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藥師)는 의사의 이름을 빌렸다. 악귀를 물리치고, 온갖 재앙에서 보호받고,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는 약사여래의 이름을 부르면 구제받는다.”(<약사경>)
약사여래는 ‘약사’라는 이름만 불러도 온갖 질병과 모든 재난을 없앤다는 부처님이다. 학문적 연구에 치중했던 초기 불교가 대중과의 괴리감 탓에 인기를 잃자 ‘기복신앙’을 받아들인 것이다. 약사신앙으로 병을 고쳤다는 신묘한 기록이 <삼국유사> 등에 보인다.
“선덕여왕의 병이 깊어지자 밀본법사를 불렀다. 법사가 여왕의 침실 밖에서 <약사경>을 읽은 뒤 지팡이를 던지자 늙은 여우 한 마리를 찔러 뜰 아래로 내던지니 여왕의 병이 나았다.”(<삼국유사> ‘신주·밀본최사’조).
밀본의 ‘치유의 능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승상 김양도가 어릴 적에 갑자기 입이 굳어져 수족을 놀리지 못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김양도의 주변을 맴돌던 귀신들은 병을 고치려 온 승려의 머리를 때려 죽이기까지 했다. 이때 밀본법사가 나타났다. 귀신들은 밀본이 <약사경>을 채 펴기도 전에 모두 잡혔고, 김양도의 병이 말끔히 치유됐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 태종 때도 약사신앙은 힘을 발휘했다. 원경왕후가 위독해지자 태종 임금의 부름을 받은 스님 100여 명이 경회루 등에서 모여 <약사경>을 줄기차게 외웠다. 이마를 불사르고 손가락을 태운 스님들도 있었다. “효험이 없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태종은 중전의 병이 다소 호전되자 두둑한 상급을 내려주었다.(<태종실록> 1413년조)
그런데 약사신앙은 내 몸과 마음의 병만 치유해주는 그런 이기적인 신앙이 아니다. <약사경>은 “백성에게 질병이 있거나, 국난의 위험이 있거나, 홍수 및 가뭄의 난이 있거나… 할 때도 약사여래에게 공양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약사여래는 과거 약왕이라는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진 뒤 부처가 된 매우 이타적인 분이다. 1108년(고려 예종 3년)에는 <약사경>을 독송한 뒤 전장에 나가 여진족 33명의 수급을 벴다는 기록(<고려사>)이 남아있다. 호국불교로서도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어떤 불교행사에 나란히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 여야대표가 약사여래불 앞에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며 동병상련의 심정을 털어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늘 아픈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마약투여 사위 논란, 재신임 갈등, 아들의 병역회피 의혹제기 등 마음고생들을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겠다. 청중의 웃음을 샀다고는 하지만 백성의 아픔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야 할 이들이 나눈 농담치고는 다소 객적다는 느낌이 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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