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따옥 따옥 따오기’ 멸종 40년만에 하늘을 수놓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더뇨…’ 1979년 비무장지대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이래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따오기(천연기념물 제198호 및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가 40년만에 하늘을 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복원한 따오기를 야생으로 방사하는 것이다. 비행훈련중인 따오기. 1979년 멸종 이후 2008년 이후 중국 후진타오와 시진핑 주석의 잇단 기증을 계기로 복원증식사업을 펼친 결과 10년만에 363마리가 복원됐다. |창녕군 경남 창녕군과 환경부, 문화재청 등은 10여년간 증식 복원한 따오기 40마리를 22일 경남 창녕 우포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우포늪으로 야생방사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청정 환경의 대표종으로 알려진 따오기는 논과 같은 습.. 악질친일경찰 노덕술의 훈장과 의열단 의백 김원봉의 '빨갱이' 딱지 (이 기사는 지난 주의 김원봉 선생의 서훈 논쟁을 다룬 의 후편입니다. 지난주 전체적으로 다룬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는 기사의 보완편이기도 합니다.) “1947년 1월16일 경남 통영에서 김원봉 장군의 대일 실전 조선의용대 기록영화를 상영하던 중 광복청년단원 20여명이 영화관을 습격해서 해설중이던 황용암씨를 무수히 난타한 뒤 통영경찰서에 인도했다. 경찰서는 황씨를 4일간 구금했다. 이 영화는 공보부의 검열을 받고 정식으로 허가받아 상영했는데….” 자유신문 1947년 1월25일자 기사이다. 약산 김원봉(1898~1958)의 조선의용대 기록영화가 백색테러를 당했다는 기사다. 무슨 곡절이 있었기에 의열단 ‘의백’이자 조선의용대장이며, 광복궁 부사령이자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김원봉 선생을 공격한.. 또 한 분의 여왕, 진덕여왕 무덤 찾았나 태종무열왕, 흥덕왕, 원성왕, 선덕여왕…. 신라 56대 국왕 중 거론된 임금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무덤의 주인공이 분명하거나 거의 확실한 이들이다. 제29대 태종무열왕릉은 경주 서쪽의 서악동 구릉에 있다. 왕릉의 동북쪽에 세워진 비석(국보 제25호) 중앙에 전서체로 ‘태종무열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8자가 양각되어 있다. “내가 이 무덤의 주인공”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도당산 고분의 근경. 경주 남산에는 8기의 ‘전칭’ 왕릉이 존재하고 있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남산 끝자락 도당산에 위치한 고분을 진덕여왕의 무덤으로 판단했다.|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경주 안강읍 육통리 산 42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제42대 흥덕왕릉(사적 제42호)에서도 전서체로 ‘흥덕(興德)’이라고 쓰인 비편들이 확인됐..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2018 최우수 특별전 '오백나한'의 서울나들이 지난해 지방의 국립박물관에서 호평을 받은 전시회가 있다. 바로 국립춘천박물관의 특별전인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이었다. 원래는 8월28일부터 3개월간 열릴 예정이었지만 관객들의 호평 속에 올해 3월까지 연장전시됐다.그런데 이 특별전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뽑는 ‘2018년의 전시’로 선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전국의 국립박물관이 지난 1년간 주최한 특별전을 대상으로 관내외 전문가(내부 20명, 외부 16명)와 관람객 만족도 등을 종합평가한 결과 1등으로 꼽힌 것이다. 최선주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기획부장은 “국립춘천박물관의 ‘오백나한전’은 관내외 전문가들의 압도적인 점수를 얻었다”고 전했다.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오백나한 전시 전경. 작가 김승영씨가 설치했다.|국립중앙박물관.. 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내가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 지 몰라.” 약산 김원봉(1898~1958)과 친일경찰 노덕술(1899~1968)의 악연은 전설처럼 전해진다. 물론 1차사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1900~1987)과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정정화 선생(1900~1991)의 회고담, 독립운동가 송남헌(1914~2001) 등의 , 그리고 이런 자료들을 재구성한 과 각종 논문 등을 종합해보자.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 의열단을 이끈 이를 단장이 아니라 의백이라 했다. 의형제의 맏형이라는 뜻 이다. 남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유혈투쟁을 벌이겠다는 의미였다.■노덕술에게 화장실에서 잡혀가 모욕당한 의열단의 맏형 1947년 3월 하순 서울 청계천 은신처에서 변소에 앉아있던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이.. 1830톤, 1627개, 81%…숫자로 본 미륵사지석탑 복원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던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의 해체·보수 작업이 마무리되어 30일 오후 2시 준공식이 열린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날 전북도 및 익산시 등과 공동으로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마무리를 기념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알리는 준공식을 연다고 밝혔다.그동안 진행되었던 미륵사지 석탑(서탑)의 해체·보수 사업을 숫자로 풀어본다.수리 전(왼쪽)과 후의 미륵사지 석탑 사진. 1999년 해체·복원결정 후 만 20년만에 복원됐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639, 1380지난 2009년 1월14일 탑의 심주석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리공을 확인했다. 사리공에는 금동제사리호와 함께 탑을 세우게 된 이력을 새긴 금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긴 글씨의 내용은 깜짝 놀랄만 했다... 성류굴 500원 동전같은 한줄기 빛에서 찾아낸 신라인의 낙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는 본능은 어찌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고생대인 2억5000만년전에 생성되어 온갖 기기묘묘한 종유석과 석순, 석주, 베이컨시트와 동굴진주. 석화, 동굴산호, 동굴방패 등을 자랑함으로써 ‘지하 금강’이라는 별명을 얻은 경북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에도 ‘다 다녀가오!’하는 낙서가 한 둘이 아니다. 역사·고고학적인 가치를 지닌 낙서, 즉 옥석을 가리기도 힘들 정도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신라와 조선시대 명문을 확인한 바 있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의 심현용 학예연구사가 조선시대 명문을 발견해서 보고한 바 있고, 2015년에는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이 굴 입구 바로 위쪽 석회암 바위면에서 신라 진흥왕 4년(서기 543년) 3월8일 신라 축부 대나마.. "사천왕사 출토 명문편 5개는 신문왕릉비가 틀림없다" “신문왕릉비가 틀림없다.” 지난 1976년 경북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 남단의 해발 53m 낮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사천왕사터의 당간지주 동쪽에서 ‘차임진’(次壬辰) 명문 비석편이 나왔다. 또 2012년 12월 역시 사천왕사터 서귀부 부근에서 ‘무궁기덕십야’(無窮其德十也) 비석 2편이 나왔다. 이밖에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비석편 중 ‘명왈’(銘曰) 명 1편(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 소장)과 ‘장’()명 1편(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있다. 그런데 사천왕사지 ‘次壬辰’명편. 신문왕이 서거한 임진년(692년)을 가리키는 명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논문에서 이들 5편의 비석이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의 능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예사 연.. 이전 1 ··· 55 56 57 58 59 60 61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