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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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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훈민정음 '상주본'이 1조원?…꽁꽁 숨겨도 1원도 안된다 며칠전 무더위에 고구마처럼 답답한 소식이 전해졌죠. 문화재청 사범 단속반이 지난 5월 (이하 상주본)의 강제회수를 위해 불법소장자인 배익기씨의 집과 사무실 지인의 다방 금고 등 3곳을 수색했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데요. 단속반은 “유력한 제보전화를 받고 한층 기대를 안고 수색했는데 은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분명히 집이나 사무실 등 본인의 통제가 가능한 곳에 숨겨 놓았을 것 같은데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는 겁니다. 2015년 배씨 집에 난 화재로 불에 그을린 일부가 공개(2017년)된 이후 5년 이상 행방이 묘연한데요. 제대로 남아있기는 한지 어떤지 도통 알 수 없으니 정말 속터져 죽을 노릇입니다. ■1조원 가치라고… 이 즈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배익기씨는 “의 ..
"안중근 의사의 글씨 31점이나 보물입니다"…이의있습니까 “아니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며칠전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팀장이 약간 곤혹스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전 문화재청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 5점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거든요. 일종의 항의 전화 요점은 이겁니다. 역사상 3대 명필 중 두 분인 한호 석봉(1543~1605)이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예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두 분보다 결코 잘 썼다고 할 수 없는 안 의사의 유묵이 너무 많이 보물로 지정되는거 아니냐, 뭐 이런 문제제기 였습니다. ■개인최다 33점이 보물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5점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중국 뤼순(旅順)감옥에서 순국하기 전인 1910년 3월에 쓴 유묵입니다. 이중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는..
1437년 세종대왕이 관측한 그 별…579년후 알고보니 신성폭발이었다 2022년 6월 21일은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우주궤도에 안착한 날이죠. 이제 자력으로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지구 상공 700㎞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7번째 국가(러시아·미국·유럽·중국·일본·인도)가 되었는데요.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우주에 갈 수 있는 우주독립을 실현했다 할까요. 벌써 2030년이면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와 탐사선을 달에 보내고, 나아가서는 화성까지 탐사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답니다. ■“우주로 나가라”는 홍대용의 설파 명색이 ‘히스토리텔러’인 저는 몇몇 칼럼에 주목했어요. 과거 천문·우주를 향한 가없는 호기심과 관심을 쏟았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은 원래 우리 조상들은 세계최고의 ..
“50억원 유혹도 ‘만장일치’로 뿌리쳤다”…겸재 정선 화첩의 ‘선한 귀환’ “뭔가를 주려면 기꺼이 줘야 합니다.” 2005년 10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에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원장)가 (21점)을 기증하며 언급한 담화문 중 한 구절입니다. 슈뢰더 원장의 담화문을 더 볼까요. “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겸재 정선 화첩’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12명으로 이뤄진 수도원 장로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반환결정은 올바른 것이며,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은 1911년과 1925년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1780~1956) 신부가 가져간 그림첩이었습니다. 화첩은 ‘금강내산전도’와 ‘만폭동도’, ‘구룡폭도’ 등 금강산 그림 3폭과,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가 함흥의 고향집에 심었다는 소나무를 그린 ‘함흥본궁송도’ 등 18폭이 담..
세종대왕이 18왕자를 2열횡대로 세웠다…숨어있던 19남 나타났다 얼마전 ‘인종대왕 태실’과, ‘장조(사도세자)·순조·헌종 태봉도’(3점)가 보물로 지정예고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왕실의 태를 묻은 태실(인종태실)과, 태실의 위치도를 그린 태봉도 3점(장조·순조·헌종)의 문화유산 가치를 평가한 건데요. 태는 태아를 싸고 있는 조직입니다. 산모가 태아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태반과 탯줄’을 가리킵니다. 궁금증이 생기죠. 아무리 왕실 자녀의 태라지만, 어떤 의미가 있기에 국가지정문화재로 대접해준단 말입니까. ■“탯줄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1570년(선조 3) 2월1일 을 볼까요. “태실을 조성하는 풍습은 신라와 고려 사이에 생겼는데, 예부터 중국에는 없었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김유신 열전’은 “김유신(595~673)의 태를 높은 산(충북 진천)에 묻었는데, 지금(..
‘경복궁에 포탄 6발 터졌다’…유물 2만점 미국·부산으로 피란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25일이었습니다. 북한군의 공세에 낙동강까지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 국립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에 국방부 제3국장 김일환 대령(1914~2001)이 찾아옵니다. “경주 분관 소장 유물을 소개(疏開·분산 이동)하라는 대통령의 긴급 지령으로 왔습니다.” 북한군이 이미 국립박물관 서울본관은 물론 개성·부여·공주분관까지 접수했거든요. 남은 곳은 경주 분관 뿐이었습니다. 박물관측은 즉시 유물선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으로 피란간 국보급 유물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금관총 출토품(1921년) 등 국보급 유물 총 139점이 낙점되었습니다. 선택된 유물들은 대구 한국운행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당시 대구에는 한국은행 소장 금괴(금 1.07t)가 역시..
“저기 반짝거리는 물체가…” 두 인부가 찾아낸 0.05mm 금박 화조도 며칠전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엄청난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가로 3.6㎝, 세로 1.17㎝, 두께 0.04㎜의 금판에 0.05㎜ 이하 선으로 한 쌍의 새(쌍조)와 꽃(團華·둥근 꽃무늬)을 조밀하게 새긴 이른바 ‘금박 화조도’의 출현을 알렸죠. 기사의 일보는 이미 보도되었으니까요. 저는 이 극초정밀 유물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동궁과 월지’가 어떤 유적인지 그 기막힌 스토리를 ‘발굴’해보고자 합니다. ■심상치않은 인부들의 눈썰미 2016년 11월이었습니다. ‘동궁과 월지’와 접한 동쪽지역을 발굴중이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조사를 마무리할 작정이었습니다. 유적과 인접해서 일제강점기에 부설된 동해남부선의 철로(폐선)가 지나고 있는데요. 그 철로 옆에 조성된 배수로에..
‘광화문 현판’에 웬 색깔 논쟁?…경복궁을 '물바다'로 만든 사연 1997년 11월11일, 경복궁 내 경회루 연못을 준설하던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단이 흥미로운 유물 하나를 건져냈습니다. 큰 돌에 눌린채 직사각형 돌판 위에 놓여있던 청동용이었는데요. 몸과 머리가 분리됐고, 발도 일부 절단된 상태여서 그리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청동용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는데요. 혀를 쑥 내밀고 콧수염을 동그랗게 만, 해학적인 형상의 청동용(龍)이었답니다. 조사단은 무릎을 쳤습니다. ■경회루 연못에서 혀를 내민 청동용이 조선 후기 유학자인 정학순(1805~1890)이 경회루의 건축원리를 기록한 (1865년 제작)를 떠올린 건데요. 즉 는 “경회루 연못의 북쪽(감방·坎方·물의 방향)에 (불을 진압한다는 의미에서) 물의 신인 청동용(銅龍) 두마리를 잠겨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