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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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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아닌 4대가 ‘망한(?)’ 독립운동 가문…“무릎 꿇어 노예 되지 않겠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더는 통용될 수 없도록….” 이재명 대통령이 8월14일 ‘광복 80주년, 대통령의 초대’ 행사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다짐한 약속이다.친일파 집안은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고, 독립투사의 가문은 불우한 삶을 대물림해온 쓰라린 역사를 일컫는 표현이다.그런데 3대가 아니라 ‘4대가 망한’ 가문이 있다.(좀더 정확하게는 ‘4대가 고초를 겪은’이라는 표현이 맞다.) ‘임청각’(보물)으로 알려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1858~1932)과 그 가문이다.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은 1910년 경술국치 후 “차라리 목이 떨어질 지언정 무릎꿇고 종이 되어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만주망명→독립투쟁’의 길을 택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한번 꼽아보자. 이상룡..
‘아부외교’의 끝판왕…삼국통일의 비법 된 진덕여왕의 ‘태평송’ ‘위대한 당나라 왕업을 여니…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해와 달, 뭇별이 (당나라의) 만방을 두루 도네…우리 당나라 황제 밝게 비추리라.’( ‘진덕여왕’조)650년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54)이 당나라 황제인 고종(649~683)에게 올린 ‘태평송’이다. 그 내용을 더 들여다보자.“…(당나라가)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문치를 닦아 대대로 잇게 했도다. 하늘의 뜻을 잘 받드니 은혜의 비가 내리고…깊은 어짊은 해와 달에 짝할 만 하고 시운(時運)을 어루만져 태평세월을 갈구하도다…”손발이 오글거린다. 이게 다가 아니다. 는 “진덕여왕이 손수 비단을 짜서 그 위에 ‘태평송’을 수놓아 바쳤다”고 덧붙였다.650년 신라 진덕여왕은 당 고종에게 ‘태평송’을 지어 바친다. “황제의 높은 포부 빛난다. 테..
허준은 왜 70번이나 탄핵 당했나…사람 살린 일이 부지기수인데… “병신년(1596) 선조가 태의 허준(1539~1615)을 불러 ‘…의서 한 권을 편집하도록 하라’고 명했다…그러다 정유재란 발발(1597)로 중단….”월사 이정구(1564~1635)가 쓴 ‘서문’에 등장하는 편찬 시기이다. 1596년 선조의 명에 따라 허준이 책임지고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정유재란 때문에 중단됐고, 이후 허준 단독으로 편찬 임무를 수행해 1610년 25권으로 완성하고 1613년 초간본이 빛을 보았다는 게 정설이었다.임진왜란 공신들의 연회를 그린 ‘태평회맹도’(보물). 허준은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피란하는 선조를 수행했다는 공로로 호성공신(3등)이 되었다. 허준은 ‘양평군’의 군호와 함께 숭정대부(종 1품)의 작위를 받았다.|국립진주박물관 위탁관리■4년 앞선 초고본?그런데 최근 선..
‘내시라고 얕보지 마라’…나라 위해 목숨 바친 ‘환관 열전’ ‘내시(환관·내관)의 별장인 성북동 별서 화재.’ 얼마전 서울 소재 문화유산(명승)인 ‘성북동 별서’ 내 목조 건물인 송석정에서 불이 났다.이 화재로 ‘성북동 별서’의 전체 영역 중에 1953년에 신축된 송석정의 일부(3분의 1)가 파괴되었다.‘성북동 별서’가 어떤 유산일까. 1992년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으로 재분류된 유산이다.사적 지정 당시 이 별서의 주인공은 ‘환관’이 아니었다.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의친왕 이강(1877~1955)의 별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심각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이조판서 심상응’이 사료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철종-고종-순종 등 3대에 걸쳐 왕명을 전달하는 승..
