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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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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휴가'는 세종의 또다른 업적…"죽어라 책만 읽으라" 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대에 ‘셰익스피어 휴가(Shakespeare Vacation)’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관리들에게 3년에 한번씩 유급휴가를 주는 대신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이끈 군주가 독서를 나랏일의 으뜸으로 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빅토리아 시대보다 무려 400년 이상 앞선 조선의 세종대왕이 그와 같은 제도를 시행했으니 말이다. 1426년(세종 8) 세종이 집현전 관리인 권채(1399~1438)·신석견(1407~1459)·남수문(1408~1442) 등에게 특명을 내린다. “나이가 젊고 전도양양한 너희를 집현관에 임명한 이유는 글을 익혀서 실제 효과를 나타내라고…. 하지만 직무 때..
'n분의1', 형제자매 평등상속은 고려 때부터의 전통이었다 ‘장남=1.5, 아들=1, 딸(출가)=0.25, 딸(미혼)=0.5, 부인=0.5’(1960~1978) ‘장남=1.5, 아들=1, 딸(출가)=0.25, 딸(미혼)=1, 부인=1.5’(1979~1990) ‘장남=1, 아들=1, 딸=1, 처(생존)=1.5’(1991~현재) 이것은 대한민국 민법에 정한 시기별 재산상속비율이다. 지금은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1991년 개정된 민법 1009조 1항에 따라 모든 자녀가 1/n, 어머니(생존)는 0.5가 더 많은 비율로 상속된다. 그러나 1990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장남과 어머니는 각 1.5씩을, 두번째 자녀(남녀)부터는 각 1씩을 받았다. 그러나 출가한 딸의 경우 홀대를 받았다. 다른 자녀의 4분의 1인 0.25를 상속받는데 그쳤다. 이때는 그래도 개선된 상속 배..
'망명길' 신채호가 짊어지고간 '원픽' 역사서…"생사람 잡지마라" “고려 때 무왕(誣枉·생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움)한 사필(史筆·역사 기록)을 씻는다면 (조선)왕조가 빛날 것 같습니다.” 1781년(정조 5) 정조 임금이 승선(국왕 비서) 정지검(1737~1784)에게 특별한 명을 내렸다. 순암 안정복(1712~1791)이 개인적으로 편찬한 의 필사본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이때 순암은 정지검에게 “‘고려 말의 일’을 이제와서는 기휘(忌諱·꺼리고 싫어함)할 만한 이유가 없으니 당시 잘못 기술된 역사기록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 말을 반드시 성상(정조)께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순암이 언급한 ‘생사람 잡은 일’은 무엇인가. 우왕(재위 1375~1388)과 창왕(1389~1399)을 공민왕(1351~1374)이 아닌 신돈(?~1371)의 아들·손자(‘신우와 신창’)로..
빗살무늬토기는 왜 '뾰족'할까…실용성 갖춘 신석기시대 걸작 디자인 ‘한국 미술 5000년전!’ 1975년 당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도쿄(東京)에서 열릴 한·일 국교 정상화 10주년 기념 특별전에 붙인 이름이다. 그 무렵(1971~75년)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기원전 3000년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도기)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빗살무늬토기는 생활용기가 아닌가. 그것이 미술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을 법하다. ■예술점수 10점만점, 실용점수 0점 그러나 암사동 출토 빗살무늬 토기의 ‘대표선수’를 한번 보라. 우선 V자형의 모습이 날렵하다. 여기에 3~7단으로 상·중·하로 화폭(토기 표면)을 나눠 갖가지 무늬를 새긴 선사인들의 예술품이다. 아가리 부분에는 짧은 빗금무늬, 그 아래에 점을 이용한 마름모무늬를 눌러 찍어 장식..
"분(화장품)과 바늘 보내오"…조선시대 '츤데레' 군인 남편이 보낸 선물 “분(화장품)하고 바늘 6개를 사서 보내네…” 최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예고한 ‘나신걸 한글편지’의 내용 중 한 구절이다. 이 편지(1490년 무렵 작성)는 훈민정음이 반포(1446년)된지 40여년 만에 쓰여진,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라는 점에서 일단 ‘보물’로 지정하고자 한 것이다. 어려운 원문을 최초로 판독·연구한 배영환 제주대 교수와, 최근 한글편지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백두현 경북대 명예교수의 도움말로 풀어본다. ■남편이 보낸 ‘분과 바늘’ 이 편지는 함경도에서 하급 군관으로 군무 중이던 나신걸(1461~1524)이 1490년(성종 21) 무렵 회덕(대전)의 아내 신창 맹씨에게 보낸 사연을 담고 있다. 편지는 함경도 군관으로 발령받아 임지로 떠나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면서 시작된다. “영안도..
풀포기의 기적…진흥왕순수비 한 글자(典) 읽어냈다 “기적적으로 ‘전(典)’자’를 읽었습니다.” 박홍국 위덕대 연구교수가 12월31일 발행되는 학술지( 29호, 한국목간학회)에 실릴 따끈따끈한 논문 한 편(‘파주 감악산 고비에 남은 명문’)을 보내왔다. 내용인즉은 경기 파주 감악산(해발 675m) 정상에 서있는 비석을 면밀하게 살펴본 결과 맨 밑바닥에서 ‘법 전(典)’자를 읽어냈다는 것이었다. 아니, 겨우 딱 한자를 읽어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살펴볼까 한다. ■조선시대 때도 판독 불가였던 비석 요즘 출렁다리로 유명해진 적성 감악산 정상 위에는 수상한 비석 한 기가 떡하니 서 있었다. 이름하여 ‘감악산비’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비석의 정체를 두고 설왕설래했던 것 같다. 1..
2000년전 밴드 공연장에 등장한 악기 5종…며칠밤낮 쉼없이 연주했다 지금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2년 5월이었다. 조현종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와 최상종 연구원이 부리나케 광주 신창동 유적으로 달려갔다. 유적 주변에 살고 있던 최 연구원이 “지금 국도 1호선 확·포장 공사가 한창인데, 신창동 유적이 훼손될 수 있는게 아니냐”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신창동은 1963년 유·소아의 무덤인 독무덤(옹관묘) 53기가 확인되어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한 2000년 된 매우 중요한 유적이었다. 그런데 도로공사가 벌어지면 유적파괴는 불보듯 뻔한 것이 아닌가. ■2000년 전의 생활도구들이 줄줄이 두사람이 깜짝 놀라 현장에 달려가보니 과연 큰일이었다. 유적 주변을 감고 돌아가던 국도 1호선의 직선화 방침에 따라 도로가 유적의 중앙부를 관통할 판이었다. 1963년 조사된 독무덤의 구릉 ..
고꾸라진채 발견된 '5cm' 기적의 신라 불상…굳이 일으켜야 할까 “땅과 불상의 공간은 단 5㎝ 차이(lls’en est fallu de cinq centimetres)…(불교계 인사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 했다.” 2007년 9월 13일자 프랑스 ‘르 몽드’지는 ‘1300년 전 넘어진 경주 마애석불, 원형 그대로 보존…’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대문짝만한 불상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이 불상이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엎어진채 발견된 대형 마애불’이다. 마애불의 규모는 엄청나다. 불상을 새긴 바위는 폭 4.0m, 높이 6.8m, 두께 2.9m나 되고, 무게는 무려 80t에 이른다. 그런 바위가 40도 가까운 경사면에 거꾸로 박힌 것도, 불상의 코가 지면에서 불과 5㎝이 거리를 둔채 떨어진 것도 불가사의하다. 그런 거대한 몸이 속절없이 고꾸라지면서도 코 끝 하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