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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도 좋지만…” 머리띠 두른 노학자들 “내 나이 칠십이오. 쑥스럽지만 얼마나 걱정되면 나섰겠어요?”(한영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장) 노학자가 허허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쑥스럽다”고 운을 뗐지만 음성은 단호했다. 지난 24일 한영우 위원장을 비롯한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 15명이 ‘풍납토성 보존을 위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엔 한영우·정영화·지건길·주보돈·고혜령·최광식·김원·손영식·배기동·이형구·장헌덕·최기수·안병욱·김성구·전형택씨 등 사적분과 위원들이자 문화유산 분야 원로들이 빠짐없이 서명했다. 풍납토성 발굴현장 및 유물 | 경향신문DB 왜 ‘60, 70고개’를 넘긴 문화유산계 어른들이 깃발을 들고 나섰을까. 한 마디로 백제왕성이 틀림없는 풍납토성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천추의 한을 남겨 100..
발해연안의 돌무덤과 동이족 2008 01/29ㅣ뉴스메이커 760호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 홍산문화 적석총 유적서 돌널무덤 발견…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로 유입 추정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무덤은 구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구석기시대의 인류는 신석기시대의 인류와 달리 주로 동굴 생활을 했는데, 동굴 가족의 일원이 죽으면 동굴 안의 방바닥을 파고 흙을 덮은 뒤 돌을 주워모아 주검을 덮었다. 어떤 경우에는 주검의 주위에 붉은 흙을 뿌리기도 했다. 이 같은 행위는 곧 영생을 바라는 산 자의 기도다. 우하량 제2지점 적석총 유적 전경. 한반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청동기시대의 석상식 석관묘가 있으며, 지(之) 자형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땅을 파서 매장한 다음 흙으로 덮는 흙무덤(토광묘)을 사용했으..
한반도·만주 빗살무늬토기 동시 유행 2008 01/22ㅣ뉴스메이커 759호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 대릉하 유역 ‘사해·흥륭와’ 유적지서 출토… “신석기시대 두 지역은 동일한 문화권” 신석기시대는 인류의 발달사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발명을 한 시기다. 그것이 바로 토기의 발명이다. 토기의 발명은 인류 최초의 혁명이다. 곧 토기에 물을 담아 집 안에서도 물을 이용하게 된 시기를 신석기시대라 하여, 석기만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와 구분한다. 8000년 전 주거지인 사해 유적에서 발굴된 용 형상의 돌무더기. 중국을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의 용의 형상에 해당한다. 지금으로부터 1만 년쯤 전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발해연안(渤海沿岸)에는 강이 생기고 물이 모여들여 발해가 생기고 한반도 양쪽에는 서해와 동해가 생겨 오늘날과 비슷한 지형이 형성되..
발해문명은 고대 동방의 중심이었다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 넓은 의미의 발해연안은 산동·요동·한반도를 포함한 동양의 지중해 '> 경향신문 코리안루트 탐사취재단의 일원으로 요하·대릉하 일대를 탐사하게 된 것은 필자로서는 매우 연원이 깊은 것 같다. 사실 필자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믿었다. 1987년 들어 ‘88올림픽’을 앞두고 경색된 냉전체계가 다소 완화되어가는 분위기여서 1960년 후반부터 준비해온 북한 고고학 자료를 국내에 소개하려고 했는데, 당시 언론은 쉽게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 해 여름 ‘신동아’ 김종심 부장에게 먼저 부탁했으나 이를 소개하지 못했다. 이듬해 여름 중앙일보 이근성 부장에게 다시 부탁했다. 그래서 ‘월간중앙’ 1988년 10월호에 ‘첫 공개 북한 문화재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흑백 화보로 실었다. 고대문..
불함-홍류 하느님과 유화 성모신앙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 ‘부르한’은 천손을 잉태하는 모태로 ‘모성적인 하느님’ 7월 10일 정석배 교수팀의 연해주 체르냐치노 발해 유적지 발굴 현장을 답사하고 나서 나는 이를 다음 답사지인 바이칼 호반 톤타 유적의 그것들과 비교해 검토해보려 했다. 체르냐치노 고분군과 톤타 유적은 모두 돌로 무덤을 쓴 점에서 유사해보여서다. 그런데 7월 13일에 바이칼 호반에서 나린얄가 천제단으로 답사지가 바뀌었다. 나린얄가를 보면 톤타는 안 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천제단 유적으로는 두 곳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부르한(Burqan)과 붉은 버드나무(紅柳) 때문이었다. 나는 일찍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비밀의 열쇠가 이 속에 숨어 있다고 보았다. 바이칼 호 동남쪽으로 가장 길게 뻗어 있는 유..
솔롱고스 부족과 동명성왕의 사연 태무진과 훌란 공주의 몸에도 솔롱 고스의 혈맥이 뛴다 '> 7월 21일 오후 4시께 에벵키 민족박물관에서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나로서는 17년 여를 애타게 찾던 ‘솔론’이라는 족제비과 짐승의 박제된 실물을 처음 보는 것이라 단연 특종감이었다. 역시 오랫동안 이를 찾아 헤매온 현지인 성빈(成斌·70) 선생의 수고 덕분이었다. 그간 서울대 이항 동물유전자은행장과 흑룡강성 동물자원연구소 박인주 교수(62)의 탐문으로도 찾을 수 없었다. 한갓 박제된 동물 하나에 이렇게 매달린 것은 ‘조선’이 아침의 나라라는 전거도 전혀 없는 허황된 해석과 맞먹는, ‘솔롱고스’가 무지개의 나라라는 한국인의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을 아주 긴요한 실물 자료기 때문이다. 몽골학의 거장 펠리오가 맨 먼저이를 문..
웅녀와 호녀의 ‘사랑싸움’ 이야기 코리안루트 1만㎞ 대장정 툰드라 지역 순록치기 곰 토템족의 사냥꾼 범토템족 정복사 '> 코리안 루트 탐사에서 단(檀)족 군장들인 단군의 족적을 추적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한반도 사관에 고착된 우리의 시각과 시야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으니 단군도 한반도에서 경영형 부농으로 입신한 인물쯤으로 상정하고 한민족의 창세기를 서술해내는 이야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이 기원전 2000~ 3000년 전에도 고온다습한 태평양 중 한반도에서만 농사를 지어먹고 산 청동기인이라고 못박아놓아야 주체적이라며 안심하는 경향은 여전한 것 같다. 5000~60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은 많게든 적게든 움직이게 마련이다. 생업이 유목일 경우에는 ..
광화문 원형복원 끝내 포기하는가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문화재청이 제정 공포한 ‘문화유산 헌장’의 첫번째 구호이다. 문화유산은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기본’을 염두에 두고 광화문 복원문제를 짚어보자. 지난 10월 말, 기자가 광화문 터를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고려 남경의 흔적(1067년)-창건 당시의 기초석(1395년)-중건 때의 모습(1865년)-일제강점기 훼손 흔적 등 광화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유구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11월1일자) 특히 추가 조사를 거쳐 창건 당시의 광화문 몸체(27m×9.6m)까지 완벽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고종연간, 즉 1865년 중건 당시의 광화문 형태로 복원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중건 당시의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