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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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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침략자가 한국 국보 통째로 약탈"…텅빈 박물관, 1950년 극비 유물 수송 작전 “미국의 침략자들이 한국의 국보 유물을 송두리째 약탈했다”. 한국전쟁 도중 동베를린 영화관에서 구 소련 측이 방영한 뉴스였다. 경복궁 내 국립박물관 진열실의 텅빈 모습을 보여주고 ‘미군의 약탈’ 운운하며 맹렬히 비난한 것이다. “저게 대체 어찌 된 것인가”. 1957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월남(베트남)의 응오 딘 지엠 대통령(재임 1956~1963)과 경복궁 산책에 나선 이승만 대통령(재임 1948~1960)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한국전쟁 중 공습을 받아 1만2000 조각으로 파괴·방치된 탑 1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외국정상과 거닐다가 보았으니 얼마나 큰 망신인가. 이 탑이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이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황이 급박했던 1950년 7월25일 국립박..
내시의 정원도 문화재가 된다…논란의 성락원, 이조판서 별장은 아니지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서는 아니다. 뒤늦게 내시의 별서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명승의 자격은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4일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를 열어 명승 제35호 ‘성락원’을 지정해제하고 명승 명칭을 ‘서울 성북동 별서’로 바꿔 재지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명승 제35호 ‘성락원’에서 명승 제○○호 ‘서울 성북동 별서’로 바꾼다는 것이다. 성락원 영벽지. 당초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서로 명승이 됐지만 뒤늦게 고종의 호위내관인 황윤명의 별서로 밝혀졌다. |문화재청 제공 이 별서는 1992년 조선조 철종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자 의친왕의 별궁으로 인정되어 명승(제35호)으로 지정됐다. ‘200년 역사 품은 조선의 비밀정원’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재관리국(현 ..
"합시다. 을노브(love)!"…조선의 영어열풍, 일제가 어떻게 망쳤나 “‘모던뽀이’는 ‘시크’해야 하고 ‘모던껄’은 ‘잇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1931년식 첨단인의 마땅히 가져야 할 현대성이다. ‘스마트’한 것을 자랑하는 ‘모던’이…신감각파적 ‘에로’ ‘그로’를 이해치 못해서야 될뻔한 일이냐”.잡지 1931년 6월1일자에 실린 이 글은 1920~30년대 불어닥친 영어열풍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상대화나 잡지·신문 등에 글을 쓸 때 영어를 섞어 쓰지 않으면 행세하지 못했다. 그런 판국이니 당시 신문에서는 거의 날마다 등장하는 영어신조어를 소개하는 ‘신어해설’란을 만들기도 했다.(동아일보 1931년 3월9일)지석영이 1908년 다산 정약용의 아동 학습교재인 에 한자를 중심으로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발음을 표기해놓은 새로운 교재를 만들었다. ‘love’는 ‘을러브’..
김홍도, 신윤복과는 또 다른,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풍속화 스타…'기산 김준근'을 아십니까 풍속화가라면 역시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 등이 유명하다. 19세기 말 활약한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의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 당시의 자료 어디를 찾아봐도 김준근 관련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서예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오세창(1864~1953)이 1917~1928년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모아 간행한 에조차 김준근의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후대에 기산의 풍속도를 본 이들은 ‘삼류화가’라며 깎아내리기도 했다.19세기말 신부와 신랑이 초례하는 모습을 그린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 |독일 MARKK(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풍속화백과사전그러나 기산에게는 ‘우리만 몰랐던 팩트’가 있다. 바로 19세기 말 외국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던 세계적인 화가였다는..
어? 풍속화네…김홍도 동갑내기 맞수의 8m 산수화엔 19세기 삶의 현장이 녹아있다 “선왕(정조)을 모시던 화원 가운데 묘수는 ‘그대’와 ‘늙은 단원’을 꼽았더니…‘단원’은 보이지 않고 ‘도인’만 화실에 퍼질러 앉아 여전히 세상에 있네”. 문인·화가·서예가인 신위(1769~1845)가 시집()에서 ‘묘수 화원’으로 꼽은 두 사람 중 ‘단원’은 두말할 것없이 김홍도(1745~1806?)를 가리킨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스승인 심사정의 ‘촉잔도’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러나 이 그림은 아슬아슬한 험준한 산악길을 통해 촉지방으로 피란가는 행렬도, 속세를 피한 은자들의이상향인 무릉도원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삶의 터전에서 저마다의 임무에 전념하는 현실속 이상향을 그렸다는 평을 듣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김홍도는 조선의 ‘만찢남’ 그도 그럴 것이 단원 김홍도는 18~19세기 조선의 ‘..
청와대 미남석불과 쌍둥이 '불두', 왜 경주 남산에서 발견됐을까 예부터 부처님이 하강하여 머무는 영산으로 추앙받던 경주 남산(해발 468m) 계곡에서 불상의 머리가 발견됐다. 머리를 되찾은 불상은 ‘청와대 미남석불’로 알려진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과 같은 사각형 모양의 의자에 앉아있다. 경주 내남면 용장리의 남산 약수곡(석조여래좌상절터) 제4사지를 조사중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에서 분리된 불상의 머리, 즉 불두(佛頭)를 찾았다고 밝혔다.청와대 미남불상(왼쪽)과 이번에 출토된 약수곡 불두. 이른바 ‘미남불상’은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에게 헌상된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이다. 원래는 경주 이거사터에 있었는데, 일본인이 데라우치 총독에게 이 석불을 선물하려고 서울의 총독부 관저로 옮겼다. 이 석불은 1939년 총독관저가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자..
부인, 신하, 백성을 이렇게까지 죽게한 임금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숙종대왕 호시절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조 숙종의 서거 300주년을 맞아 6월28일까지 개최하는 테마 특별전의 제목이다. ‘호시절(好時節)’은 말 그대로 ‘좋은 때’이므로 숙종의 치세가 그만큼 편안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숙종(재위 1674~1720)은 영조(52년·1724~1776년)에 이어 두번째로 긴 만 46년(재위 1674~1720) 조선을 다스린 군주다. 숙종은 특별전에서 소개하듯 교과서적인 의미에서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1719년(숙종 45)에 숙종이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계첩(契帖). 원래 기소로는 ‘정2품 이상의 문관에 70세는 넘어야 입소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숙종은 ‘태조(이성계)께서도 60에 기로소에 들어갔다’는 이유를 대며 기로소 입소를 강행했다. 이 ..
'문화재 독립운동가' 간송…문화재 상속세 한푼도 낼 필요없는 이유 (이 기사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92회 대본입니다.)최근 문화유산 분야에서 핫뉴스가 터졌는데요. 간송미술관이 자기들이 소장 중인 보물 불상 2건을 경매에 내놨다는 소식입니다. 국보 보물을 그렇게 시장에 내놔도 되는 건지도 궁금하고, 한 미술관이 소장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그렇게 뉴스가 되는 것지도 궁금합니다. 오늘은 보물을 매물로 내놓은 간송미술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봅니다.일제 강점기에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 선생 답=당연히 있습니다. 매매할 수 없게 만들면 누가 국보·보물을 소유하며, 또 누가 지정하려고 애쓰겠습니까. 지금까지 매매된 지정문화재를 보면 보물인 월인석보와 경국대전 등 보물 문화재들이 개인에서 개인, 개인에서 국립박물관 등으로 팔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