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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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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건진 인류의 역사 이번 주는 화장실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를 하렵니다. 무슨 화장실에 역사가 있겠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있습니다. 왜냐면 화장실 역시 인간의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인간의 틈에서 살지 않는다면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필요없었겠지요. 사람 틈에 끼어있지 않으면 굳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일찍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화장실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라 했습니다.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곳(화장실)은 분명 혼자서도 첫날 밤을 치른 사람처럼 행복할 수 있는 경이로운 곳, ~당신이 그 어느 것도 몸에 지니지 않는 한갓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겸손의 장소~ 그 곳은 인간이 휴식을 취하는 곳, ..
선조실록-수정실록, 어떤 역사였나 요즘 역사가 뜨거운 화두에 올라있는 때입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정권에 따라 역사서술을 바꿨던 과 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 남긴 흔적….’ 뭐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선조실록을 수정하게 된 것은 첨예한 당쟁의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말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 보태자면 선조실록은 애초부터 부실덩어리였다는 점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와중에 사관들이 사초책을 불태우고 줄행랑 쳐버리는 바람에 선조 즉위년(1567)~임진왜란 직전(1592년 4월) 사이 25년의 역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개인기록들을 모아 겨우 실록을 만들었지만 부실덩어리라는 오명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광해군대에 정권을 잡은 대북파가 사필을 잡고 역사를 농단하면서 더욱 ..
비인류 취급받은 역사속 성소수자 50회를 맞은 는 ‘비인류로 취급받은 역사속 성소수자’입니다. 요즘도 성소수자는 엄청난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엔 바티칸 고위 성직자까지 커밍아웃했지만 아주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진보적이며, 소수의 인권에 남다른 애정을 표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는 비정상이라 말씀하시죠. 그런데 성소수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전부터 성정체성이 다른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취향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신라 혜공왕부터 조선조 세종 임금의 며느리까지. 이번 주 팟캐스트에서 다룰 주제입니다.(경향신문 이기환 논설위원) “왕은 원래 여자였는데 남자가 되었다. 첫 돌 때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늘 여자놀이를 하고 자랐다.”() 신라 혜공..
황희 정승 스캔들의 내막 이번 주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의 주제는 ‘황희 스캔들에 얽힌 사연’입니다. 황희 정승이 누구입니까. 어진 재상이라 하기도 하고, 청백리의 상징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록을 보면 좀 다른 평가가 있습니다. 어진 재상이고, 검소하기는 했지만 청렴하지 못했고, 대사헌 시절에는 황금을 뇌물로 받아 ‘황금대사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역적의 아내와 간통했다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기록돼있습니다. 그렇다면 황희는 두 얼굴의 재상이었던 걸까요? 이번 주 팟캐스트는 이 황희 정승을 둘러싼 기막힌 스캔들의 사연을 풀어드릴까 합니다. 과연 황희 정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편찬자들이 비상대책회의까지 열어 다뤘던 황희 스캔들의 내막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이 우러..
기생 화대까지 훑어간 애국기 헌납운동 팟 캐스트 이번 주 주제는 ‘기생의 화대까지 거둔 일제하 애국기 헌납운동’ 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수많은 친일 사례 가운데서도 극적인 친일행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쓰인 비행기 헌납행위일 것입니다. 물론 전쟁의 광란 속에서 일본인들은 물론 조선의 장삼이사까지 강요된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크흘리개 아동부터 기생들의 화대까지 거둬들인 것이지요. 하지만 일제에 아부하려고 지금으로 치면 수 십 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쾌척하면서 비행기를 헌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일제는 쾌척자의 이름을 딴 비행기 명명식을 열어 격려해주었다지요. 그걸 또 선전 제목으로 삼아 전국 방방곡곡의 모범사례로 소개해서 저인망식 헌..
소동파는 왜 고려를 증오한 '혐한파'가 되었을까 소동파를 아십니까. 북송시대의 대문호입니다. 당대 고려에서는 소동파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소동파의 문장은 금은보화가 가득 찬 부잣집 같다'고 했고, 이제현은 '소동파 가문의 3명, 즉 소순 소동파 소철 등을 가리켜 천리마와 봉황 같다'고 극찬했습니다. 아니 오죽했으면 김부식의 아버지 김근은 두 아들의 이름을 소식(소동파)과 소철 형제의 이름을 따서 부식과 부철로 지었겠습니까. 요즘 중국에서 한류가 유행이라지만 고려시대 때는 소동파를 대표로 하는 '송류'가 풍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고려와 고려인들이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했던 소동파가 고려와 고려인들을 무지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혐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동파는 왜 그렇게 고려를..
연산군은 왜 두려운 것은 역사 뿐이라 했나 이번 주 팟 캐스트는 입니다. 그렇습니다. 희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은 왜 역사가 두렵다고 했을까요. 또하나 궁즘증이 생깁니다. 역대 임금들은 왜 사관을 싫어했을까요.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답니다. 사관의 입시를 막고 정사를 논했답니다. 태종은 사관은 보기 싫으니 편전에서 나가라고 명했답니다. 그러나 사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다고 당당히 말했답니다. 그렇다면 사관들은 왜 임금이 싫다는데 목숨을 걸고 역사를 기록했을까요.하나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역사와 사관을 싫어했던 임금들이라도 역사와 사관을 존중했다는 겁니다. 예컨대 중종 임금은 임금의 곁에서 일거수일투족 기록하고야 마는 귀찮은 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붓과 먹으로 모든 나의 과실을 숨김없..
거세당한 사마천이 죽지 않은 이유 2017학년부터 한국사가 수능과목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봐야죠. 하지만 여전히 역사는 암기과목으로 기억됩니다. 그 지긋지긋한 '태정태제문단세~'로 이어지는 암기의 행렬이 뇌를 떠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란 과연 암기과목이고 어려운 것일까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훨씬 지난 시기에 역사가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를 쓴 사마천이라는 분이죠. 알다시피 남성의 중요부위를 잘리는 형벌, 즉 궁형의 처벌을 받고도 '발분의 저작'이자 '불후의 역사서'인 사기를 남긴 분입니다. 사마천은 왜 거세형을 당했으며, 왜 그런 치욕을 받고도 살아남으로 했을까요. 그가 남긴 는 천하의 역사서라 할까요. 이번 주 팟캐스트의 주제입니다./경향신문 이기환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