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결을 앞둔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은 “(5판중) 한판을 지느냐 마냐 정도일 것”이라 자신했다.
덧붙여 “(나와) 기력을 논할 정도는 아니다”라 큰소리 쳤다.
그러나 결과는 1승4패로 이 9단의 참패. 기현상이 벌어졌다.
패배자인 이 9단은 외려 전지전능한 기계와 맞짱을 떠 1판이라도 따낸 인류 최후의 전사같이 추앙됐다.
관전자들은 상상을 초월한 인공지능의 능력을 직접 목도하고는 경외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후 ‘인공지능 대 인류’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일본의 인공지능로봇 ‘도로보쿤’이 최고명문인 도쿄대 입학시험에 4번째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세계사와 수학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뒀지만 영어와 국어에서 부진했다.
도로보쿤은 인간의 언어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로보쿤의 완패는 아니다. 도쿄대 같은 최고 명문대의 합격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중상위권 대학에 입학 가능한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에서 조치훈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딥젠고’의 3번기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1승1패의 호각이다.
실수로 첫 판을 그르친 딥젠고는 2차전에서 조 9단의 대마를 잡고 불계승을 거뒀다.
국내에서는 한국형 인공지능 ‘엑소브레인’이 수능만점자 등 4명과 퀴즈대결을 벌였다.
실수도 있었다. ‘재즈와 블루스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음계’와 ‘가장 파괴력있는 지진
파’를 묻는 문제에 ‘태주(정답은 블루노트)’와 ‘L파(정답은 R파)’라는 오답을 골랐다.
그럼에도 2등을 160점차(510-350)로 따돌렸다.
‘아름다운 여인’을 묻는 문제에 다른 참가자들이 ‘경국지색’의 ‘경색’을 답으로 내놨지만 엑소브레인만 ‘일색(一色)’이라는 정답을 택했다.
네덜란드 천체물리학자 헨드릭 판 더 휠스트의 예언 이후 6년 만에 검출된 전파 이름을 묻자 엑소브레인만 ‘21㎝파’라 답했다. 모두들 오답이라 여겼지만 정답이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때마침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식민지를 개척하지 않으면 최소 1000년 안에 멸망할 수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기후변화·핵전쟁·유전자 조작 바이러스 등과 함께 사악한 인공지능의 개발이 호킹이 꼽는 지구 및 인류 멸망의 잠재적인 흉적이다.
그렇다면 “발 밑을 보지 마라. 눈을 들어 우주를 보라”는 호킹의 신신당부를 떠올려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혹자는 ‘최소 1000년 안에 지구와 인류가 멸망하니 대비해야 한다’는 호킹의 염려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호킹 박사님. 지금 한국인들은 1000년 앞이 아니라 하루 앞도 내다볼 여력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고통스럽습니다.’ 딴은 그렇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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