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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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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화장실 출토 ‘가로피리’…‘만능뮤지션’ 공자 왈(曰), “음악은 정치다” 얼마 전 근래에 보기드문, 아주 흥미로운 고고학 발굴 성과가 공개됐다.(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목간 329점과, 관악기(橫笛·일종의 가로피리) 1점이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관북리는 사비백제 시대(538~660) 왕궁터로 알려진 곳이다. 1982년부터 조사해왔고, 지금까지 대형 건물터와 수로, 도로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는 2024~25년 사이 펼쳐진 16차 발굴이었다. 우선 필자의 주된 관심이 아닌 목간부터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자. 목간은 건물터 3동의 서쪽을 흐르고 있던 수로 안에서 집중 확인됐다. 국내 단일유적에서 출토된 목간 중 최대 수량이라 한다. 이중 ‘경신년(庚申年)’ ‘계해년(癸亥年)’과 같은 간지명 명문이 주목됐다. 또 목간과 함께 출토된 초본식물의..
덕후(벽·癖) 아닌 자와 사귀지 마라”…‘기괴’ ‘집착’ 역대급 마니아의 총집결 “벽(癖·덕후 혹은 마니아)이 없으면 버림받은 사람이다…” 지난 1월 초 중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한·중 벤처 스타트업 서밋에 참석하여 조선의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1750~1805)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 선생이 청나라 유수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조선 내에서 혁신을 강조하고 주장했다”고 언급했다. 박제가는 개방적 사유와 국제적 시각을 갖춘 대표 학자라 할 수 있다. 4번이나 북경을 방문해서 110명이 넘는 인물들과 교유했다. 한족 뿐 아니라 만주족, 베트남 지식인, 위구르 왕자 등과도 소통했다. 그렇게 쌓은 인맥을 통해 국제적 시각을 갖추고 얻은 정보를 역작인 라는 책에 담았다. ■박제가의 덕후 찬양론 그런데 이 대목에서 ‘박제가’의 색다른 어록 하나를 떠올렸다. 맨 앞..
"온통 고려스타일! 세상 미쳤다"…'원조 K컬처' 열풍에 발칵 뒤집힌 원나라 “보초를 서는 병사들 고려 언어 배우네. 어깨동무 하며 낮게 노래 부르니….(衛兵學得高麗語 連臂低歌井卽梨)” 원나라 말 문인인 장욱(1271~1368)이 읊은 시(‘연하곡서·輦下曲序’)이다. 원나라 병사들이 보초를 설 때 어깨동무하면서 고려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 말미의 ‘정즉리(井卽梨)’를 두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이것을 ‘우물가에 배가 익어간다’거나 ‘우물가 배나무에서~’로 푸는 연구자가 있다. 또 ‘정즉리’를 ‘jingjili(징즈리)’로 읽으면서 당대 고려의 단체 가무곡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발 더 나아가 ‘jingjili(징지리·井卽梨)’는 한글로 표기한 한자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 경우 ‘jingji(징즈·井卽)는 한국어인 ‘경기’와 비슷하며 ‘li(리·梨)’는..
