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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독립투사'가 모은 간송컬렉션…이젠 국가가 맡아야 하나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다윗과 골리앗간 ‘문화재 전쟁’을 아십니까. 그것도 한번도 아니라 3차례 전쟁을 벌였는데요. 골리앗은 일본 야마나카(山中) 상회라는 고미술 무역상이었습니다. 19세기 이후 미국 뉴욕·보스턴·시카고와 영국 런던, 중국 베이징(北京) 등에 지사를 둔 세계적인 골동품 거상이었는데요. 도자기류와 온갖 석물 등 엄청난 조선 문화재를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기도 했죠. 상회를 이끈 이는 야마나카 사다지로(山中定次郞·1866~1936)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야마나카는 야마토(大和) 민족의 문화적 진출에 발군의 성적을 세운 걸물”로 인정받고 있었는데요. 그런 골리앗에게 도전장을 내민 다윗은 간송 전형필(1906~1962)선생이었습니다. 간송 역시 당대 한국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세계적인 골동품상인 야..
‘99818972’…백제 '구구단' 목간의 8가지 패턴 2011년 6월 충남 부여 쌍북리 주택 신축공사장에서 수수께끼 같은 목간이 확인됐습니다. 숫자가 잔뜩 기록된 명문목간(6~7세기 백제)이었습니다. 발굴단인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적외선 촬영으로 목간의 정체를 분석했지만 확실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관청에서 문서나 물건 등을 운송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짐작했을 뿐이죠. 목간 중에는 운송할 물품의 포장이나 문서꾸러미 윗부분에 올려놓거나 목간의 구멍에 끈을 꿰어 고정시킨 상태로 사용한 것들이 제법 되거든요. 그러던 5년 뒤인 2016년 1월 16일이었습니다. ■구구단 목간의 출현 정훈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조사연구팀장이 한국목간학회가 주최한 ‘최신 목간자료 발표회’에서 이 목간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목간 사진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던 발표회장이 술렁거렸습니다..
설날 광화문에 황금갑옷 장군 그림을 붙인 이유는? 설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문배도가 걸렸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지난 26일 광화문에서 2022년 경복궁 광화문 문배도 공개행사를 열었다. “황금 갑옷의 두 장군의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하나는 도끼를 들었고, 하나는 절을 들었다. 그것을 궁문의 양쪽에 붙인다. 이것을 문배(門排)라고 한다.”() 이 문배도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881~82년(고종 18~19년) 무렵 경복궁 대문인 광화문에 붙였던 ‘황금 갑옷 장군(금갑장군) 문배도’를 찍은 사진을 토대로 미국에서 발굴했다. 140년 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내부를 찍은 사진 속 사진을 단서로 끈질기에 추적한 결과 찾아낸 것이다. ‘문배’(門排)는 정월 초하루 궁궐 정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의미로 그림을 붙이는 ..
사형수가 넘쳐났던 세종 시대의 감옥…성군의 치세에 무슨 일이? ‘3m 가량의 높은 담장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옥사….’ 얼마 전에 조선시대 감옥을 주제로 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54호 4권)에 발표한 논문(‘조선시대 지방 옥 구조에 관한 고찰’)이다. 발굴유적과 고지도를 비교분석한 논문인데, 그중 감옥의 형태가 원형이고, 남녀 옥사가 구분된 구조라는 것이 필자의 눈길이 쏠렸다. 우선 ‘원형감옥’ 이야기를 해보자. ■감옥은 왜 원형으로 지었을까 지금까지의 발굴과 고지도, 사진 등을 통해 분석한 조선시대 감옥은 모두 원형 감옥이었다. 조선시대 원형 감옥이 표시된 고지도는 109곳 146매에 달한다. 1914년까지 유지된 공주옥의 옛사진을 봐도 원형감옥이다. 또 1997년 발굴된 경주옥도, 2003~2004..
“세밀가귀!”…0.3㎜ 극초정밀 예술에 중국이 열광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칠-아시아를 칠하다’ 특별전(~3월20일)에 출품된 ‘나전칠 국화넝쿨 무늬합’을 보고 유명한 사자성어를 떠올렸습니다. ‘세밀가귀(細密可貴)’입니다. 그것은 1123년(인종 원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나전솜씨는 세밀하여 귀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고 찬사를 보낸 것에서 비롯된 성어입니다. ‘나전’이란 무엇일까요. 조개와 전복, 소라 등의 속껍데기를 다양한 모양으로 얇게 가공한 뒤 그릇 등에 붙여 장식하는 공예기술입니다. 보통 칠을 한 기물 위에 나전을 붙이므로 ‘나전칠기’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서긍은 대국의 자존심을 지킨 탓인지 “옻을 칠하는 기술은 그리 잘하지는 못한다(漆作不甚工)”고 전제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고려 나전의 정밀한 기술을..
조선의 화약은 왜 '똥천지' 길가의 흙에서 뽑아냈을까 ‘화약(火藥)은 원래 약(藥)이었다’는 말은 그렇다칩시다. ‘화약이 똥에서 나왔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요. 국립진주박물관이 3월 22일까지 ‘화력조선’을 주제로 조선무기 특별전을 열고 있는데요. 그런데 발간을 앞두고 있는 특별전 도록 원고를 받아본 제 눈길을 끈 소재가 몇 있었습니다. 먼저 ‘화약(火藥)’이 당초에는 ‘약(藥)’으로 쓰였다는 게 눈에 띄더라구요. 화약은 9~10세기 무렵부터 중국 송나라 때부터 무기로 활용되었는데요. 그러나 그 이전에도 화약은 제조되었답니다. 화약은 염초(초석 혹은 질산칼륨·KNO3)와 숯, 유황을 혼합해서 만들죠. ■약재로 쓰인 화약 화약은 도교사상이 유행한 중국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에 연단술(煉丹術)의 하나로 사용되었는데요. 연단술은 금단(광물로 만든 약)을 조제·..
일제는 조선 임금들의 탯줄까지 일장기로 덮어놓았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2009년 왕과 왕비 무덤 44기 중 40기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왜 4기는 빠졌을까. 제릉(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의왕후릉)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릉)은 북한 땅에 있으니 뭐 그렇다치자. 연산군(1494~1506)과 광해군(1608~1623)의 무덤도 제외됐다. ‘왕릉’이 아니라 ‘묘’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등재명칭이 ‘조선왕릉’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묘’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산군과 광해군은 만 12~15년간 조선을 다스린 임금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폐위됐지만 그것은 조선 왕조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까지 ‘왕릉’이 아니라 ‘묘’라는 딱지를 그대로 붙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
동굴 속 한줄기 빛을 따라갔더니 신라 진흥왕의 낙서가 보였네 2015년 12월 6일 일요일 오전 11시 무렵이었습니다. 모처럼 가족여행 중이던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울진 성류굴에 잠시 들렀습니다. 목적지인 봉화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일러서 따뜻한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동굴로 막 들어서려던 박관장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동굴의 왼쪽 벽면에서 심상치않은 글자들이 보인겁니다. ‘癸亥(계해)’로 시작되는 명문이었는데요. 박관장은 울진군 학예연구사인 심현용씨에게 발견사실을 신고했습니다. 곧 본격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동굴 입구의 벽면에서는 이미 조선 후기(1857년)에 새겨놓은 명문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명문과 불과 1m도 채 안되는 곳에 ‘삼국시대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박홍국 관장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