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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판 세종대왕'이었던 현종…도무지 비판거리가 '1'도 없었다 '고려판 세종대왕’, ‘도무지 비판할 거리를 찾을 수 없는 군주’…. 아니 고려 역사에 이런 임금이 계셨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붙인 수사가 아니구요. 에 분명하게 나오는 표현이구요.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조에서도 “국난에 빠진 고려를 중흥시킨 영명한 군주”라며 롤모델로 삼은 분입니다. 올해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분이죠. 바로 고려 현종(992~1031, 재위 1009~1031)입니다. 시쳇말로 ‘비판할 거리가 1도 없는 고려판 세종대왕’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마침 KBS 대하 드라마인 ‘고려·거란전쟁’이 바로 이 고려 현종시대를 다루고 있는데요.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한 정통사극이어서 저도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말고요. 고려는 이후 오로지 현종의 후손이 고려 왕계를..
‘대방태수 장무이’…식민사관의 악령을 일깨운 인물이다. 그러나… ‘장무이(張撫夷)’라는 인물이 있다. 1700여년전 황해도 사리원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일제강점기 잠자고 있던 ‘식민사학의 악령을 깨운 인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물론 ‘장무이’ 본인은 그런 누명을 뒤집어쓸 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열린 최근 제47회 한국고고학대회에서 ‘장무이묘’를 주제로 최신 연구성과가 발표되었다. 이 참에 ‘장무이’와 ‘장무이묘’와 관련된 사연을 풀어보고자 한다. 세키노 다다시가 1911년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태봉리(현 구봉리)에서 발견한 ‘장무이묘’. ‘대방태수 장무이’ 가 새겨진 벽돌이 여러점 쏟아져 나왔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동강변에서 확인된 벽돌무덤의 정체 1909년 10월의 평양 대동강변으로 시공간을 옮겨보자. 당시 통감..
지독한 ‘빨간펜 정신’…‘역신의 수괴가 편찬한' 실록도 버리지 않았다 “‘빨간펜(주묵사) 정신’을 잊지 마세요.” 강원 평창에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오대산 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상설 전시된다는 자료를 받고 단박에 ‘빨간펜’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오대산 사고본’ 실록이 뭔지 잠깐 소개해보죠. 실록은 태조~철종까지 25대 472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일어난 순서대로 서술하는 방식)로 기록한 책이죠. 책은 춘추관(서울)·정족산(강화)·태백산(봉화)·적상산(무주)·오대산(평창) 등 ‘5대 사고’에 한 부씩 보관했습니다. 이중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본 도쿄대(東京大)로 반출됐다가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고요. 용케 살아남은 75책(···)이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에 상설 전시된 겁니다. ■‘빨간펜’(붉은 먹글씨)의 ..
“환향녀라 손가락질? 남자들이나 잘하세요”…병자호란 여인들의 절규 ‘환향녀, 화냥년….’ 왜 다짜고짜 욕지거리로 시작하냐고 하시겠네요. 그러나 단순한 욕이 아닙니다. 요즘 장안에 화제를 뿌리고 있는 MBC 드라마 ‘연인’을 보면 금방 이해할 겁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로 끌려간 여주인공(길채)이 온갖 고초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왔죠. 그러나 남편은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삼고 임신까지 시킨 뒤였습니다. 돌아온 부인과 맞딱드린 남편의 말이 기막힙니다. “부인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없었겠죠?”하고 묻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길채를 보고 “오랑캐에게 더럽혀진 몸. 뻔뻔스럽게…낯도 참 두껍다”고 손가락질합니다. 드라마이다 보니까 좀 과장이 섞이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외려 드라마에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기막힌 사연들이 역사서에 나와있어요. 사실 ‘환향녀’도, ‘화냥년..
‘모기향 고분’이 아니다…‘황금새다리’는 왜 초라한 무덤에서 나타났나 일제강점기 일인학자들이 혈안이 되어 파헤친 지역이 있다. 가야고분이 집중되어 있던 영남 지방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조선병합은 임나일본부의 부활이니 반드시 그 근거를 이곳(영남의 가야고분)에서 찾아낼 것”( 1915년 7월24일자)이라는 일인학자 구로이타 가쯔미(㎘)의 큰소리에 그 이유가 나와있다. 그러나 막상 마구잡이로 파헤친 고분 및 산성 중에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증거’는 털끝만큼도 찾아내지 못했다. 구로이타는 결국 “막상 임나일본부라고 해도 조사하면 조선풍인 것이 틀림없다…임나일본부 추정할만 하나, 그 자취는 이미 사라져서 이것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게 유감”이라고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돌아오지 못한 부부총 유물 그중 대표적인 고분이 1920년 11월 조사된 경남 양산 부부총(북정리 10호..
백제 마지막왕이 의자왕?…아니다. 32대 풍왕이 있다 ‘660년? 663년?’ 백제는 언제 멸망했을까요.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냐구요? 660년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지 않았냐구요. 그러나 과연 660년이 맞을까요. 663년설도 제법 설득력이 있거든요. 그 뿐이 아닙니다. 또하나 착안점이 있습니다. 백제의 독립 투쟁이 기록상 672년까지 이어진다는 겁니다. 마침 올해(2023년)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지 30년이 지난 때잖습니까. 게다가 며칠전에 부여 가림성에서 백제~통일신라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는 발굴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501년(동성왕 23) 축조된 백제성이 함락된 뒤 신라가 차지·운용했다는 이야기죠. 또 10월20일 세종시 운주산 기슭에서 의미심장한 행사가 벌어졌는데요. 660년 이후 3년간 벌어진 ‘백제부흥운동’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바친 백..
거적때기 둘러쓰고, 제자리 잃고…광화문 '해치'의 기구한 팔자 왕범이, 해치…. 아무리 봐도 동물인 것 같은데 감이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예, 동물은 맞습니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왕범이는 ‘실존’이고, 해치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겁니다. 같은 점도 있습니다. 이 두 ‘실존’ 및 ‘상상’의 동물이 한때(왕범이) 혹은 지금(해치) 서울시의 공식마스코트입니다. ‘왕범이’는 1998년 2월~2008년 5월 사이 서울의 마스코트였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에서 따왔습니다. ‘왕’하면 떠오르는 한국의 으뜸 도시라는 이미지를, ‘호랑이’의 순우리말인 ‘범’에 붙인 겁니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08년 5월 ‘왕범이’가 상상의 동물인 ‘해치’로 전격 교체되는데요. 당시 오시장은 싱가포르의 머라이언, 베를린의 곰처럼 해치를 서울 하면..
200년 조선의 패션리더 ‘별감’, 서울을 ‘붉은 옷’으로 물들였다 200년전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볼 수 있을까. 사실 100년전이면 신문·잡지가 발행된 시기였고, 사진 기록까지 다수 남아있으니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 ‘200년전은?’ 하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다행히 단원 김홍도(1745~?)와 혜원 신윤복(1758~?) 같은 이들의 풍속화로 200년전의 ‘이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껌씹고 침 좀 뱉은 200년전 양아치 또 놓쳐서는 안될 자료가 있다. 18세기말~19세기초의 서울 풍물을 시로 묘사한 ‘성시전도시’ 몇 편이다. 그중 초정 박제가(1750~1806)의 시가 눈길을 끈다. “물가 주막엔 술지게미 산더미네…눈먼 장님 호통치니 아이놈들 깔깔 거리고…개백정이 옷 갈아 입으면 사람들은 몰라뵈도, 개는 쫓아가 짖어대고 성을 내며 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