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아주까리 오동나무 씨앗…25t트럭 100대분 흙더미에서 찾아낸 초미세 유물 1㎝도 안되는 아주까리 씨앗은 물론 1㎜ 안팎에 불과한 오동나무 씨앗까지…. 이것이 25t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흙을 일일이 물체질로 걸러내 핀셋과 현미경으로 찾아낸 1600년 전 신라시대 씨앗들이다. 이 중 아주까리는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나 ‘…바람에 깜빡이는 아주까리 등잔불…’(가수 최병호의 1941년작 ‘아주까리 등불’)에서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식물이다. 시와 노래에서 나오듯 등잔불이나 머릿기름으로 쓰였고, 혹은 들기름이나 참기름 대용으로도 사용됐다.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아주까리 씨앗. 25t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흙을 일일이 물체질로 걸러내 찾아낸 유기물이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그런데 1600년 전 신라인들도.. 1600년전 아기반달가슴곰은 왜 경주 월성해자에 묻혔을까 “아기곰을 포함한 반달가슴곰의 가죽으로 군대의 깃발장식을 꾸몄다.' 신라의 1000년 도성인 경주 월성의 해자(외부 침입을 막으려고 성 주변을 파서 못으로 만든 곳)에서 1600년 전 신라인의 ‘삶의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6년부터 19년까지 월성 해자의 내부를 조사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금까지 얻어낸 유기질 유물과 관련된 학제간 연구를 통해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고 최근 전했다. 1600년전 반달가슴곰의 뼈로 추정되는 곰뼈가 신라의 1000년 도성인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됐다. 이 중에는 아기곰의 뼈도 있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월성은 기원후 101년 축성 이후 멸망(935년)까지 843년 동안 천년왕국 신라의 왕성이었다. 성이 초승달 모양이어서 ‘월성(月城·둘레 2340.. 경주 월지의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들, 그들은 누구인가 대체 통일신라·고려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경주의 우물에 어린아이들이 빠져죽었을까. 통일신라 어린이는 인간제사의 희생물이었다지만 고려시대 성인 1명과 세아이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부지에서는 8~9세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통일신라시대 우물이 확인됐다. 경주 ‘동궁 및 월지’ 유적의 우물에서 확인된 인골 4구. 30대 후반 남성과 8세 전후의 어린이, 3세 전후의 유아, 6개월 전후의 영아 등이 묻혔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우물을 들여다본 발굴단은 깜짝 놀랐다. 깊이 12m 가량의 우물 바닥에 거꾸로 쳐박힌채로 확인된 것이다. 고인골 전문가인 김재현 동아대 교수의 분석 결과 더욱 경악을 금치못했다. 바닥에 쳐박힌 두개골의 바로 밑에는 오른쪽 손가락.. "신라판 펭수는 무슨'…소월리 항아리 얼굴은 가혹한 세리의 3단 표정이다" 혹자는 1500년 전 신라판 ‘이모티콘’이라 했고, 혹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펭수’라 했다. 지난해 12월초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출토된 ‘3면 인면(사람 얼굴) 항아리’를 두고 참새 입방앗거리로 수근댄 표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토기 항아리 3면에는 다양한 표정의 얼굴 무늬를 만들어놓았다.경산 소월리에서 확인된 ‘3면 인면 모양 토기 항아리’. 다양한 표정의 얼굴이어서 신라판 ‘이모티콘’이나 ‘신라판 펭수’라는 우스갯소리로 표현됐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은 ‘이 얼굴을 1500년전 백성들을 수탈한 가혹한 세리의 표정’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항아리에 새겨진 3면의 얼굴이 이모티콘이나 펭수와 같이 귀엽고 선한 캐릭터가 아니라 혹정을 일삼는 ‘세리(稅吏·세금을 징수하는 관리)의 3단 표정’.. '광대 얼굴'의 부처님…'백제의 미소'로 복원해야 할 과정 얼굴은 광대 형상인데, 이름하여 국가가 지정한 ‘보물’ 문화재란다. 전북 익산 삼기면 연동리 석불사 법당에 턱하니 자리잡고 있는 불상 이야기다. 언젠가인 지는 모르지만 불상의 본 얼굴은 떨어져 나갔고, 어느 시점에 누군가 새로운 얼굴, 즉 불두(佛頭)을 얹어놓았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 좌상.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시대 최대의 3차원 환조석불로 유명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목이 달아났고 누군가가 새로운 불두를 얹어놓았다. 하지만 ‘광대 형상’의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복원해놓았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인자하거나 엄숙해야 할 부처나 보살의 얼굴이 아니다. 기왕 얹어놓을 요량이면 좀 제대로 만들 일이지, 왜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저렇게 흠결있는 불상인데도, 보물(제45호) 대접을 .. '모나리자처럼…' 우리에게도 죽어도 못 내보낼 문화재 있다 1위 부여 외리 문양전(보물 제343호), 2위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제91호), 3위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최근 1960~2019년 사이 해외전시를 다녀온 한국문화재 순위를 집계한 자료를 필자에게 보내주었는데, 자못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부여 외리 문양전’(22회·6408일)이라는 유물이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59년 동안 22회였으니 그야말로 뻔질나게 해외를 드나든 셈이다. 그 뒤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8회·2650일)와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7회·2255일)이 따르고 있다. 다소 의외가 아닌가. 1·2위를 달리고 있는 ‘부여 외리 문양전’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가 어떤 유물이기에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의 서원'…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이유다 (이 기사는 문화유산 채널 프로그램임 '문롸유산 알려줌'을 위해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안향의 옛집터에 사우(祠宇)를 세워 봄·가을에 제사지내고 이름을 백운동 서원이라 했다.” 1541년(중종 36년) 5월 22일 에 사관의 평을 빌려 언급된 ‘서원의 효시’ 기사이다. 주세붕이 성리학을 처음으로 도입한 대학자 안향(1243~1306)을 기리기 위해 안향의 집터에 서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은 “서원 좌우에 유생들이 거처하며 배우는 학교를 세웠고, 약간의 곡식을 저축하여 밑천은 간직하고 이자를 받아 운영했고, 고을 백성 중에 준수한 자가 모여 먹고 배우게 했다”고 부연설명했다. 이뿐이 아니라 터를 닦다가 우연히 발견한 구리 300근으로 서울에서 유교 경전 뿐 아니라 정.. 불에 탄 조선 임금의 초상화는 왜 '전쟁유산' 대접을 받을까 매서운 눈과 귀만 보이고(태조), 왼쪽 뺨과 귀 부분이 없어지고(원종), 귀밑머리와 귀만 보이고(순조), 왼쪽 뺨과 코, 눈이 싹 다 날아가고(순종)…. 불에 타 흠결 투성이인 어진(임금 초상화)인지라 전통적인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이러한 어진들을 다름 아닌 ‘전쟁유산’으로 평가해 이른바 ‘근대적 문화유산’의 개념으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단다.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일까.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갔다가 불에 탄 원종(인조의 아버지·추존왕)어진. 그나마 원종어진은 얼굴의 반쯤은 남아있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조선 임금의 어진 48점 중 영조 어진과 연잉군 어진 등 극히 일부만 살아남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불에 탔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인 1954.. 이전 1 ··· 42 43 44 45 46 47 48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