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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친여동생 청연군주가 입은 명주저고리 복원됐다 ‘정조의 여동생 청연군주를 아십니까.’ 정조(재위 1776~1800)는 비정한 아버지(영조)의 명에 따라 뒤주에 갇혀 비명횡사한 사도세자(1735~1762)와 동갑내기 부인인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아들이다. 그런 정조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살,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이 둘 있었으니 청연군주(1754~1821)와 청선군주(1756~1802)이다. 할아버지인 영조 임금도 42살이 되어 낳은 아들(사도세자)이 본 손자(정조)와 손녀(청연·청선군주)가 얼마나 귀여웠을까. 정조의 여동생이자 사도세자의 딸인 청연군주가 입은 명주저고리. 국가민속문화재 53호이다.|세종대박물관 소장은 “영조(1694~1776·재위 1724~1776)가 72살 때인 1765년(영조 41년) 4월 가뭄 끝에 내린 단..
'0원에서 1억원까지'…당신이 만약 길가에서 국보유물을 발견했다면? “응? 이게 웬 불상이지?” 1963년 7월 16일 경남 의령 대의면 하촌리 마을밖 도로공사에 품팔이를 나온 마을주민 강갑순씨(당시 40세)와 큰아들 전병철군(17)이 야산 비탈의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있었다. 얼마쯤 파내려 갔을까. 두사람은 깜짝 놀랐다. 걸리적 거리던 잡석 하나를 곡괭이 끝으로 제치자 폭 30㎝ 길이 40㎝, 깊이 30㎝ 가량의 네모반듯한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누워있던 금빛 찬란한 불상을 보았다. 강씨는 발견사실을 대의면 지서에 알렸고, 불상을 친견한 전문가들은 경악했다. ‘금동연가 7년명 7년명 여럐입상’. 이 불상은 제작연대(기미년·539년)가 있는 가장 오래된 금동불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시어머니에게 고기 한근 사드려야죠” 금동불상은 둥근 연꽃 대좌 위에 중생의 고통을 ..
짝퉁? 창조적 모방?…고구려풍 베낀 신라귀족 귀고리 포항서 발견 단순한 짝퉁인가, 아니면 창조적 모방인가. 5세기 후반 신라에서는 고구려 기법을 모방한 금귀고리를 제작했고, 이 귀고리를 포항지역 귀족이 달았던 증거가 나왔다.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진입도로 구간을 조사중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은 최근 포항 흥해읍 대련리 유적에서 황금으로 만든 금제굵은고리귀고리(金製太環耳飾) 1쌍을 비롯하여 금제가는고리귀고리(金製細環耳飾) 2쌍, 은제팔찌 1쌍 등의 장신구류와 다수의 토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포항 대련리에서 확인된 금제 귀고리. 고구려 기법을 모방한 신라산으로 추정된다.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확인된 7기의 무덤 중에서 6기는 모두 도굴되었다. 그러나 가장 규모가 크고. 귀고리 등이 확인된 4호 무덤은 무너진 천장 덮개돌이 부장 유물들을 덮고 있는 바람에 천만다행으로 도굴을 피했다..
한성·웅진·사비 잇는 '익산 백제'…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 여전히 지난 10일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헷갈리기 쉽다. 미륵사지 서탑 옆에 서있는 큰 건물이 박물관인줄 알지만 그게 아니다. 신설된 박물관은 요즘 서울시내 대학 건물처럼 지하를 파고 들어가 조성돼있다. 최흥선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미륵사지 전체가 사적(제150호)구역이어서 층고 12m 이상의 건물을 세울 수 없는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에 주변 경관을 해칠 수 없어 지하에 조성한 것”이라 설명했다. 지난 10일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실 전경. 상설전시실에는 국보·보물 3건 11점을 포함한 3000여점의 전시품을 선보이고 있다. ■무왕의 나무관 첫 복원공개상설전시실에 들어서면 맨먼저 보이는 유물은 2009년 미륵사지 서석탑 사리공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내함이다. 높이 5.9㎝, 최..
