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146) 썸네일형 리스트형 ‘마른 하늘에 날벼락’부터 ‘시신 소각’까지…왕릉의 저주 사실일까 “날씨 비온 뒤 맑음. 금관을 들어 올릴 때 청명하던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모두들 급변한 천기에 무섭고 놀라서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금관을 수습하여….” 경주 천마총 발굴단의 1973년 7월27일자 ‘발굴일지’의 내용입니다. 천마총 발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후일담이죠. 이 이야기는 “조사원과 인부들은 놀라 혼비백산, 옮기던 상자를 그 자리에 내려놓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현장사무실로 뛰었다”는 것으로 ‘봉대(棒大)’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뇌성벽력으로 놀란 가슴 진정시킨 뒤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지었다는 얘기였겠죠. 그런데 금관 상자를 무덤 밖으로 옮기자 암흑천지였던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개었다는 겁니다. 이전부터 조짐은 있.. 연산군이 질탕하게 놀았던 탕춘대…왜 유네스코 세계유산 감인가 “연산군이 황음무도한 짓을 벌인 탕춘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감이라고?” 최근 문화재청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포함한 ‘한양의 수도성곽’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후보로 선정했습니다. 이에따라 올해 9월에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예비평가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여기서 ‘탕춘대’의 유래를 안다면 납득이 가지 않을 분들도 있을 겁니다. 왜냐면 ‘탕춘대’는 중종반정 때(1506년 9월2일) 연산군이 시녀들과 질탕하게 놀았던 ‘문제적 장소’로 지목된 곳이니까요. ■탕춘대 돌구유에서의 음란행위 “…큰 정자를 지어…밤낮으로 시녀들과 놀았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삼각산 밑 장의사동의 탕춘정인데….”() ‘탕춘정(대)’가 들어섰다는 ‘삼각산 밑 장의사동’은 세검정 초등학교 인근을 가리킵니다. ‘.. 'Coreen 109' <직지>는 120년전 단돈 180프랑에 팔렸었다. 그러나… 최근 문화유산계의 화제는 단연 입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7월16일까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에 를 50년만에 공개하고 있는데요. 특별전에서 는 첫번째 유물로 소개되고 있답니다. 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임을 재차 확인한 겁니다. 그런데 이번 특별전 기사를 준비하면서 저는 한가지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말로만 , 했지, 과연 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두말할 것없이 는 ‘학계의 공인을 받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1377)’이죠.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직지’와 관련해서 잘 모르거나, 기본 팩트조차 잘못 알려진 일화가 많습니다. 연구자인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의 논문과 단행본 등을 토대로 자세히 알아봅니다. ■손가락으로 직접 가리킨다는 .. '탈출 미수극'에 '영감!'소리 들은 광해군 일가…폭군 대접 과연 옳은가 “‘영감’(爺爺)은 임금으로서 무엇이 부족해서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았소…‘영감’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말투가 요상하죠. 임금을 ‘영감!’이라 지칭하면서 뇌물로 받아챙긴 파렴치한으로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요. 이 발언의 주인공은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1608~1623)를 모신 궁비(궁궐 여종)입니다. 광해군은 이때 워낙 싸가지없이 구는 궁비를 꾸짖었는데요. 그러자 이 궁비가 “‘대체 누구 더러 제대로 모시라’고 호통을 치는 거냐. 영감이야 정치를 잘못해서 위리안치됐지만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쏘아붙인 겁니다. 그렇다면 광해군 면전에서 내뱉은 궁비의 질타는 ‘사이다 발언’이었겠네요. 그러나 100%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봅니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한결같.. 1400년전 초대형 '백제 냉장고'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가 사용했을까 막상 와서 보니까 대단하네.” 얼마전 전북 익산 서동생가터에서 공개된 6~7세기 ‘백제판 냉장고’를 현장에서 직접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우선 규모가 비슷한 2기가 아주 정연하게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고요. 규모 또한 상상 이상입니다. 두 기 모두 길이가 4.9m(1호)~5.3m(2호), 너비가 2.4m(1호)~2.5m(2호)나 되는데요. 무엇보다 깊이가 생각보다 엄청 깊습니다. 2.3(1호)~2.4m(2호)나 되는데요.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보이지 않고요. 사다리를 타야 겨우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각 냉장고의 벽면을 정연하면서 조밀하게 쌓아놓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더운 바람을 내보내는 통기구 두 유구가 ‘백제판 냉장고’ 였음을 알리는 장치가 또 백미죠. 각 유구의 동쪽 긴.. '법정 은퇴연령 70세인데…' 숙종·영조는 왜 50대에 노인대접 받았을까 ‘기로(耆老)’라는 말이 있습니다. ‘늙을 기(耆)’에 ‘늙을 노(老)’ 이므로 노인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곡례 상’은 “60세는 기(耆)이며, 남에게 일을 시켜도 되는 나이(六十耆指使)이고, 70세는 노(老)이며, 자기 일을 넘겨주고 은퇴하는 나이(七十曰老而傳)”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즉 ‘기로’는 예순살(60)이 넘어가면 노인 대접을 받고, 일흔살(70)이 되면 정년퇴직 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70세가 되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법은 있었습니다. 임금에게서 궤장(궤丈·의자와 지팡이)을 하사받는 것인데요.( ‘곡례·상’) 예컨대 신라 문무왕은 664년 70세가 된 김유신(595~673)에게 궤장을 하사했습니다.( ‘열전·김유신’조) 존경의 의미와 함께 은퇴하지 말고 임금이 내려준 지팡.. 임진왜란 때 항복한 일본인 1만명이었다…"우리 조선!" 외쳤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2~3만명(일본측 자료)에서 10만~40만명(조선측 자료)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어땠을까요. 그 숫자가 1만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597년(선조 30) 5월18일 도원수 권율(1537~1599)이 적진에 밀파된 첩자들의 보고를 정리해서 조정에 알렸는데요. “왜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항왜(항복한 일본인)의 수가 이미 1만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일본의 용병술을 다 털어놓았을테니 심히 걱정된다고 수근거린답니다.”() 한 연구자가 에 등장하는 항왜(귀화 혹은 항복한 일본인)의 수를 집계했는데요. 모두 42건에 600명에 달합니다. 기록된 숫자만 이 정도이니, 갖가지 이유로 항복하거나 귀화한 왜인들이.. 사명대사는 "가토 기요마사, 그대의 목이 조선의 보배"라 했다 얼마전 문화재청이 강원 고성 건봉사터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승격 지정했습니다. 그런 대접을 받을만 합니다. 건봉사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남쪽 끝인 향로봉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520년 고구려 여인(고도령)과 중국 사신(위나라 아굴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한 ‘염불만일회’의 전통을 간직한 사찰이기도 합니다. 758년 발징 스님이 수행승 31인과 향도계원 1280인과 함께 1만일(27년 5개월)동안 ‘아미타불’ 염불을 외며 신생을 닦는 의식을 벌였다죠. 1만일이 되던 787년 어느날 아미타부처의 가호로 31인의 육신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961인의 향도와 함께 극락세계로 왕생했답니다. 능파교(보물)와 불이문(문화재 자료) 같은 문화유산이 존재하고.. 이전 1 2 3 4 5 6 ···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