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312) 썸네일형 리스트형 '만약' 이성계의 장남이 2대 국왕이었다면 흔적의 역사 24회는 ‘가정법’입니다. 제목은 ‘만약 이성계의 장남이 살아있었다면…’입니다. 오늘은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가정법을 써보지 않습니까. 만약 한국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중국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조선이 임진왜란 때 완전히 쫄딱 망했었더라면…. 세종대왕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총에 서거하지 않았다면…. 뭐 이런 가정법 말입니다. 물론 역사를 읽는데 무슨 가정법이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가정법을 던져놓고 상상해보는 편도 흥미로울 것 같지 않습니까. 오늘은 이런 가정법입니다. ‘만약 태조 이성계의 장남인 이방우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개국 조선의 2대왕이 되었다면 어찌 됐을까’하는…. 또 아버지의 뜻에 반해 은거의 길을 택한.. 백성 버린 선조의 피란길, 그 참담한 징비록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3회 주제는 ‘백성 버린 선조의 피란길, 그 참담한 징비록’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1592년(선조 25년) 4월 30일 선조 임금이 피란길에 오릅니다. 임진왜란 발발로 왜군이 쳐들어오자 ‘무조건 피란’을 결정한 것입니다. , 등을 보면 목불인견입니다. 선조가 벽제~혜음령을 지나자 밭을 갈던 백성이 대성 통곡합니다. “나랏님이 백성을 버리면 누굴 믿고 살라는 것입니까.” 선조 일행이 임진나루에 닿았을 때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임진강변의 승정(丞亭·나루터 관리 청사) 건물을 헐어 불을 피웠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임진나루 건너의 동파역에 도착하자 파주 목사와 장단 부사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임금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굶었던 호위병들.. '고려 외교 좀 배우라'고 가슴을 친 광해군 이번 주 팟캐스트 22회의 주제는 ‘광해군이 부러워한 고려외교’입니다. 조선의 광해군은 조정의 공론을 한심스러워하면서 “제발 고려의 외교 좀 배우라”고 했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세도 모르면서 말로만 ‘숭명배청’이니 ‘재조지은’이니 떠들면서 주야장천 다쓰러져가던 명나라만 섬기려하는 대신들을 ‘한심한 인사들’이라 했다는 겁니다. 그런게 광해군은 왜 ‘고려의 외교를 배우라’고 했던 걸까요. 고려는 비록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피곤한 줄다리기 외교를 펼쳤답니다. 하지만 거란은 물론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원)의 애간장을 녹일만큼 능수능란한 곡예외교를 펼쳤습니다. 오죽했으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거란이 서희의 ‘세치혀’에 말려 280리나 되는 땅(강동 6주)을 떼주었겠습니까. 서희로 대표되는 고려의 외교관들.. 백두산 화산폭발과 발해멸망의 수수께끼 팟 캐스트 21회는 좀 색다른 주제입니다. ‘백두산 폭발과 발해멸망의 수수께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 백두산에서는 역사시대, 즉 2000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화산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기원후 79년 폼페이 최후의 날로 악명높은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폭발보다 무려 50배나 큰 화산폭발이었습니다. 물론 화산폭발이 과연 어제 정확하게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첨단과학의 힘을 빌자면 아마도 930~940년 사이가 아닐까 추정됩니다. 문제는 발해가 926년에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발해의 멸망소식을 전한 요나라(거란) 역사서인 는 “발해는 민심의 이반 때문에 별다른 저항없이 멸망했다”고 전합니다. 이상한 일 아닙니까. 해동성국으로 일컬어졌고, 고구려의 고.. 고려·조선을 강타한 사교육 열풍 이번 주 ‘흔적의 역사’ 팟 캐스트의 주제는 ‘고려·조선을 뒤흔든 사교육 열풍’입니다. 지난 주 살펴봤듯 이 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지독합니다. 이미 1200년 전에 남의 나라(당나라) 땅에서 신라와 발해인들이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하는 등 서로의 우열을 다투는 볼썽 사나운 작태까지 연출하지 않았습니까. 역사에 길이 남을 문장가라는 최치원까지 가세했다니 말입니다. 고려 조선에 들어와서도 더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고려시대 때는 12개 명문사학들이 과거시험에 자기 학생들을 합격시키느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답니다. 최충의 문헌공도 등은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유명한 사찰을 빌려 학생들을 50일 간이나 합숙시켰답니다. 그래놓고는 졸업생 가운데 뛰어난 선배들을 특별 강사로 초청해서 이른바 족집.. 최치원, 발해를 향해 쌍욕을 퍼부은 까닭 팟캐스트 19회는 ‘최치원이 발해를 향해 쌍욕을 퍼부은 까닭’입니다. 9세기 말 만고의 명문장가라는 최치원이 막말을 퍼붓습니다. 발해를 겨냥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갈과 모래같은 무식한 놈들’, ‘추한 오랑캐’, ‘떼강도’, ‘군더더기 같은 부락민’…. 그뿐 아니라 멸망한 고구려를 두고도 ‘고구려의 미친바람’이라고 합니다. 최치원은 과연 왜 발해를 향해 쌍욕을 해댔을까요. 새삼 북한이 남측 정부와 인사, 미국정부와 인사들에게 퍼붓는 막말이 떠오릅니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회고록을 내자 ‘정치 무능아’, ‘못난이 하는 짓마다 사달’, ‘돌부처도 낯을 붉힐 노릇’, ‘역사의 시궁창에 처박힌 산송장’이라 표현했지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시집못간 노처녀의 술주정’ ‘유신군사깡패의 더러운 핏줄’, ‘살인마 악.. 국보 보물 사적 1호의 불편한 진실 “포차 왕래에도 지장이 있는 문이다. 그런 낡아빠진 문은 파괴해버려야 한다.” “한성부(서울시)에 예산이 없어 이전은 너무도 곤란한 것이었다. 그래서 포병대의 도움으로 대포의 탄환으로 문을 포격해서 파괴하는 것도 생각했는데….” 남대문(승례문) 이야기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했을 즈음, 남대문의 운명도 풍전등화 격이었다. 일본인 연구자인 오타 히데하루는 2002년 제출한 서울대 석사논문() 에서 그 사연을 풀어놓는다. 즉 을사늑약의 결과로 통감부가 개설되자 서울 거주 일본인들의 모임인 일본거류민회는 대대적인 ‘도시개조’를 계획했다. 핵심은 용산을 포함한 지역에 40~50만명을 수용할 신시가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1934년 8월27일자 총독부 관보에 오른 보물 목록. 보.. '국보 1호', 정녕 어찌하오리까. 팟 캐스트 18회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겠습니다. 국보 1호 논쟁입니다. 국보 뿐 아니라 보물 1호, 사적 1호도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논쟁은 10년마다 재연되어 왔습니다. 1995·2005년 광복 50·60주년을 맞아 10년 주기로 불거졌지요.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도 재연될 것 같습니다. 문화재청이 2월 말까지 문화재에 부여되는 관리번호지정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한다니 말입니다. 여기에 광복 후 고희(古稀)를 맞는 해니만큼 ‘국보 1호(숭례문)’의 지위를 둘러싼 가열찬 논쟁이 재연되겠네요. 1934년 8월27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나온 사상 첫 지정문화재 목록. 경성 남대문(숭례문)과 경성 동대문(흥인지문)을 보물 1호와 2호로 등재했음을 알 수 있다. .. 이전 1 ··· 34 35 36 37 38 3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