"1500년전 마을별 세금 할당량"…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의 정체 ‘감말곡 논 7결(?), 둑 위 1결, 구미곡 3결, 둑 아래 40부, 하지시곡 논 2결, 구리곡 ○부, 곡문미진 상급의 밭(上田)….’ 지난해 12월 초 경산 소월리 유적의 구덩이에서 수수께끼와 같은 유물들이 나왔다. 3면을 사람 얼굴 모양으로 뚫은 토기 항아리와 함께 의도적으로 바닥을 제거한 시루가 보였다. 시루와 사람 모양 항아리를 맞춰보니 꼭 들어 맞았다. 관심의 초점이 된 유물들이 더 나왔다. 바로 5~6면에 알쏭달쏭한 글씨를 잔뜩 새겨놓은 목간과 싸리나무 다발과 자귀로 추정되는 목제유물이었다. 목간은 다발 및 자귀 아래에서 나란히 늘어선 형태로 발견됐다.1차 판독과 달리 2차판독에서 E면 판독이 많이 바뀌었다. ‘답중삼결(畓中三結·논 중 3결)’이 ‘답십삼결(畓十三結·논 13결)’로, 판독불가..
세종도 불만 터뜨린 조선의 인사검증시스템…'서경' '역사'를 아시나요 하직이물래(下直吏勿來·관리들의 하직인사 사절), 물래(勿來·인사를 사양), 입직(入直·직무실로 가서 인사), 미견(未見·만나지 못함), 입직미견(入直未見·직무실로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함)….고문서를 다수 소장하고 있는 교지연구가 김문웅씨(80)가 얼마전 아주 희귀한 자료를 기자에게 공개했다. 이름하여 ‘역사기(歷辭記)’라는 아주 생소한 문서이다. ‘역사’는 새로 임명된 신임관리(당하관·정 3품 이하)가 의정부 소속 정승들과 인사 관련 부서인 이조 및 병조 등을 돌아다니며 부임인사 하는 절차를 가리킨다. ‘역(歷)’자에 ‘다니다’ ‘두루’라는 뜻이 있으며, ‘사(辭)’자에는 ‘알리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DB에서 검색해봤더니 ‘역사’라는 용어는 숙종 시대인 1700년 이후의 실록에 등장한다..
한성-웅진-사비에 이어 또하나의 '익산백제'도 있다-3만점 유물 모은 국립익산박물관 개관 ‘익산도 또 하나의 백제다.’ 10세기 쯤 편찬된 은 “백제 무광왕(무왕·재위 600~641)이 지모밀지(익산 금마면)로 천도하여 사찰을 경영했는데, 그 때가 정관 13년(639년)이었다”고 기록했다. 익산 미륵사지에 건립되어 10일 개관하는 국립익산박물관. 백제관련 유물 3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익산박물관 제공물론 등 정사에는 천도 기록이 없지만 익산이 최소한 백제 말기에 별도(別都) 혹은 행정수도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의 사연을 담았고, 삼국시대 최대의 가람을 갖춘 미륵사, 주변의 익산토성과 제석사지, 또한 무왕 부부묘가 확실한 쌍릉 등 많은 백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지명 이름이 왕궁리(王宮里)라는 점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무엇보다 익산에서는 수많은 백제 유물들..
신문배달소년이 발견한 함안 말갑옷이 보물로 지정된 사연 “저게 뭘까. 웬 철조각일까.” 현충일이던 1992년 6월6일 아침 7시, 경남 함안 도항리 아파트 신축공사장을 지나던 고교생 신문배달소년 이병춘(함안종고)의 눈에 심상치않은 물건이 들어왔다. 공사는 아파트 뼈대가 다 들어선 뒤 정화조 공사를 위해 땅을 파놓은 상태였다. 막 포크레인으로 퍼낸 흙더미 속에서 철조각이 보인 것이다. 다른 이 같았으면 허투루 넘길만한 쇠조각에 불과했지만 배달소년은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함안 마갑총에서 출토된 말갑옷과 고리자루큰칼. 4~5세기 전쟁터에서는 말에게도 갑옷을 입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아파트 공사장에서 발견된 철조각의 비밀평소 사학과(창원대) 출신 신문지국장(안삼모씨)가 “함안은 아라가야의 중심지이니, 어떤 유물이 발견될 지 모른다”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