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더뇨…’ 

1979년 비무장지대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이래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따오기(천연기념물 제198호 및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가 40년만에 하늘을 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복원한 따오기를 야생으로 방사하는 것이다.  

비행훈련중인 따오기. 1979년 멸종 이후 2008년 이후 중국 후진타오와 시진핑 주석의 잇단 기증을 계기로 복원증식사업을 펼친 결과 10년만에 363마리가 복원됐다. |창녕군 

경남 창녕군과 환경부, 문화재청 등은 10여년간 증식 복원한 따오기 40마리를 22일 경남 창녕 우포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우포늪으로 야생방사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청정 환경의 대표종으로 알려진 따오기는 논과 같은 습지에서 미꾸라지, 개구리 등 양서 파충류 등을 주로 잡아먹는다. 몸길이 약 75~78cm, 날개길이 150~160cm, 부리길이 16~21cm 정도이다. 수명은 밝혀진 바 없지만 일본에서 사육한 따오기 중에는 36년간 살았던 예도 있다.

따오기는 ‘따오기’ 동요(1925년 1925년 윤극영 작곡, 한정동 작사)가 있을 정도로 옛날부터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던 친숙한 새였다. 

그러나 사냥과 농약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 등으로 1979년 1월 18일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국제두루미재단의 공동창립자인 조지 아치볼드(캐나다) 박사가 관측한 이후 더는 확인되지 않고있다. 중국은 3000여마리, 일본은 4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먹이훈련을 하고 있는 따오기들. 일본의 경우 방사된 따오기중 40% 정도만이 야생에서 적응한다고 한다. |창녕군

2008년 한·중 정상회담 당시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기증한 한 쌍과,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기증한 수컷 두 마리를 토대로 창녕 우포 따오기 복원센터에서 증식복원한 결과 10년 만에 363마리로 늘어났으며, 올해 처음으로 야생방사하게 됐다. 

2008년부터 1년간 중국 사육사로부터 사육기술을 전수받아 독자적인 증식기술을 발전시켰다. 이후 국내 조류독감 발생 때마다 복원센터 직원이 24시간 밤샘으로 따오기를 지키는 등 정성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멸종 40년의 의미를 살려 40마리를 방사할 예정이다. 방사될 따오기는 암수의 비율(1대3)과 어미(성조)와 새끼(유조)의 비율(2대1)을 고려하여 선별했다. 따오기들은 비행훈련, 대인·대물 적응훈련, 먹이섭취 훈련, 울음소리 적응훈련 등 3개월 정도의 훈련을 받았다. 

성공적인 방사를 위해 창녕군은 2010년부터 우포늪 일대 국유지를 대상으로 따오기 먹이터(논 습지 16ha)와 영소지(숲 23ha)를 조성한 바 있다. 또 2016년부터는 우포늪 일대 20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따오기와의 공존 홍보와 창녕군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진행했다. 창녕군은 방사따오기에 위치추적기(GPS)와 가락지를 착용시켜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할 예정이다. 또 따오기 연구자 10명, 자원봉사자 30명, 지지자(서포터즈) 40명 등 80여 명이 따오기를 매일 관찰한다.

이번 따오기 방사는 동물을 상자에 1마리씩 넣어 두었다가 상자문을 열어 나가게 하는 연방사 방식을 쓴다. 연방사 방식은 몇달간 훈련중인 야생적응훈련장의 출입문을 개방하면 따오기가 야생과 훈련장을 오가다가 스스로 자연으로 나가도록 하는 방식이다.|창녕군 제공

그러나 야생 따오기의 생존율은 그리 높지 않다. 일본의 경우 2008년부터 19차례 방사된 따오기 가운데 생존율(방사후 3년 기준)은 40% 수준에 머물렀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연방사(soft release)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방사(hard release) 방식은 동물을 상자에 1마리씩 넣어 두었다가 상자문을 열어 나가게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해당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염려가 있다. 이번에 활용될 ‘연방사’는 몇달간 훈련중인 야생적응훈련장의 출입문을 개방하면 따오기가 야생과 훈련장을 오가다가 스스로 자연으로 나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성봉 창녕군 우포따오기사업소 관리담당계장은 “야생에서도 따오기가 안정적으로 서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희망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