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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인구가 100만…삼국유사는 사실일까- 이기봉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 ▲대도시 경주의 탄생…이기봉|푸른역사 “신라의 전성기엔 경중(京中)에 17만8936호, 1360방, 55리와 35개의 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삼국유사 진한조) 가구당 5~6명이 살았다치면 전성기 신라의 왕경엔 90만~120만명에 이르는 인구가 살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 연구자는 거의 없었다. 말이 나왔으니까 망정이지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엄연한 기록을 ‘그럴 리 없다’고 폄훼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조선의 한양도 기껏해야 4만~5만명이 살고 있었는데, 신라에 무슨 90만명이냐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암묵적으로 신라전체의 인구를 250만명(50만~60만호)으로 추산해왔다. 그렇다면 전체인구의 30~36%가 왕경에 살았다는데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2)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성’ -고구려·백제 치열한 106년 전투 ‘관미성’- “저기가 북한입니다. 한 3㎞ 떨어졌을까요. 저기 보이는 곳은 북한의 선전촌이고요. 김일성 사적관도 보이고….”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엔 오두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요즘은 통일전망대로 더 유명한 야트막한 산(해발 112m)이다. 뿌연 안개 사이로 갈 수 없는 땅 북한 관산반도가 어렴풋이 보인다. 손에 잡힐 듯 지척이다. “썰물 때는 도섭(걸어서 건널 수 있는)할 수 있는 지점도 조금 더 가면 있어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난다 해서 교하(交河)라 했던가. 윤일영 예비역 장군의 말이 새삼스럽다. 팽팽한 남북 분단의 상징…. 1600년 전에도 그랬다.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쟁탈의 요소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문헌상 기록으로도 우리는 4~5세기 이곳을 무대로 ..
왕들이 사랑했던 조선의 ‘참 궁궐’- 최종덕 <창덕궁> ▲창덕궁…최종덕|눌와 창덕궁은 또하나의 세상이다. 한 나라를 다스렸던 임금과 왕실이 평생동안 백성을 생각하면서 살았던 공간이다. 임금이 의식을 행했던 인정전에서 의상실(상의원), 종합청사격(궐내각사), 집무실(선정전), 임금과 왕비의 생활공간(희정당·대조전) 등등. 어디 그뿐인가. 내일의 조선을 이끌 왕세자에게 자연관찰기록과 각종 볼거리를 제공했던 ‘디즈니랜드(연영합·중희당)’가 있고, 헌종이 마침내 사랑을 쟁취한 낙선재·석복헌·수강재, 그리고 무미건조한 궁궐의 따분한 삶을 씻어줄 후원까지…. 그러나 후원에서조차 그저 놀지 않았다. 군사훈련을 친견하기도 했고, 국가산업의 기틀인 양잠과 농사 권장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창덕궁은 골육상쟁의 피로 얼룩진 경복궁을 기피한 태종때부터 역대 임금들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