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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에 새겨진 신라 전성기의 기와집…으리으리한 팔작지붕이었다 요즘엔 합금(구리+주석)이 워낙 좋아서 사라진 관행이지만 예전 설 명절마다 익숙한 풍경이 있었다. 곱게 빻은 기왓장 가루를 지푸라기 수세미에 묻혀 하루종일 놋그릇을 빡빡 문질러 닦는 풍습이었다. 그렇게 닦으면 놋그릇이 반들반들하게 되는데 어쩌랴. 한데 이게 보존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잘못된 관행이었다. “곱게 간 기와 가루로 빡빡 문질러대면 번쩍거리며 윤이 나죠. 그러나 결국은 그릇의 표면을 깎아내는 것이죠. 그러니 계속 문질러대면 그릇이 얇아지겠죠.”(홍원희 안성맞춤박물관 학예연구사) 놋그릇도 얇아진다지만 기왓장은 또 무슨 죄인가. 과거의 으뜸 건축자재였던 기와는 그렇게 ‘놋그릇 닦기용’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니 무슨 문화재 대우를 받았겠는가.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의 경험담이 흥미롭다..
당신이 길가에서 우연히 국보 문화재를 찾는다면…보상금은 얼마? 문화재 담당기자이던 저는 가끔 현장답사를 다니다가 헛된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만약 역사를 바꿀만한 명문비석을 발견하거나 유물을 찾아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표면을 샅샅이 뒤지기도 하고, 수풀을 더듬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같은 사람의 눈에 쉽게 걸리겠습니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알고보면 역사·고고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반 시민들이 역사에 길이 빛날 문화유산을 발견했고, 그 분들 중 일부는 그 대가로 소정의 보·포상금도 받았으니까요. ■신라 국보 비석 트리오의 발견 스토리 대표적인 케이스가 있죠. 2009년 5월11일의 일이었는데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 주민 김모씨는 자기 집 앞 도로공사 현장을 지나다가 크고 평평한 돌에 시선이 꽂혔답니다. 화분받침대로 제..
능산리 절터의 목탑지 석조사리감은 왜 도끼로 훼손된채 발견됐나 여러분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죠. 금관이나 반가사유상, 석굴암, 불국사 등을 꼽는 분도 있을 거고, 혹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택하는 분도 있겠죠. 그런데 이러한 대표 문화유산 중에 막내라 할 수 있는 문화재가 있는데요, 바로 백제금동대향로인데요. 복제품의 몸값도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금동대향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문=백제금동대향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라는 것은 알겠는데 막내라는 이유는요? 답=예 가장 늦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막내라는거죠. 금동대향로는 1993년에 우연히 발견됐으니까요. 그리고 이 금동대향로는 복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실물크기로 만든 가장 비싼 것은 30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는데요. 특히 일본인들의..
구텐베르크와 동년배, 세종은 가장 아름다운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얼마전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내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15세기 금속활자본을 일본 도쿄(東京) 와세대대(早稻田大) 도서관에서 찾아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요. (吏學指南)이라는 책은 중국 원나라 때인 1301년에 편찬한 법률·제도 용어집이자 관리 지침서랍니다. 그러나 저는 이라는 책 자체에는 그리 관심이 없구요. 이 책이 1420년(세종 2년) 제작된 ‘경자자(庚子字)’라는 금속활자로 만들었다는 것에 눈길이 쏠렸습니다. ■신료들은 왜 금속활자를 반대했을까 1420년이라면 어떻습니까.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1377년)이든, 혹은 공인본(보물 758-2호·1239년 무렵)이든 43~181년이나 흘렀던 때입니다. 바로 그럴 때 조선의 태종과 세종은 양질의 금속활자를 개발해서 책을 대량인쇄하는 것을 국책사업으로 여기..
홍문관 관리에서 홍어장수까지…조선판 '하멜표류기' 남긴 사람들 지난 2월초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의 특별전(‘ㄱ의 순간’)을 보던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이 한 점 있었다. ‘조선인일본표착서화’(배가 조난당해 일본에 표착한 조선인을 그린 그림과 글씨)’라는 그림이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개인사업가가 소장한 작품이 대여전시된 것이다. 이 작품이 특별전에 출품된 사연이 있다. 대학(평택대)의 일본어과에 재학중이던 학생(장윤화씨)이 일본에 머물던 친구에게서 작품의 존재를 알고서 서예박물관에 연락했다. 마침 특별전을 준비중이던 서예박물관측이 수소문 끝에 후쿠오카(福岡)의 개인사업가가 소장한 작품의 대여전시를 성사시켰다. ■표류민 초상화에 쓰여진 한글 흘림체 이 그림은 1819년(순조 19년) 1월7일 강원도 평해(지금 경북 울진)에서 멸치와 담배를 싣고 출항했다가..
실명 공개된 ‘신라 최대의 세습재벌’ 김유신의 황금저택 기이 진한조에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보입니다. “신라 전성기 서울(경주)에는 17만8936호가 있었고…. 금입택(金入宅)이 35개(실제로는 39곳)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4인 1가구 기준으로 따져볼 때 전성기 경주의 인구가 70만명을 훌쩍 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금이 들어간’ 호화저택, 즉 금입택(金入宅)이 35곳(39곳)에 달했다는 것 또한 대단하지 않습니까. ■신라판 호화저택 공개 그런데 는 이 기사를 쓰면서 ‘금입택’, 즉 호화저택의 명단을 공개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특히 눈에 띄는 ‘금입택’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바로 김유신 가문의 종가인 ‘재매정택(財買井宅)’입니다. 먼저 한번 생각해봅시다. ‘금이 무시로 들어간다’는 뜻인 ‘금입택’은 과연 어떤 집을 가리키는 표현일까요. 의 편찬자는 ‘금..
하룻밤 사이에 수습한 무령왕릉…왜 최악의 졸속발굴이었나 올해는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기도 하고, 백제가 웅진천도 이후 다시 강국이 됐다는 이른바 갱위강국을 선포한지 1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공주시와 문화재청이 올해 내내 갖가지 행사를 펼쳐진다고 합니다. 축하받아야 마땅하겠네요. 그러나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었다는 무령왕릉 발굴은 최악의 졸속 발굴이었다는 비판도 받는데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에서 알아봅니다. 문=무령왕릉 발굴의 의미를 말하자면? 답=무엇보다 “내가 이 무덤의 주인공인 무령왕이요”하고 선언한 명문이 나왔으니까요. 삼국시대 고분 중에 이렇게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고분이 나온 건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이 무덤에서 나온 모든 유물은 연대가 분명하니까 삼국시대 유물의 연대를 편년하는 기준자료가 되었죠. 그래서 ..
한국도 '약탈문화재 보유국'이지만 …오타니 유물, 반환은 글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해외에 흩어진 한국문화재의 환수를 추진하고, 또한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재청 산하기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재단의 홈페이지 화면을 보면 ‘193136’이라는 숫자가 떠있습니다. 이것은 22개국에 흩어져있는 한국 문화재의 숫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숱한 문화유산을 빼앗긴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이자,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다짐과 각오를 담았을 것입니다. ■약탈문화재를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대한민국 땅에도 ‘남에게서 빼앗은 약탈문화재’가 있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360여건 1500여점의 중앙아시아 문화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