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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미수극'에 '영감!'소리 들은 광해군 일가…폭군 대접 과연 옳은가 “‘영감’(爺爺)은 임금으로서 무엇이 부족해서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았소…‘영감’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말투가 요상하죠. 임금을 ‘영감!’이라 지칭하면서 뇌물로 받아챙긴 파렴치한으로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요. 이 발언의 주인공은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1608~1623)를 모신 궁비(궁궐 여종)입니다. 광해군은 이때 워낙 싸가지없이 구는 궁비를 꾸짖었는데요. 그러자 이 궁비가 “‘대체 누구 더러 제대로 모시라’고 호통을 치는 거냐. 영감이야 정치를 잘못해서 위리안치됐지만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쏘아붙인 겁니다. 그렇다면 광해군 면전에서 내뱉은 궁비의 질타는 ‘사이다 발언’이었겠네요. 그러나 100%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봅니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한결같..
“청와대는 남경 궁궐터”…서울은 고려국왕의 '성지순례코스'였다 인근 사찰(장의사·승가사)에 다녀가던 임금이 잠깐 쉬어갔던 ‘고려판 카페’인가, 혹은 ‘별서’인가, 아니면…. 얼마 전 서울 종로 신영동의 도시형 생활주택 부지에서 확인된 고려시대 건물터(1382㎡)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현재까지 건물터 3기를 비롯해 석축과 진입시설(계단), 담장, 배수로 등이 확인됐다. 중심 건물터는 파괴됐다. 그러나 두번째 건물터도 잔존 면적(길이 20.1×너비 5.5m)만 33.44평에 달한다. 건물의 입지조건과 배치 또한 심상치 않다. 땅을 깎지 않고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조성한 고려 궁궐(만월대)을 빼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유물의 위상 또한 만만치 않다. 건물 기초부에서 확인된 진단구(액막이용 공양물) 중에는 상급품의 고려자기가 확인됐다. 또 염주로 추정되는 수정 구슬을..
1400년전 초대형 '백제 냉장고'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가 사용했을까 막상 와서 보니까 대단하네.” 얼마전 전북 익산 서동생가터에서 공개된 6~7세기 ‘백제판 냉장고’를 현장에서 직접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우선 규모가 비슷한 2기가 아주 정연하게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고요. 규모 또한 상상 이상입니다. 두 기 모두 길이가 4.9m(1호)~5.3m(2호), 너비가 2.4m(1호)~2.5m(2호)나 되는데요. 무엇보다 깊이가 생각보다 엄청 깊습니다. 2.3(1호)~2.4m(2호)나 되는데요.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보이지 않고요. 사다리를 타야 겨우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각 냉장고의 벽면을 정연하면서 조밀하게 쌓아놓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더운 바람을 내보내는 통기구 두 유구가 ‘백제판 냉장고’ 였음을 알리는 장치가 또 백미죠. 각 유구의 동쪽 긴..
'법정 은퇴연령 70세인데…' 숙종·영조는 왜 50대에 노인대접 받았을까 ‘기로(耆老)’라는 말이 있습니다. ‘늙을 기(耆)’에 ‘늙을 노(老)’ 이므로 노인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곡례 상’은 “60세는 기(耆)이며, 남에게 일을 시켜도 되는 나이(六十耆指使)이고, 70세는 노(老)이며, 자기 일을 넘겨주고 은퇴하는 나이(七十曰老而傳)”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즉 ‘기로’는 예순살(60)이 넘어가면 노인 대접을 받고, 일흔살(70)이 되면 정년퇴직 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70세가 되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법은 있었습니다. 임금에게서 궤장(궤丈·의자와 지팡이)을 하사받는 것인데요.( ‘곡례·상’) 예컨대 신라 문무왕은 664년 70세가 된 김유신(595~673)에게 궤장을 하사했습니다.( ‘열전·김유신’조) 존경의 의미와 함께 은퇴하지 말고 임금이 내려준 지팡..
'독서휴가'는 세종의 또다른 업적…"죽어라 책만 읽으라" 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대에 ‘셰익스피어 휴가(Shakespeare Vacation)’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관리들에게 3년에 한번씩 유급휴가를 주는 대신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이끈 군주가 독서를 나랏일의 으뜸으로 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빅토리아 시대보다 무려 400년 이상 앞선 조선의 세종대왕이 그와 같은 제도를 시행했으니 말이다. 1426년(세종 8) 세종이 집현전 관리인 권채(1399~1438)·신석견(1407~1459)·남수문(1408~1442) 등에게 특명을 내린다. “나이가 젊고 전도양양한 너희를 집현관에 임명한 이유는 글을 익혀서 실제 효과를 나타내라고…. 하지만 직무 때..
임진왜란 때 항복한 일본인 1만명이었다…"우리 조선!" 외쳤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2~3만명(일본측 자료)에서 10만~40만명(조선측 자료)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어땠을까요. 그 숫자가 1만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597년(선조 30) 5월18일 도원수 권율(1537~1599)이 적진에 밀파된 첩자들의 보고를 정리해서 조정에 알렸는데요. “왜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항왜(항복한 일본인)의 수가 이미 1만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일본의 용병술을 다 털어놓았을테니 심히 걱정된다고 수근거린답니다.”() 한 연구자가 에 등장하는 항왜(귀화 혹은 항복한 일본인)의 수를 집계했는데요. 모두 42건에 600명에 달합니다. 기록된 숫자만 이 정도이니, 갖가지 이유로 항복하거나 귀화한 왜인들이..
사명대사는 "가토 기요마사, 그대의 목이 조선의 보배"라 했다 얼마전 문화재청이 강원 고성 건봉사터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승격 지정했습니다. 그런 대접을 받을만 합니다. 건봉사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남쪽 끝인 향로봉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520년 고구려 여인(고도령)과 중국 사신(위나라 아굴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한 ‘염불만일회’의 전통을 간직한 사찰이기도 합니다. 758년 발징 스님이 수행승 31인과 향도계원 1280인과 함께 1만일(27년 5개월)동안 ‘아미타불’ 염불을 외며 신생을 닦는 의식을 벌였다죠. 1만일이 되던 787년 어느날 아미타부처의 가호로 31인의 육신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961인의 향도와 함께 극락세계로 왕생했답니다. 능파교(보물)와 불이문(문화재 자료) 같은 문화유산이 존재하고..
‘기름 얼룩 흠뻑’, ‘산산조각’ 달항아리는 왜 ‘백자 베스트 42’에 뽑혔나 “너희 중에 뉘에 ‘군자의 기개’가 담겼느냐”(경향신문) “‘백자’쟁명 청화-철화-동화…조선백자 대표 다 모인 챔피언스리그”(동아일보) “불멍·물멍 이어 자기멍…눈 뗄 수 없는 조선백자”(서울신문) “어둠을 몰아내는 ‘조선백자의 스펙터클’”(조선일보)…. 요 며칠 사이 각 언론이 편집자의 감각을 마음껏 뽐낸 온갖 수식어와 함께 앞다퉈 소개한 특별전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리움 미술관의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특별전(2월28~5월28일)입니다. 국가지정문화재 59점(국보18점, 보물 41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보물 21점)과 일본 소재 34점 등 총 185점의 백자가 총출동한 특별전이랍니다. ■군자와 백자 특별전이 조선 백자의 매력을 ‘군자’의 덕목과 연결시켜 해석한 것이 눈에 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