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60) 썸네일형 리스트형 세작인가 X맨인가 간첩질이나 스파이 노릇을 뜻하는 말 중에 ‘세작(細作)’이라는 어려운 말이 있다. 당나라 육덕명이 “첩자(諜者)의 첩은 간첩의 첩이며, 지금으로 치면 세작이다”라 풀었으니 첩자·간첩·세작은 다 같은 말이다. 세작은 절대 비겁한 전략이 아니다. ‘용간(用間)’편은 ‘백성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서 승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첩자를 통해 적정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법이니 전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책략이라 할 수 있다. 4만근의 황금을 첩자들에게 풀어 초나라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갈라놓은 한나라 진평의 계책은 세작의 전범으로 꼽힌다. 세작인들은 초나라로 들어가 책사 범증이 항우를 배신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 의심에 빠진 항우가 적정도 살필 겸 사신을 보낸다. 그러자 유방이 ‘몰래카메라’.. 파란만장한 창의문 옛길 어릴 적 창의문(서울 종로) 근처에서 자랐던 필자에게 지금도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이 몇 편 있다. 늘 굳게 잠겨 있던 자하문(紫霞門·창의문의 별칭)과, 수확철이면 어머니가 문밖 과수원에서 한 대야씩 사왔던 능금, 소나무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송충이, 그리고 끔찍한 1968년 1월21일의 밤…. 그런데 필자의 어릴 적 기억들이 창의문의 심상찮은 역사와 맞닿아 있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창의문은 소의문·광희문·혜화문과 함께 조선의 4소문으로 건립됐지만 초창기부터 출입이 통제되는 비운을 맛봤다. “창의문이 경복궁을 위에서 찍어누르는 형국이니 소나무를 심어 출입을 금해야 한다”는 풍수가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창의문은 인조반정의 현장이기도 하다. 1623년 3월13일 장단부사 이서 등이 이끄는 인조반정군은 창의문.. '사무사(思無邪)'와 아베 정권 “시 300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위정편’) 유명한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발언이다. 공자는 민간에서 전승됐던 시 300여편을 모은 을 가리켜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주옥같은 시 모음집’이라고 칭송했다. ‘사무사’는 공자의 창작 용어가 아니다. 의 한 편인 ‘노송(魯頌) 경편(경篇)’에 등장하는 ‘사무사’ 구절을 인용했을 뿐이다. 무라야마 전 일본총리는 9일 열린 고노 전 관방장관과의 대담에 앞서'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를 적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왜곡을 꾸짖는 것이었다.|연합뉴스 “~생각에 사특함이 없으니 말(馬)을 생각함에 이에 미치는구나(思無邪 思馬斯조)”라는 대목이다. 이 시는 춘추시대 노나라 희공이 백성들의 밭을 피해 .. 정도전이 꿈꾼 세상은? 이번 주 팟캐스트는 편입니다. 지난 주엔 정도전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정도전이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성계라는 군주를 택했음을 술김에 왕왕 발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도전이 꿈꿨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정도전 자신과 같은 똘똘한 재상이 다스리는 유교국가였습니다. 그렇다면 군주란 존재는 누구였을까요. 군주란 바로 똘똘한 재상을 잘 뽑아서 그 재상과 더불어 정사를 논하는 존재라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과격한 사상이 아니었을까요. 너무 앞서간 정도전은 그만 왕권 중심의 이방원 세력에게 칼침을 맞고 맙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좌절됐지만 조선은 그의 밑그림대로 그려졌습니다. 정도전, 그는 조선왕조의 설계자였습니다. 새왕조 개창을 향한 정도전의 정력은 저술에서.. 황성옛터와 궁예옛터 강원도 철원 평화전망대에 오를 때마다 필자는 왠지 ‘센티멘탈’해진다. 나즈막한 전망대 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평원의 이름은 풍천원이다. 그렇다. 저곳은 1100년 전인 905년 풍운아 궁예가 ‘대동방국’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태봉국의 도성터이다.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영원한 평화가 깃든 평등세계를 꿈꿨던 궁예였다. 그렇지만 궁예의 꿈은 불과 13년 만에 물거품이 된다.(918년)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궁예의 태봉국 도성터. 휴전선(군사분계선)이 도성터를 딱 반으로 가르고 있다.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 해 인심을 얻었지만…나중엔 가혹한 정치로…궁궐만 크게 지어 원망과 비난을 자초했다”( 등)는 것이다. 왕건세력에 의해 축출된 궁예는 굶주림에 보리이삭을 몰래 끓여먹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김부식.. 정조의 침실은 '재난 콘트롤타워' 1783년 경기·호남·동북지역에 기근이 들자 정조는 침전에 ‘상황판’을 걸어놓았다. “침실 벽에 재해를 입은 지역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고을의 수령 이름을 써놓고, 세금을 감면하거나 구휼을 마칠 때마다 그 위에 기록했다.”() 정조의 어찰. 정조는 밤새도록 보고서를 보고 경향 각지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정조가 침실을 ‘재난 컨트롤타워’로 삼아 진두지휘한 까닭은 명쾌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으니 곤경에 빠진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과인의 마음도 편안해진다”는 것이었다. 3600년 전 상나라 창업주 탕왕은 7년간이나 가뭄이 계속되자 ‘희생양’을 자처했다. 머리카락과 손톱을 자른 뒤 백마를 타서 희생의 모양새를 갖추고는 상림(桑林·뽕나무밭)에 들어가 기도를 올렸다. 거기서 ‘문.. 정도전, "내가 이성계를 등용했다" 고려의 숨이 아직 붙어있던 1383년,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 동북면을 방문했답니다. 거기서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는 이렇게 속삭였답니다.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요컨대 당신의 군대는 고려를 갈아엎고 혁성혁명을 일으킬만큼 매우 훌륭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고 운을 뗀 것입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무슨 말이냐”고 딴청을 피웠답니다. 선문답을 주고받은 셈이죠. 이로써 조선 개국을 위한 두 사람의 의기가 투합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 술자리에서 종종 이런 말을 했답니다. “한고조(유방)가 장자방(장량)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고조를 쓴 것일 뿐이야.” 이 무슨 말일까요. 조선을 개국하려고 내(정도전)가 이성계를 기용한 것 뿐이지 이성계가 나(정도전)를 .. 조선에 전깃불이 처음 켜진 날 전기를 처음 발견한 이는 기원전 600년 쯤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인 탈레스였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호박을 장식품으로 애용하고 있았다. 호박은 나무에서 흘러나온 액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보석인데 문지를수록 아름다운 광택을 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닦으면 닦을수록 작은 종잇자국이나 나뭇잎 부스러기 들이 호박에 달라붙는다는 것이었다. 탈레스는 “마치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마찰한 호박은 가벼운 먼지와 깃털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상한 돌(호박)은 그리스어로 eleckton이라 하는데 오늘 날 전기를 electricity하는 것은 바로 이 호박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지만 탈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사람들은 왜 이와같은 정전기가 발생하는지 알지 못했.. 이전 1 ··· 126 127 128 129 130 131 132 ··· 1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