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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있는 까닭 1987년 5월 어느 날. 제주도 서쪽 끝 마을인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흙을 갈고 있던 마을주민 좌정인(左禎仁)씨가 돌 두 점을 주웠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고?” 고구마처럼 생긴 돌이었는데, 예사롭지 않았다. 좌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돌 두 점을 집으로 가져갔다. “(윤)덕중아, 이 돌들이 이상하게 생겼는데 한번 봐라.” 마을엔 제주대 사학과에 다니던 윤덕중이란 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 이 심상치 않은 돌을 보여준 것이다. 윤덕중 학생은 이 돌 두 점을 다시 스승인 이청규 제주대 교수(현 영남대)에게 보여주었다. 이 교수는 곧 돌을 수습한 현장에서 지표조사를 벌였다. 고산리에서 확인한 융기문토기. 토기는 신석기인들의 화폭이었고, 그들은 토기에 빼어난 예술성을 뽐냈다. ■농부가 찾..
현대미술관장 마리, 과연 무엇을 검열했나 지난 3월16일 아침,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짐승과 주권(The Beast and the Sovereign)’ 특별전을 위해 설치 중이던 작품 하나를 본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이네스 두약(57)의 ‘Not Dressed for Conquering(정복을 위한 옷벗음·사진)’이었다. 작품은 전 스페인 국왕인 후앙 카를로스 1세와 볼리비아의 여성노동운동가 도미틸라 충가라, 그리고 개 한마리가 뒤엉켜 성교하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카를로스 1세는 꽃을 토하고 있고, 나치 친위대(SS)의 헬밋들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마리는 “이 작품을 전시에서 빼라”고 했지만 작가와 큐레이터들은 묵살했다. “관장이 이미 지난 2월 작품의 대여목록을 보고 서명하지 않..
'복면 사관'과 역사가의 조건 정부는 국정 역사 교과서의 집필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쳇말로 ‘복면 사관’을 만든 겁니다. 뿐이 아니라 집필자의 원고 등을 심의할 심의위원들의 명단도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요. 사람들은 흔히 전근대적인 행위나 사고를 ‘왕조시대’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비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왕조시대인 조선의 사관선발 절차를 한번 보겠습니다. 과연 ‘왕조시대’라 손가락질 할 수 있겠습니까. 왕조시대의 사관? 아무나 될 수 없었습니다. 사관이 갖춰야 할 조건이 3가지라 해서 ‘삼장(三長)’이라 했습니다. 삼장의 덕목을 갖춘 사관을 뽑는 작업은 혹독했습니다. 지금 어떻습니까. 정녕 제대로 된 사관을 뽑고 있는 것입니까. 또 우리의 지도자들은 과연 중종처럼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
창비 정신과 백낙청 1966년 1월15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잡지가 창간됐다. 이름조차 생소한 (창비)이었다. 한자를 대폭 줄여 순 한글체를 표방하면서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가로짜기 편집까지 도입했다. 파격의 잡지를 펴낸 이는 28살의 서울대 전임강사 백낙청이었다. 편집실은 백낙청의 집이었고, 2000부를 찍어낸 제작비는 9만원이었다. 당시 사립대 등록금이 3만원 정도였으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백낙청은 창간사 대신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실었다. 그는 ‘서구처럼 중산층이 발달한 적이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순수문학을 내세운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며, 한국의 순수주의는 권위주의와 비생산성, 족벌주의, 관권 등 조선 양반계급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꼬집었다. 순수문학의 허위와 추상을 비판하고 현실참여를 ..
'에이브(abe)와 아베(abe), 오바마의 칠면조 사면 칠면조가 매일 아침 먹이를 주는 주인을 기다리게 됐다. ‘이 시간만 되면 곧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하고 귀납적 추리의 결론을 낸 것이다. 칠면조는 어느 날 아침 9시가 되자 주인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인은 애타게 기다리던 칠면조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추수감사절의 전날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일반화의 오류를 표현하면서 예를 든 ‘러셀의 칠면조’이다. 1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무사했으니 오늘도 괜찮겠지 하는 귀납 추론이 세월호 침몰이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사고를 낳는 것이다. 러셀은 거창한 철학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칠면조를 예로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새의 박복한 운명을 웅변했다고 할 수 있다. 칠면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야생으로 수천마리씩 떼지어 살고 있었다. 그..
당나라군 무찌른 신라의 비법 이번 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는 '당나라군 무찌른 신비의 비책'입니다. 신라는 알다시피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외세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요. 그런데 신라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당나라는 처음부터 백제 고구려를 함락시킨 뒤에 신라까지 도모하여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나라의 야욕은 백제를 멸망시킨 뒤부터 마각을 드러냅니다. 군량미와 군복 등을 모두 신라 땅에서 조달해서 신라백성들을 도탄해 빠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신라 군대를 이리 오라 저리 오라 하여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도와 신라를 압박하는, 신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넌 만행을 저지릅니다. 신라 문무왕은 가만 있지 않습니다. 한편으..
대도무문의 참뜻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징어는 뭐니뭐니 해도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1979년 5월 신민당 총재직에 복귀한 김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 정직하게 나가면 문이 열린다”고 밝혔다. “신의와 지조를 가진 사람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독했던 독재정권 시절 선명 야당의 기치를 걸고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김 전 대통령은 당시엔 나름 ‘대도무문’의 길을 걸었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그러나 1990년의 ‘3당 합당’을 야합으로 규정한 야권으로부터 ‘대권무문(大權無門)’이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1993년 방한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앞에서 대도무문 휘호를 써보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 또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도무문’ 글자를 새긴 시계가 대량 제작됐을 때는 ‘대도무문(大盜無門)’이라고..
마한인들의 지하주택단지(2) 지난 2008년 고고학자 조유전 선생과 천하를 주유하며 한국사여행을 떠난 때가 떠오릅니다. 전국에 흩어진 고고학 발굴 자료를 중심으로 떠난 여행입니다. 당시 조유전 선생은 토지박물관장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공직을 떠나셨습니다.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조유전 선생과 함께 떠나고 싶습니다. 그 전에 필자와 조유전 선생이 떠났던 추억여행을 반추해 보려 합니다. 매주 1회씩 게재하오니 많은 사랑 바랍니다. 이번 주는 2000년전 마한인들의 삶의 터전이 확인된 충남 공주 탄천면의 장선리 유적을 찾아봅니다(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 “선생님은 ‘발굴복(福)’이 있으셨나요?”(기자) “허허, ‘발굴복’이라. 글쎄…. 그저 ‘소소(So So)’라 할 수 있지.”(조유전 선생) “하기야 천하의 김원룡 선생도 생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