똥화석, 신라 이모티콘, 조선판 댓글…33번의 역사여행, ‘하이-스토리 한국사’ 1970년대 여성 운동가인 로빈 모건(Robin Morgan)이 ‘herstory’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역사(history)가 남성 중심의 이야기, 즉 ‘his-story’라 규정하면서 여성의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쓰고 이야기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인 historia, 즉 ‘탐구로 얻어지는 지식’의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모건의 주장은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후 historia는 변모되고 확장되어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한 기록’으로, 다시 ‘인간 공동체 및 사건의 역사’라는 지금의 의미로 바뀌었다. 동양에서 ‘역사(歷史)’는 ‘지나온 발자취(歷)의 기록(史)’이다(歷의 갑골문은 사람의 발이 숲을 지나가는 모습이다). 따라서 ‘히스토리’는 동양에서도 서양에서..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3·1운동 급소환한 '금동관 고분' “전라도 남부와 제주도는 왜인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조선인에게는 일본인의 피가 섞여있다…”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1880~1959)라는 인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의 고구려·낙랑 고분과 부여 능산리 고분은 물론이고 전남 나주 반남 고분을 파헤친 역사·고고학자이다. 그런 그가 1920년 (1월·151호)에 기고한 글(‘상고시대 일·한 관계의 일부·上世に 於ける 日韓關係の 一斑’)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1500년전 금동관 1917년 전남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분에서 확인된 금동관(국보). 국내에서 출토된 금(동)관 가운데 가장 먼저 출토된 완형이다. 꽃봉오리와 구슬, 덩굴풀 무늬 등을 장식한 풀꽃형 금동관이다.|사진 국립나주박물관·그림 이한상 대전대 교수 제공 “조선의 남부에는 왜인 고분이 있..
‘7일의 왕비’, 233년만의 '복위'에 538명중 537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7일의 왕후’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된 지 233년만인 1739년 복위되면서 ‘단경’이라는 시호를 받고 종묘에 신주가 안장되는 과정을 그린 반차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516년 3월28일 (‘세가·명종’)를 읽던 상(중종)이 깊은 한숨을 쉬며…‘멍’하니 있었다.”() 조선조 중종이 를 읽다가 시쳇말로 ‘멍 때렸다’는 기사입니다. 문제의 구절은 ‘고려 무신정권의 핵심인 최충수(?~1197)가 태자(희종·1204~1211)의 조강지처(태자비)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 했던 대목’입니다. 최충수 때문에 쫓겨난 태자비가 흐느껴 울자 궁궐이 눈물바다를 이뤘다는 겁니다. 중종은 서슬퍼런 신하의 겁박에 조강지처를 내쳐야 했던 고려 희종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낀 겁니다. 의 사관도 중종의 심정을 대변합니..
"뼈가 가루가 되도록 싸웠다’…사료 만으로 따져본 양규의 7전승 신화 “나는 왕명을 받고 왔지, 강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我受王命而來 非受兆命)”(양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을 계기로 새삼 부각되는 역사적인 인물 두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고려판 세종대왕’으로 통하는 고려 현종(992~1031, 재위 1009~1031)이죠. 1254년 몽골의 잇단 침략에 시달리던 고종(1231~1259)이 종묘에서 ‘국난 극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면서 ‘현종=세종대왕’으로 지칭하죠. “세종대왕(世宗大王·현종)께서 큰 난리를 평정하여 중흥과 반정(反正)의 공을 세웠다”고 표현한 겁니다. 본래 ‘세종’이라는 묘호는 나라를 중흥시켰거나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에게 사후에 올리는 건데요. 현종은 비록 ‘세종’의 묘호를 받지는 않았어도 고려시대 내내 ..
'고려도경' 서긍은 간첩단 두목이었다…송나라 사신단의 ‘넘버4맨' 쓴다 쓴다 하면서 미뤄뒀다가 해를 넘긴 아이템이 있습니다. 을 쓴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고려를 방문한 지 900주년 되는 해가 2023년이었는데요. 그러나 그냥 넘길 수 없죠. 음력으로 치면 아직 해가 바뀌지도 않았고요. 고려를 방문하고 귀국한 서긍이 을 써서 송 휘종(1100~1125)에게 바친 것이 1124년(인종2)이었습니다. 따라서 2024년은 편찬 900주년이 되는 해가 됩니다. 그러니 ‘~주년 기념’ 기사는 유효하겠지요. ■비색청자와 세밀가귀 하면 ‘비색청자’가 첫손가락으로 꼽히죠. “도기의 푸른 빛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 하는데, 근래에 더욱 정교해져서 빛깔이 좋아졌다.”( ‘기명3·도준’) 고 했습니다. 나전칠기의 정교함과 세밀함을 일컫는 ‘세밀가귀(細密可貴)’도 빼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