이 LG로 바뀐다’는 LG그룹의 광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LG의 출범과 함께 제정된 새 심벌마크가 ‘신라의 미소’로 통하는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는 사연이 소개됐다. ‘얼굴무늬 수막새’를 ‘과거의 얼굴’로, 그것에 영감을 얻어 제정한 심벌마크를 ‘미래의 얼굴’로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신라의 미소’라는 수식어가 붙은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와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됐지만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