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지방의 국립박물관에서 호평을 받은 전시회가 있다. 

바로 국립춘천박물관의 특별전인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이었다. 원래는 8월28일부터 3개월간 열릴 예정이었지만 관객들의 호평 속에 올해 3월까지 연장전시됐다.

그런데 이 특별전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뽑는 ‘2018년의 전시’로 선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전국의 국립박물관이 지난 1년간 주최한 특별전을 대상으로 관내외 전문가(내부 20명, 외부 16명)와 관람객 만족도 등을 종합평가한 결과 1등으로 꼽힌 것이다. 최선주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기획부장은 “국립춘천박물관의 ‘오백나한전’은 관내외 전문가들의 압도적인 점수를 얻었다”고 전했다.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오백나한 전시 전경. 작가 김승영씨가 설치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18년 최고의 전시

1등상의 특전이 바로 ‘서울 순회 나들이전’이다. 오는 29일부터 6월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춘천에서 상경한 ‘오백나한전’을 관람할 수 있다. 몰론 서울나들이를 위해 새롭게 몸단장 했다.

즉 전시 1부는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나한의 얼굴들’의 큰 주제 아래 국립춘천박물관의 전시의 틀을 유지했지만, 2부는 ’일상 속 성찰의 나한‘이라는 주제 아래 중고 스피커와 창령사 나한상으로 구성한 ’도시 일상 속 성찰하는 나한’을 새롭게 연출했다. 1부 전시 공간은 전시실 바닥을 옛 벽돌로 채우고 그 위로 여러 개의 독립적인 좌대를 세워서 창령사 나한상 32구를 배치하여 연출한다. 반면 2부 전시 공간은 스피커 700여개를 탑처럼 쌓아올려 그 사이에 나한상 29구를 함께 구성하여 도시 빌딩 숲 속에서 성찰하는 나한을 형상화했다.

‘자연 속 나한’과 ‘도시 속 나한’은 대조적인 이미지다. 그러나 도시의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자아 성찰’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전시는 국립박물관과 설치작가 김승영씨가 협의해서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협업의 결과물이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립박물관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창조적 문화컨텐츠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행보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가사를 두른 나한(왼쪽)과 바위에 몸을 숨긴 나한.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폭삭 무너진 나한상들

특별전의 주인공들인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이 세상에 나온 것은 지난 2001년 5월 1일이었다. 

자기 땅에 암자를 지으려고 경작지 평탄작업을 벌이던 김병호씨가 사람 형상의 석상들을 발견한 것이다. 수습된 기와 중에 ‘창령(蒼嶺)’이라는 명문기와를 확인함으로써 절 이름이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등장하는 ‘창령사’임을 추론해냈다. 추가 발굴 결과 발견된 석상은 총 317점에 달했으며, 그중 완형은 64점이었다. 

나머지 250여점은 머리와 몸체가 분리된채 발견됐다. 몸체는 135점, 머리는 118점이었다. 또한 석상의 일부는 열에 노출된채 확인됐다. 그리고 이 석상들을 모셨던 금당 또한 화재로 폭삭 내려앉은 흔적이 역력했다. 성리학을 앞세운 조선의 유학자 누군가가 창령사 석상들을 무자비하게 훼손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얼굴

317점이나 집중출토된 석상의 정체는 바로 나한상(羅漢像)이다. 나한은 ‘arhan’이라는 말을 음역한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가리킨다. 부처의 제자로 뛰어난 수행 끝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로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수행중인 나한과 가사를 두른 나한상.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왜 하필 500나한일까.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 가섭을 비롯한 제자 500명이 모여 석가모니의 생전 말씀을 경전으로 만들었는데, 그 때 모인 500명을 ‘오백대아라한’이라 일컬었다. 

언필칭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로 일컬어진 나한은 점차 재앙을 물리치는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었다. 후대사람들은 나한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제작하여 숭배했다. 대부분이 석가모니불의 제자들이어서 나한상에는 위대한 성자의 모습과 함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적인 면모로 표현된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에는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나한의 성격 가운데 ‘세속화’된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 나한상들은 때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며,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순박한 표정이 장인의 손길로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나한과 내면의 충일감을 일깨우는 명상의 나한, 산과 바위, 동굴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수행하는 나한 등 구도자로서의 여러 모습을 구현하였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표정의 얼굴과 함께 머리 위까지 가사를 뒤집어쓰거나 두건을 쓴 나한상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고요히 선정(禪定)에 들어 구도(求道)의 길을 치열하게 걸었던 나한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해탈에 이른 얼굴들, 희로애락의 초상 조각.|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당신의 얼굴, 당신의 마음을 찾아라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닮았다는 것인지, 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전시실에 전시해놓은 나한상들을 바라보는 순간 왠지 낯설지 않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디선가 보았던 친척이나 친구, 이웃집 사람의 얼굴 같은 느낌…. 나한상을 볼 때마다 나한상과 꼭 닮은 누군가를 찾게된다. 아니 당신은 나 닮지 않았다고, 나보다 못생겼다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그게 아니다. 바로 당신을 닮은 얼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신을 닮은 게 있으니 바로 당신의 마음이다. 

지금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할까. 기쁨에 차고, 얼굴과 두건을 뒤집어쓰고 평온에 잠겼으며, 때로는 무거운 고개를 떨구고 무언가에 몰입한 얼굴, 얼굴을 보며 나와 당신 안에 있는 나와 당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서울 나들이전’의 독특한 연출인, 빌딩숲처럼 높게 쌓인 스피커로부터 들리는 도시 일상의 소리 속에서 맑은 종소리를 나한과 함께 들어보라. 찌든 현대인의 삶에서 잠시 벗어날 치유와 사색의 시공간이 될 것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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