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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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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코끼리와 코끼리 유배사건 1413년(태종 13년) 병조판서 유정현이 희한한 상소문을 올린다. “코끼리가 사람을 해쳤습니다. 사람이라면 사형죄에 해당됩니다. 전라도의 해도(海島)로 보내야 합니다.” 사람이 아닌 코끼리를 귀양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코끼리는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모치(源義智)가 바친 동물이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외교선물이고, 게다가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동물이었다. 태종은 이 코끼리를 받아 삼군부(국방부)에서 키우도록 했다. 그러나 코끼리가 문제를 일으켰다. 공조판서를 지낸 이우(李玗)를 밟아죽인 것이다. 이우가 “뭐 저런 추한 몰골이 있냐”며 비웃고 침을 뱉자, 화가 난 코끼리가 사고를 쳤다. 가뜩이나 코끼리는 골치거리였다. 워낙 몸집이 큰 동물이어서 1년에 콩 수백석을 먹어대서 단..
'알라 알라 알랄라' 시리아 축구 남미 축구에서 골을 넣으면 중계캐스터는 숨 한 번 쉬지않고 “골~~~골!골!골!골…”을 포효한다. 그런데 지난 5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란에게 1-2로 끌려가던 시리아가 종료직전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 캐스터의 맥없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시리아 오마르 알 소마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캐스터가 절규하기 시작했다. ‘골 골 골’이 아니었다. 유일신 ‘알라!’를 불러댔다. “알라~알라~알라~알라~알라”를 반복하다가 “알랄라라~”로 바뀌어 잦아드는가 싶더니 흐느낌으로 변했다. “맙소사! 누가 넣었지? 아! 잊었습니다. 소마입니다.” 2분 이상 이어진 캐스터의 절규와 흐느낌은 트위터상에서 단박에 방문자 120만명을 모았다. 물론 본선진출을 확정한 것도 아니다..
'등떠밀려 본선진출 당'한 한국축구 ‘이라크여 고맙다.’ 1993년 10월 29일자 경향신문 1면 축구 기사의 첫머리가 심상찮다.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의 마지막 경기기사를 쓰면서 왜 뜬금없이 이라크에게 “고맙다”고 했을까. 저간의 사정이 있다. 북한전을 3-0으로 끝낸 한국(2승2무1패·득실 +5)은 일본-이라크전을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종료 직전까지 일본의 2-1 리드였다. 그대로 경기가 끝나면 3승1무1패가 되는 일본의 본선행이 확정될 판이었다. 그런데 종료 10초를 남기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아라크 자파르의 백헤딩이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2-2 무승부. 일본은 한국과 같은 성적(2승2무1패)이었지만 골득실(+3)에서 밀려 탈락했다. 이라크는 졸지에 ‘한국 축구의..
띨띨한 공돌이 공고 졸업생인 석환(류승완 분)과 성빈(박성빈 분)은 당구장에서 마주친 예고생들이 "공돌이'라 비웃자 '욱'한다. 패싸움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예고생 한 명이 살해된다. 류승완 영화감독의 데뷔작 (2000년)는 ‘공돌이!’ 소리에 벌인 철없던 시절의 패싸움 때문에 엇갈린 두 친구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에도 ‘공돌이’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흥, 제까짓게 유명해봤자 공돌이야.”() 사용례가 웅변하듯 ‘공돌이’는 고약한 비속어다. 이 신조어는 탄생의 배경부터 불순했다. ‘공돌이·공순이의 숨결로 공단 주변의 여관 여인숙이 초만원’이라는 선정적인 주간지 기사가 소개되고, “노동자들을 존경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하필 부를 명칭이 없어 공돌이·공순이로 부르느냐”는 눈물겨운 항변이 보도됐다.(..
시인 조동진, 가수 조동진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떠나갔네. 바람 끝 닿~지~않은~밤과~낮~저~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달렸을 때~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28일 아침 ‘노래하는 음유시인’ 조동진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맨먼저 떠오른 노래는 ‘겨울비’(1979년)였다. 그 한폭의 수채화 같은 서정적인,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겨울비~’하고 운을 뗄 때 일시에 숨이 멎고 온몸에 짜릿하게 흘렀던 전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새삼 휴대폰으로 재생해보니 38년 전처럼 또한번 소름이 돋았다. 그 뿐이 아니다. 다음 곡, 그 다음 곡이 절로 귓전을 떠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제비꽃) “배..
'트럼프에 대한 하늘의 견책?' 99년만의 개기일식 하늘에 더 있는 해와 달을 보면 크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보인다. 간단하지만 오묘한 우주의 조화가 숨어있다. 즉 해의 지름이 달의 지름보다 400배나 크지만 거리는 달보다 약 400배 떨어져 있다. 그래서 지구-달-태양이 일직선에 놓인다면 개기일식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1년에 12번 일어나지만 그 때마다 개기일식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지구와 달의 공전궤도면이 5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보통 4년에 3번 꼴로 발생하지만 이마저 관측 가능한 곳은 대부분 바다 위이다. 미국대륙을 횡단한 99년만의 개기일식 모습이다. 21일(현지시간) 그렇게 관측하기 어려운 개기일식이 서부 태평양 해안부터 동부 대서양 해안까지 횡단했다. 1918년 이후 99년 만에 처음이라니 미국 전역이 흥분에 휩싸일만 ..
대변초, 야동초, 물건중… 학교이름 어떠십니까 “우리는 즐거운 야동 어린이…어디서나 떳떳한 야동 어린이…” 충북 충주에 있는 야동 초등학교의 교가이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의 작사곡이니 남부러울게 없는 교가다. 이 지역에 솥을 만드는 풀무가 있어 풀무골이라 했는데, 1914년 주변의 마을을 통폐합해서 풀무, 혹은 대장간을 뜻하는 야동리(冶洞里)로 거듭났다. 이 유서깊은 동네가 요즘 심심찮게 참새들의 입방앗거리가 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신조어가 된 ‘야동’(야한 동영상)을 뜻한다는 것이다. 본의 아닌 피해도 발생한다. 야동초등학교 학생이나 교직원이 포털사이트 검색을 위해 소속학교 이름을 입력할 때 금지어인 ‘야동’ 때문에 불편한 일이 종종 생긴다. 그러나 학교나 마을 주민들은 아직까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대변초교 학생과 학부모가 부산 해운대구..
임청각, 이상룡,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북 안동 낙동강 상류에 자리잡고 있는 임청각은 1515년(중종 10년) 지어진 가장 오래된 민가이다. 어느 방에서나 아침 저녁으로 햇빛이 들도록 채광효과를 높인 배산임수의 99칸 저택이다. 영남 제일의 형승이라는 극찬과 함께 지금은 보물 제182호로 지정돼있다. 그러나 임청각의 가치는 건축사적인 의미에만 있지 않다. 대대로 이어진 임청각에는 주인(고성 이씨 가문)의 올곶은 마음이 담겨있다. 뭐니뭐니해도 일제의 참탈에 맞선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은 국권이 침탈되자 53살의 나이에 중대결심을 한다. 1911년 1월 5일 가문이 부리던 노비들을 해방시킨 선생은 가족 50여 명과 제자 200명 등을 데리고 서간도 망명을 단행한다. “공자 맹자는 시렁(물건을 얹어놓는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