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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경주서 발견된 광개토대왕 유물에 새겨진 비밀코드 1933년 4월 3일이었습니다. 경주 노서리에 살던 주민이 호박을 심다가 장신구 10여점을 발견했습니다. 즉각 신고가 이뤄졌고, 총독부 박물관은 발굴전문가로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1907~2011)를 급파합니다. 발굴결과 순금제 목걸이 33점과 곡옥·관옥·환옥 달린 목걸이, 순금제 귀고리 등 수십 여 점의 유물을 수습했습니다. 는 4월9일부터 20일과 21일까지 ‘고고학상 중대자료 희대의 귀고리 장식 발견’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습니다. 아리미쓰는 유물이 발굴한 곳을 노서리 140호분에 딸린 무덤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발굴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한국-일본-미국 합작발굴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은 현해탄을 건너 귀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후 국립박물관장이 된 김재원 박사(1909~1..
숭례문, 교과서와 공문서에서 ‘국보 1호’ 꼬리 60년만에 뗀다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호 흥인지문, 사적 1호 포석정…. 문화재의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은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60년 만에 개선된다. 기존의 지정번호는 ‘내부관리용’으로만 활용된다. 이에따라 각종 고문서와 교과서 등에서 ‘국보 1호 숭례문’은 ‘국보 숭례문’으로, 보물 1호 흥인지문은 ‘보물 흥인지문’으로, 사적 1호 포석정은 ‘사적 포석정’으로 표현이 바뀐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 지정번호의 개선을 골자로 한 올해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문화재 지정번호로 문화재가 서열화되고 있는 일부 인식을 개선하고자 관리번호로 운영하고, 비지정문화재까지 포함한 보호체계를 새롭게 마련할 방침”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개선안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번호는 완전 폐지되지는 않는다. 문화..
세종은 왜 큰아버지 정종에게 "정통성 없다" 낙인 찍었을까 조선을 다스린 임금 27분 가운데 무려 262년간이나 ‘임금’ 대접을 받지못한 분이 계신다는 거 아십니까.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44곳 중 40곳) 중에 폐위된 연산군(10대·1494~1506)·광해군(15대·1608~1623)묘와 함께 그 임금 부부의 능(후릉)이 빠졌답니다. 그거야 그 부부의 능이 북한 땅(개성)에 묻혀있으니 불가피하다 칩시다. 태조의 정부인이자 태종의 친어머니인 신의왕후 한씨(1337~1391)도 황해도 개풍에 묻혀있어서 제외되었으니 말입니다. ■아들이 15명이나 되었는데… 아니 그런데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대왕 조차도 그 분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답니다. 대체 어떤 분이기에 세종대왕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을까요. 자초지종을 풀어봅시다. 그 문제의 임금이 바..
백제의 '리즈' 시절을 웅변하는 석촌동 고분…100m 연접분의 정체는 “어, 이거 웬 구멍이야?” 2015년 5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사적 243호)을 관리하던 이가 이른바 석촌동 1호분의 북쪽 잔디광장에서 직경 25㎝의 동공을 발견했다. 순간 머리카락이 바싹 섰다. 고분군 밑으로 백제고분로 지하차도가 관통하고 있는데다 그 밑에서는 지하철 9호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굴 가능성 뿐 아니라 당시 석촌호수 주변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던 싱크홀일 수도 있었다. ■100m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접분 한성백제박물관 조사팀의 시굴 결과 동공은 지하수 확보를 위해 팠다가 사적공원 지정 후 폐기된 우물터가 함몰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의미심장한 현상을 목격했다. 관정 벽면에서 인위적인 석축열과 점토성토층이 드러난 것이다. 본격 발굴하자 깜짝 놀랄만한 유구..
'치욕의 삼전도비문' 누가 썼나…"오랑캐 아부" 비난 너무 억울 지난 1월 30일 저는 매우 유서깊은 곳을 다녀왔는데요. 아주 좋은 곳은 아니구요. 바로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현장의 유물 중 하나인 삼전도비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고 나니까 1월 30일이더라구요. 그 날이 1637년 1월30일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사건이 있던 날이잖아요. 물론 당시엔 음력이었으니까 양력으로 따지면 1637년 2월24일로 환산되더군요.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음력 1월30일로 기억되니까 뭐 겸사겸사해서 답사한거라구 저는 생각했습니다. ■수난당한 삼전도비 비문을 보면 맨 윗부분에 ‘대청황제공덕비’라는 글자가 보이는데요. 비석 앞뒷면에 만주어와 몽골어, 한자어 등으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과정과 청 태종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새겼다는 데요. 세부 글자는 잘 보이지 않더군요. 비석 옆에는 다소..
'비운의 인종'이 ‘절친’ 신하에 그려준 ‘묵죽도’ 목판엔 어떤 뜻이… “…굳은 돌, 벗의 정신이 깃들었네. 조화를 바라시는 임금의 뜻을 이제 깨닫노니….” 비운의 왕 인종(1515~1545·재위 1544~1545)이 절친이자 스승인 신하에게 ‘정표’로 내린 ‘묵죽도’ 목판이 도난 15년만에 회수됐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서울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공조수사를 통해 2006년 2월 하서 김인후(1510~1560)를 모셨고,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서원)으로 등재된 필암서원(전남 장성)에서 도난된 ‘하서 유묵 묵죽도판’(전남 유형문화재 216호) 3점을 회수했다고 1일 밝혔다. ■도난문화재 34점 회수 사범단속반은 이 과정에서 1980년 도난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창 선운사 소장 ‘석씨원류’ 1점(전북 유형문화재 14호)과 2008년 도난된 충북 보은 선병국 가옥(국가민속문..
정조는 백발백중의 활쏘기 명수였다…워커홀릭의 반전매력 “한 발은 쏘지 않는게 군자의 도리니라.”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왕실의 군사적 노력과 군사의례를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3월1일까지 열린다는데요. 저도 다녀왔습니다. 흔히 조선을 ‘문치의 나라’여서 ‘문약’에 빠졌다고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조선은 무치도 겸했다, 뭐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특별전이라는데요. ■신궁의 솜씨를 자랑한 정조 전 전시품 중 특히 눈에 띄는 유물 한 점을 소개하려 합니다. ‘고풍(古風)’이라는 유물인데요.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재위 1776~1800)가 1792년(정조 16년) 12월 16일 활쏘기를 한 뒤 그 기념으로 함께 참가한 검교제학 오재순(1727~1792)에게 상을 내린 공식문서입니다. 그런데 고풍을 보면 정조의 활쏘기 성적이 나와있는데요. 점수가..
"해치는 '서울의 상징' 자격없다"…"물짐승 아닌 하마비일뿐" ‘아니 해치가 언제부터, 왜 서울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리고 원래 해태가 아니었나.’ 서울 시내 여기저기서 보이는 ‘해치 캐릭터’를 보고 늘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게 바로 ‘서울의 상징동물이 해치’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추진 중인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계획에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 사업이 포함되어 지난해 11월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가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광화문 앞 양옆에 서있는 해치상. 1870년(고종 4년) 10월 9일자를 보면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했으며, 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복궁 중건 때 해치상을 세움으로써 대궐의 안팎을 구별했고, 이곳에 이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