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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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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동이족의 술사랑 “이건 술이야.” 1974년 초겨울.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핑산(平山). 전국시대(BC 475~BC 221) 중산국(中山國)의 왕릉터에서 흥미로운 유물1만9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액체가 가득 찬 병들이 다수 보였다. 조심스레 분석하던 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곡주(穀酒) 성분이 분명했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2300년 된 술이었다. 예로부터 중산국의 술은 전설로 남을 만큼 유명하다. 중산국에 적희(狄希)라는 술의 명인이 있었다. 그가 만든 ‘천일춘(千日春)’은 대륙을 풍미했다. 어느 날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자가 적희를 찾아왔다. “술맛 한번 보게 해주시면….” 적희가 “아직 숙성이 덜 됐다”고 말렸다. 하지만 유현석은 막무가내로 마셔버렸고, 술에 취해 죽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이 ..
2000년 전 백제인의 발자국 “응? 이거 뭐야?” 1999년 8월 어느 날. 풍납토성 성벽을 잘라 조사하던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은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누군가 뻘층에 남긴 발자국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양생 중인 콘크리트에 실수로 발자국을 찍은 것이죠. 백제는 최소한 2차례 이상에 걸쳐 풍납토성을 완성했는데요. 발자국이 찍힌 곳의 연대측정 결과 늦어도 AD 200년 쯤으로 측정됩니다.”(당시 신종국 학예사) 그러니까 적어도 1800년 전 한성백제인의 발자국인 것이다. 발자국은 폭 12㎝, 길이 36㎝ 정도됐다. 뻘을 밟으면서 밀려 실제의 발 크기보다 크게 나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발자국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였을까. 풍납토성은 한성백제(BC 18~AD 475년)의 왕성으로 지목된 곳이다. 백제 시조 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