15살 소년왕의 ‘요절’ 미스터리…피살·의문사로 점철된 백제 왕가 ‘무덤 주인공=15세에 죽은 삼근왕(개로왕 손자)’.최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조사·분석 결과를 발표했다.웅진(공주) 백제 시절의 왕과 왕비·왕족이 묻힌 무령왕릉 및 왕릉원 가운데 2호분의 주인공을 ‘콕 찍어’ 특정한 것이다.그 이가 보도자료 제목에 등장하는 ‘삼근왕’이다. 삼근왕은 477년 9월 피살된 아버지(문주왕·475~477)의 뒤를 이어 13살에 즉위했다가, 2년2개월 뒤(479년 11월) 요절한 소년 임금이다. ‘2호분=삼근왕’으로 특정하기 까지의 과정과 이유도 기막히다.웅진 백제 시기(63년)에 즉위한 5명의 국왕 중 이번에 2호분에서 확인된 치아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소년 삼근왕은 물론, 개로왕(큰 아버지)과, 아버지 문주왕, 사촌 동성왕까지 줄줄이 의문사했거나 살..
임은정 지검장은 왜 ‘열사’ 아닌 ‘검사 이준’을 ‘존경하는 선배’라 꼽았을까 “나는 이준 검사의 후배입니다.” 최근 임은정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장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여러 관련 기사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그 가운데 2022년 6월7일 임 검사가 SNS(페이스북)에 게재한 글과 사진이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임검사가 검찰청 역사관에 마련된 ‘검사 이준의 상(흉상)’ 옆에서 찍은 사진이 첫번째요, 임검사가 “이준 검사의 후배로서 저도 이준 검사의 흉내를 낼 것” 이라고 다짐한 것이 두번째였다. ‘평리원 검사 이준의 고소사건에 관한 건’ 보고서.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이준 열사는 검사 시절 자신이 올린 사면대상 명단을 법부 관리가 멋대로 바꿔치기 한 것에 격분, 그들을 상대로 치열한 법정투쟁을 벌였다. 이준이 올렸다가 삭제된 사면명단에는 을사늑약에 반대한 우국지사도 ..
사랑의 묘약? 미의 표현?…15세 신라여인은 왜 ‘비단벌레 금동관’ 썼나 “이건 비단벌레 날개 아닌가.” 지난해(2024년) 12월이었다. 경주 황남동 120-2호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정리하던 중 수상한 물체가 보였다.관의 뒷면에 장식되어 있던 비단벌레 날개였다. 올해(2025년) 2~3월 본격적인 보존처리 결과 그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이 금동관은 4단의 출(出)자 모양 세움장식 3개,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 2개, 관테 등으로 구성되었다. 세움장식과 관테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을 뚫어 만들었다. 그렇게 금동관 곳곳에 뚫어놓은 구멍을 영롱한 빛깔의 비단벌레 날개로 메워 장식한 것이다. 이 비단벌레 날개 장식은 모두 13곳에서 15장이 수착(흡착과 흡수가 동시에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날개장식은 대부분 검게 변했지만 원래의 빛깔이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경주 황..
아궁이에 걸린 밥 솥…한강변 고구려군은 속절없이 전멸됐다 1977년 7월이었다. 해발 53m의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던 서울 구의동 유적의 발굴 현장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이 발굴은 학술조사가 아니었다. 강 건너는 잠실지구, 강 이쪽은 화양지구 개발이 이뤄지면서 한강 본·지류를 정비하고, 택지 등을 조성하기 위한 실시된 구제발굴이었다. 약 3000평에 이르는 구릉은 벌써 절해고도로 변해 있었다. 주변은 개발 계획에 따라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이 구릉을 깎아내야 거기서 얻은 흙을 택지개발에 사용할 수 있었고, 또 평지로 변한 이 주변 또한 아파트 단지로 조성할 수 있었다.하지만 예부터 ‘말무덤’ ‘장군총’ 등으로 구전되었던 구릉을 그냥 뭉갤 수는 없는 일이었다.1977년 발굴된 서울 구의동 보루에서는 온돌 아궁이 속에 솥과 주전자가 걸려있는 그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