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60)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조, "나는 게장을 올리지 않았네."-경종 죽음의 전모(하) 그 뿐이 아니었다. 더욱 구체적인 증거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1722년 4월 20일자를 보라. 조흡이라는 인물의 진술인데, 상당히 구체적이다. (왕세자의 처조카인) 서덕수가 동궁(왕세제의 처소)의 별실에서 궁녀를 상대로 독약을 시험했는데, 그 궁녀가 죽어나갔다는 것이다. 서덕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들은 궁녀가 죽어나간 소문을 듣지 못했는가.” '영조왕세제수책시 책례도감의궤'. 우여곡절 끝에 왕세제에 오른 연잉군과 부인인 달성군 서씨의 책봉과정을 적은 의궤이다.|서울대 규장각 소장 ■시험삼아 궁녀와 종5품 내명부 여인을 독살시키다 그러면서 서덕수가 “이 약이 신통한 효험이 있으니 다른 곳에 쓰려고 한다”면서 “그 약을 구하려면 천 여 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10여 일 후인 5월.. '낮퇴계 밤토끼' 퇴계의 부부관계론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을 대표하는 도학자입니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며 인간의 욕망을 없애는(存天理 滅人慾) 학자라는 소리죠. 그래서 퇴계 선생을 두고 공자와 주자의 맥을 잇는 성인이라는 뜻에서 이자(李子)라 높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민간에 전승된 구비설화를 보면 퇴계는 음담패설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니 말입니다. 뭐 ‘낮퇴계, 밤토끼’니 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퇴계 선생은 심지어 “부부관계란 너무 점잖게 하면 안되는거야. 비바람 치듯 요란하게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퇴계를 둘러싼 요절복통의 음담패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참으로 반전 캐릭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퇴계 선생에게 이런 음담패설이 집중되는 걸까요. 평소 “부부란 .. "차라리 XX를 잘라버리자"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치르는구나!” 1803년 전남 강진의 갈밭에 살던 백성이 칼을 뽑아 자신의 남근(男根)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남근을 들고 관아 문을 두드렸다. 아내가 울며불며, 하소연 했지만 소용없었다. 문지기가 가로막고선 관아의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체 무슨 사정이었을까. 자해한 남성은 사흘 전에 아이를 낳았다. 그러자 마을 이장이 이 핏덩이를 사흘만에 군적에 편입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백성의 소(牛)를 토색질해갔다. 그렇게 되자 아이의 아비는 자신이 남근을 잘못 놀린 탓에 아이를 낳았다고 자책하고는 자해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 고발한 ‘군정 문란’의 생생한 현장이다.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이 1808년부터 10.. 승리한 패배자 경순왕, 왜 임진강변에 묻혔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무덤은 경주에 없습니다. 경순왕릉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임진강변에 있습니다. 그것도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궁금증이 생깁니다. 경순왕은 왜 고향땅을 두고 머나먼 임진강변에 묻혔을까요. 거기에는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답니다. 경순왕을 흔히 신라의 천년사직을 고려에 고스란히 바친 무능한 군주로 치부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우선 망국 후에도 43년을 더 살았고, 고려 태조 왕건보다 34년을 더 장수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의 후손들이 고려왕조를 지탱했습니다. 그래서 사가들은 경순왕을 두고 '승리한 패배자'라는 소리를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4회 주제는 '승리한 패배자 경순.. 국보 1호 숭례문 과연 바꿔야 할까 10년마다 재연되는 논쟁이 있습니다. 국보 1호 논쟁입니다. 1995·2005년 광복 50·60주년을 맞아 10년 주기로 불거졌지요. 광복 70주년을 맞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도 해묵은 논쟁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 우리문화지킴이, 국어문화실천협의회가 5월31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답니다. 문화재청은 이미 올 2월 문화재에 부여되는 관리번호지정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습니다. ‘국보 1호(숭례문)’의 지위를 둘러싼 가열찬 논쟁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1934년 조선총독부 관보에 고시된 보물지정목록. 남대문과 동대문이 1,2호로 등재돼있다. 사실 논쟁의 레퍼토리는 뻔합니다. 국보 1호 변경을 주장.. 베르됭 전투와 백마고지 전투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했던 1914년 8월4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트라팔가 광장을 메운 시민들이 충격과 공포 대신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비단 영국 뿐이 아니었다. 전 유럽이 전쟁을 무슨 월드컵 축구처럼 즐겼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제1차대전은 지루한 ‘참호전’의 양상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독일군 총참모총장인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전 전선에 흩어져있는 프랑스군의 전력을 한곳에 몬 뒤 그곳만 집중적으로 때려 궤멸시키자는 작전을 폈다. 이 작전은 ‘고기분쇄기’로 일컬어졌다. 프랑스군을 모아서 한꺼번에 갈아벌인다는 뜻이었다. 공격유인목표는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고, 두우몽과 보 요새가 철옹성을 보호하고 있던 베르됭 지역이었다. 1916년 2월21일 새벽 4시..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미스김라일락 예전에 동료 기자가 ‘무명초’ 기사를 썼다가 독자에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도대체 이름 없는 식물이 어디있냐’는 것이다. 하기야 ‘이름 모를 풀’이라면 모를까 ‘이름 없는 풀’이라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다. 식물도감을 들여다보면 기기묘묘한 이름들로 가득차 있다. “개불알꽃을 보았다. 우리 집 바둑이의 불알과 너무도 닮았다. 바둑이는 좋겠다. 불알에도 꽃이 피니까.” 정호승 시인의 ‘개불알꽃’(위 사진)이다. 일제 강점기에 열매가 ‘개의 음낭’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누노후구리(犬の陰囊)’라 망측한 이름을 붙인 것을 우리 말로 그대로 옮겼다. ‘며느리밑씻개’(아래사진) 역시 일본 이름인 ‘마마코노시리누구이(의붓자식밑씻개·繼子の尻拭い)’에서 유래됐다. 어떻게 일본의 의붓자식이 어떻게 이 땅에 .. 간신과 혼군은 영원한 콤비다 얼마 전 여권에서 간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뭐 ‘한번 간신은 영원한 간신이니, 비루한 간신이니, 입안의 혀처럼 구는 간신이니’ 하는 사나운 말이 나왔습니다. 이왕 간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신에 담긴 모든 사연을 한번 담아보겠습니다. 살펴보니 간신이라는 낱말과 세트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혼군(암군) 혹은 폭군입니다. 간신과 혼군(암군, 폭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를 쓴 편찬자들은 ‘간신열전’을 집필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간신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현명한 임금이 있으면 간신들이 술수를 부릴 수 없었다”고…. 한때 ‘개원지치’의 태평성대를 구가한 당 현종은 명재상 한휴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휴 때문에 백성.. 이전 1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1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