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60) 썸네일형 리스트형 '직지'보다 138년 오래된 금속활자본…'국내 존재 사실 까맣게 몰랐다"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 1377년(우왕 3년) 찍어낸 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문헌상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무엇일까. 혹은 등 2건으로 알려졌다. 의 경우 “(1234~1241년 사이) 강화도에서 28부를 금속활자본으로 찍었다”는 이규보(1168~1241)의 언급()만 남아있다. ‘에 붙어있는 무신정권 실력자 최이(?~1249)의 발문. “기술자들을 모집해서 기해년(1239년) 주자본(금속활자본)을 거듭 인쇄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목판본으로 다시 새겼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최근 “속활자본으로 거듭 인쇄했다’고 해석하는게 옳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깨달음의 뜻을 밝힌다(證道)’는 (이하 남명증도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원전은 선가의 수행지침서인.. 고구려 사신 그려진 아프로시압 벽화의 속살, 국내연구진이 밝혀낸다 1965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 시의 아프로시압 도성지에서 도로공사 중 매우 흥미로운 동서남북 4면 벽화가 발견됐다. 정면(서벽)의 벽화는 7세기 중반 사마르칸트 왕 바르후만을 알현하는 외국 사절단 행렬을 그렸다. 좌측면(남벽)에는 남부지역인 수르한다리야에서 시집오는 결혼 행렬이 그려져 있다. 하얀 코끼리 등 위에 올라탄 신부를 말을 탄 시녀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1965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도성지에서 발견된 궁전벽화. 7세기 중반 사마르칸트 바르후만 왕을 알현하는 외국 사절 가운데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두 인물이 보인다.|문화재청 제공그 뒤를 낙타와 말을 탄 행렬이 따르고 있다. 우측면(북벽)에는 여인이 배를 타고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과 동물이 싸우는 내용이 그려져 있다. .. 덕수궁 '대안문'이 '대한문' 된 이유…"갓 쓴 여자 재수없어서" “원래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안(安)자가 계집 녀(女) 자에 갓쓴 글자이고 양장하고 모자 쓴 여자인 배정자의 대궐 출입이 빈번해서 ‘상서롭지 못하다’는 말쟁이의 말로 인해 대한문으로 고쳤다.”일제강점기 대중잡지인 제33집(1933년 7월 1일자)에 실린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관련 일화이다. ‘문외한’이란 가명의 필자는 ‘팔자 고친 경성시내 육대문 신세타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한문이야말로 여러 대궐문 중에서 제일 나이 어리고 팔자 사나온 문”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름을 ‘대안문’에서 ‘대한문’으로 바꾼 이력을 소개했다.1906년 이전에는 덕수궁의 정문 이름이 ‘대안문’이었다. 그러다 그해 이름이 대한으로 바뀌었다. 1906년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바꾸고 수리한 뒤 그 내역을 기록한 중 ‘대한문상량.. 740매 말갑옷의 비밀…삼국시대 전투마는 조랑말 크기 무려 740매의 말갑옷 편, 유구의 무게는 28t. 그러나 신라 전투마의 크기는 현재의 조랑말과 유사하고…. 경주주 ‘쪽샘’ 지구는 4~6세기에 살았던 신라 귀족들의 무덤이 800여기가 집중된 곳으로 유명하다. 2007년부터 20년 예정으로 본격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쪽샘지구 C10호, 즉 5세기 전반 무덤인 목곽묘에서 획기적인 발굴성과가 나왔다. 말갑옷이었다. 쪽샘지구에서 확인된 말갑옷의 복원모습. 신라 기마병은 요즘의 조랑말 크기의 말을 타고 전투에 임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에는 이 말이 우량종이었을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발굴당시 말갑옷은 무덤 주인공의 널방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정연하게 깔려 있었다. 말갑옷의 목·가슴가리개 한쪽에는 사람 갑옷 중 투구와 목.. 아주까리 오동나무 씨앗…25t트럭 100대분 흙더미에서 찾아낸 초미세 유물 1㎝도 안되는 아주까리 씨앗은 물론 1㎜ 안팎에 불과한 오동나무 씨앗까지…. 이것이 25t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흙을 일일이 물체질로 걸러내 핀셋과 현미경으로 찾아낸 1600년 전 신라시대 씨앗들이다. 이 중 아주까리는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나 ‘…바람에 깜빡이는 아주까리 등잔불…’(가수 최병호의 1941년작 ‘아주까리 등불’)에서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식물이다. 시와 노래에서 나오듯 등잔불이나 머릿기름으로 쓰였고, 혹은 들기름이나 참기름 대용으로도 사용됐다.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아주까리 씨앗. 25t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흙을 일일이 물체질로 걸러내 찾아낸 유기물이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그런데 1600년 전 신라인들도.. 1600년전 아기반달가슴곰은 왜 경주 월성해자에 묻혔을까 “아기곰을 포함한 반달가슴곰의 가죽으로 군대의 깃발장식을 꾸몄다.' 신라의 1000년 도성인 경주 월성의 해자(외부 침입을 막으려고 성 주변을 파서 못으로 만든 곳)에서 1600년 전 신라인의 ‘삶의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6년부터 19년까지 월성 해자의 내부를 조사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금까지 얻어낸 유기질 유물과 관련된 학제간 연구를 통해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고 최근 전했다. 1600년전 반달가슴곰의 뼈로 추정되는 곰뼈가 신라의 1000년 도성인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됐다. 이 중에는 아기곰의 뼈도 있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월성은 기원후 101년 축성 이후 멸망(935년)까지 843년 동안 천년왕국 신라의 왕성이었다. 성이 초승달 모양이어서 ‘월성(月城·둘레 2340.. 경주 월지의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들, 그들은 누구인가 대체 통일신라·고려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경주의 우물에 어린아이들이 빠져죽었을까. 통일신라 어린이는 인간제사의 희생물이었다지만 고려시대 성인 1명과 세아이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부지에서는 8~9세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통일신라시대 우물이 확인됐다. 경주 ‘동궁 및 월지’ 유적의 우물에서 확인된 인골 4구. 30대 후반 남성과 8세 전후의 어린이, 3세 전후의 유아, 6개월 전후의 영아 등이 묻혔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우물을 들여다본 발굴단은 깜짝 놀랐다. 깊이 12m 가량의 우물 바닥에 거꾸로 쳐박힌채로 확인된 것이다. 고인골 전문가인 김재현 동아대 교수의 분석 결과 더욱 경악을 금치못했다. 바닥에 쳐박힌 두개골의 바로 밑에는 오른쪽 손가락.. "신라판 펭수는 무슨'…소월리 항아리 얼굴은 가혹한 세리의 3단 표정이다" 혹자는 1500년 전 신라판 ‘이모티콘’이라 했고, 혹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펭수’라 했다. 지난해 12월초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출토된 ‘3면 인면(사람 얼굴) 항아리’를 두고 참새 입방앗거리로 수근댄 표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토기 항아리 3면에는 다양한 표정의 얼굴 무늬를 만들어놓았다.경산 소월리에서 확인된 ‘3면 인면 모양 토기 항아리’. 다양한 표정의 얼굴이어서 신라판 ‘이모티콘’이나 ‘신라판 펭수’라는 우스갯소리로 표현됐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은 ‘이 얼굴을 1500년전 백성들을 수탈한 가혹한 세리의 표정’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항아리에 새겨진 3면의 얼굴이 이모티콘이나 펭수와 같이 귀엽고 선한 캐릭터가 아니라 혹정을 일삼는 ‘세리(稅吏·세금을 징수하는 관리)의 3단 표정’..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1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