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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인민, 그리고 황국신민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1960년~70년대 ‘국민’(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지금도 줄줄 외울 수 있는 것이 ‘국민교육헌장’의 전문이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도덕시간이나, 애국조회 때마다 암송을 해야 그 날 수업이 무사히 넘어갔다. 58년생인 김한종 교수(교원대)의 회고담에서 당대 국민학생들의 당혹감이 절절이 배어나온다. 1970년대 교과서에 실린 국민교육헌장 전문. 당시 국민학생들은 '국민교육헌장의 글자수가 몇자인가'라는 시험까지 봐가야 달달 외워야 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도덕시험은 대체로 좋은 말이 포함된 답안만 고르면 맞는 경우가 많아 가장 쉬었다. 그런데 첫번째 문제를 보는 순간 경악했다. ‘1.국민교육헌장은 몇 자인가.’ ~입으로 웅얼거리며 손가락..
패전의 병자호란, 그러나 '대첩'도 있었다. “우리 임금님, 우리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吾君 吾君 捨我而去乎)” 1637년 1월30일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 중의 하나이다. 병자호란 패배로 인조 임금이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치욕스런 날이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에서 나온 인조는 청나라 태종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 즉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행해야 했다. 말이 ‘조아린다’는 것이지 실은 머리를 찧어 피가 날 정도로 용서를 비는 절차였다. 이마저도 청나라가 봐준 것이었다. 원래 청나라는 인조의 두 손을 묶고 구슬을 입에 문채 빈 관을 싣고 나가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이 굴욕적인 ‘항복의 예’는 진나라 3세황제인 자영이 한나라 유방에게 항복하면서 노끈을 목에 걸고 백마가 끄는 흰 수레..
적의 목을 졸라라! “가을바람이 차가운데 병사들은 홑겹의 옷만 입고 있습니다.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적군 항공기의 폭격으로 교량이 끊겨 도로가 붕괴됐고, 물자도, 식량도 바닥났습니다.” 1951년 10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총사령 펑더화이(彭德懷)가 녜룽전(섭榮臻) 인민해방군 참모총장 대리에게 급보를 보낸다. 적(유엔군)의 ‘보급로 차단 작전’ 때문에 큰일났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의 수는 1951년 6월 들어 77만명으로 급증했다. 1950년 10월 첫 참전 때 30만명이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늘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군을 잠못들게 하는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보급물자의 원활한 공급이었다. 제공권과 제해권을 유엔군측에 장악당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물자 소모량은 엄청난데 운송수..
지긋지긋한 학교, 누가 만들었나 “왜 집에서 빈둥대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학교에 가서~ 선생님 앞에서 과제물을 암송하고~ 거리에서 방황하지 마라.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느냐?”(아버지) 기원전 1700년, 수메르인 아버지가 말썽꾸러기 아들을 다그친다. 학교에 가지않고, 거리를 맴도는 아들을 마구 몰아붙이고 있다. “너에게 나무를 해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짐수레를 밀게 하지도. 쟁기를 끌게 하지도, 땅을 개간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다. ‘가서 일을 해서 날 먹여살려라’라고 한 적도 없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노는 아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전한다. 동양에서는 은(상)시대에 처음으로 학교가 시작됐다. 지난 2008년 은(상)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중국 안양 인쉬에서 갑골문 발견 100주년 행사가 열렸다. 학..
세종도 '비서실'의 손을 들어주다. 사정당국(사헌부)과 국왕 비서실간(승정원) 자존심 싸움을 벌이면 국왕은 누구의 편을 들었을까. 그것도 여느 임금도 아니고 세종대왕이라면? 아닌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권부의 핵심끼리 미묘한 힘겨루기가 있었다.. 1424년(세종 6년) 8월26일의 일이다. 사헌부가 좌부대언(좌부승지) 이대를 탄핵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날 지신사(도승지) 곽존중을 비롯한 승정원 관리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석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사헌부 소속 장령(掌令·정4품) 양활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계본)을 들고 대궐 뜰에 섰다. 평소대로라면 이 상소문은 승정원이 받아 임금에게 올려야 했다. 그런데 밥을 먹고 있던 승지가 별감을 시켜 “지금 식사 ..
역사상 최강의 활쏘기 달인은? “그대는 어디서 왔는고?”(송양)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모처에서 도읍했느니라.”(주몽) “무슨 소리! 우린 여러 대에 걸쳐 왕노릇을 했노라. 땅이 좁아 두 사람의 왕이 필요없다. 어떠냐. 내 부하가 되는 것이….”(송양) “웃기는군! 신의 자손도 아닌 당신이야 말로 천제를 계승한 내 밑에 엎드려야 하는 것이 맞다.” ■주몽과 송양의 활쏘기 결투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주몽)은 비류수로 사냥을 떠났다가 강물 가운데로 채소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상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냥을 겸하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주몽은 그만 비류국 국경을 넘어 비류국왕인 송양과 마주쳤다. 말이 사냥이지, 영토확장을 위한 침범이 분명했다. 송양은 주몽이 자꾸 ‘천제의 아들’ 운운하자 빈정이 상한 ..
공자의 '최후의 고백' 새삼스러운 궁금증 하나. 복숭아 나무는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런 기운을 없애주는 상사로운 나무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절대 이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여기에는 동이족의 ‘슬픈 전설’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가 전설 속 ‘동이족의 명궁’인 ‘예’라는 인물이다. 때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요 임금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태양이 10개나 있었다. 동방의 천제 제준과 태양의 여신 희화 사이에 난 자식들이었다. 10개의 태양은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즉 삼족오였다. 이들은 어머니 희화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하루에 하나씩 교대로 떠올랐다. 그 일을 수만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2000여 년 전 경남 다호리 일대를 ..
'막말, 항명, 풍문' 탄핵도 허하라! “그의 살코기를 씹어먹고 싶습니다.(欲食其肉)” 1497년(연산군 3년) 사간원 정언(정 6품) 조순이 ‘막말’을 해댄다. 갓 서른이 된 사무관(조순)이 칠순을 넘긴 노(老) 재상 ‘노사신’을 겨냥,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것도 임금 앞에서…. 무슨 사연일까. 사건은 연산군이 신임 고양군수로 ‘채윤공’을 임명하면서 비롯됐다. 임금의 잘못을 간언하고(사간원) 관료들의 비행을 적발하는(사헌부) 대·간관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글도 모르는 채윤공이 어찌 고을을 다스리겠느냐’는 것이었다. 채윤공은 노사신의 최측근이었다. 노사신은 “대간이 무슨 공자님도 아니고…. 남의 벼슬길까지 막느냐”고 적극 변호했다. “대간이라는 자들은 남을 고자질해서 명성을 얻는 자들”이라는 극언을 퍼부으며…. 그러자 조순 등이 ‘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