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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이 보물에서 누락된 성주사 동탑, 85년만에 지위 찾았다 충남 보령 성주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성주사(사적 제307호)는 1400년이 넘은 유서깊은 절이다.백제 법왕(재위 599~600)때 창건되어 오합사로 일컬어지다가 847년(문성왕 9년) 신라 낭혜화상(무염·801~888)이 중창했다. 조선후기 폐사되어 건축물 대부분이 사라진 성주사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탑이 많다는 것이다. 경내 북서쪽에 낭혜화상탑비가 버티고 있고, 남쪽부터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3기 등이 늘어서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보물에서 누락되었던 충남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이번에 보물 제2021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와 오층석탑(보물 제19호)·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서 삼층석탑(보물 제47..
'원균은요…', 선비 오희문의 헬조선 '임진왜란'고발기 “우수사는 이달초(7월8일) 전라 좌·우 수군과 함께 나가서 적선 80척을 나포해서 700여명의 수급을 베었다. 초 10일에도 또 적선을 만나 80여척을 사로잡았다…”1592년(선조 25년) 7월26일 오희문(1539~1613)의 일기인 에 기록된 한산대첩 승전보이다. 당연히 이순신의 승전기록일 것 같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일기에서 전투를 주도했다는 우수사는 바로 경상 우수사인 원균을 지칭한다. 원균의 주도 아래 전장에 나서 대승을 도운 전라 좌·우 수군의 지휘관은 바로 이순신(전라 좌수사)과 이억기(전라 우수사)이다. 에 따르면 주인공은 원균이고, 조연이 이순신과 이억기 같은 느낌이 난다.오희문이 1591년(선조 24년) 11월27일부터 1601년(선조 34년) 2월27일까지 9년 3개월간이나 써내려..
‘양심의 가책’... 미해병장교가 전리품으로 챙겨간 문화재 65년만에 반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겨울) 본부중대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절 안팎 여기저기서 활활 불을 태우고 있었다…돌과 도끼, 삽으로 마구 빠개진 불경 목판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나는 부연대장에게 달려가 ‘겨레의 문화재가 타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고 리영희 교수가 1996년 법보신문에 기고한 컬럼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보병 제11사단 9연대 청년장교로 참전했던 리영희 교수가 설악산 신흥사에 주둔한 부대의 병사들이 문화재인 불경판들을 불에 태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이 끝난 1954년 10월 강원 속초에 근무하던 미 해병대 소속 리차드 락웰 중위가 부대원들과 수색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신흥사에 들렀다. 신흥사는 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되어 ..
어린이 무덤서 찾아낸 '대가야 버전' 가락국 신화... 사실일까 억측일까 지난주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사적 제79호)에서 발굴된 어린아이 무덤에서 아주 희한한 유물이 나왔는데요. 이를 두고 학게에서 거센 논쟁이 벌어질 것 같네요. 어떤 유물이냐면요. 지난 3월8일 고분군 내 탐방로를 정비하거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기에 앞서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여러 기의 무덤이 확인됐는데요. 그중 5세기 무렵의 석곽묘에서 다른 유물과 함께 어린아이의 두개골편과 치아가 나왔고, 무엇보다 흙으로 만든 방울을 하나 수습했는데요. 직경이 약 5㎝ 정도되는 아주 작은 방울이어서 심드렁 하고 넘길 수 있는 그저 그런 유물이겠지 했다네요. 대가야 왕릉급 고분이 즐비한 지산동에서 뭐 이 정도의 유물이라면 아무 것도 아닐테니까….고령지산동 고분군 석곽묘에서 발견된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들. ‘가락국 신화’에 묘..
"미륵사지 탑 복원, 절차가 잘못됐다고?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싶었을 뿐" ‘20년 이상 진행된 문화유산의 해체·복원이었던만큼 일반적인 공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가 부적정했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해 문화재청은 21일 “1998년부터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복원방법이 자주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었고 설계를 바꾸는 등의 절차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20년만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서탑). 6층인지 9층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고, 해체된 부재만 3000개에 달해 복원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 2017년 공사가 마무리됐고, 최근에는 가설덧집까지 완전히 해체됐다. 오는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문화재청 제공그러나 문화재청은 “제대로 해체·복원하기가 까다로워 20년 장기 계획을 세운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달리 봐..
향산광랑과 犬の子(이누노코)…춘원 이광수와 ○석두의 창씨개명 “내 이름은 현전우일(玄田牛一·구로다 규이치)이다.” 지난 2002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있다. 협객이라는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뤘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케이블 TV에서 단골로 방영된다.최근 새삼스레 다시 그 드라마를 보게 된 필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불세출의 만담가인 신불출(1905~?·김종국 분)의 ‘현전우일’ 대사에 ‘꽂혔다’. 신불출이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에 따라 창씨(현전)와 개명(우일)을 동시에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현전우일’이 일본어인 ‘畜生(축생)’의 파자(破字)라는 대사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畜’은 ‘玄+田’이요, ‘生’은 ‘牛+一’이 아닌가. ‘畜生’을 파자하면 ‘현전우일’이 되는 것이다. ‘축생’은 일..
'황희 맹사성 투톱'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은 세종의 용병술 “맹사성의 사람됨이 종용하고 간편하다. 선비를 예절로 예우하는 것은 천성에서 우러나왔다. 벼슬하는 선비로서 비록 계급이 얕은 자라도 뵙기를 청하면 반드시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 나와 맞아들였다. 이어 손님을 상좌에 앉히고, 물러갈 때에도 역시 몸을 구부리고 손을 모으고서 가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손님이 말에 올라앉은 후에라야 돌아서 문으로 들어갔다.”( 1438년 10월4일) ■‘배려심 갑 예절 남’ 재상님 청백리의 대명사이자 재상의 롤모델로 통하는 고불 맹사성(1360~1438)이 죽은 뒤 의 사관이 남긴 졸기(부음기사)이다. 교지연구가 김문웅씨가 공개한 ‘맹사성 왕지’. 1427년(세종 9년) 맹사성을 우의정에 임명한다는 임명장이다. 맹사성 이름 옆에 찍힌 확인점이 뚜렷하다. 맹사성은 이후 8..
'안사람의병단' 이끈 여성독립투사 윤희순의 의병가, 문화재 된다 “아무리 외놈(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외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소용있냐.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구한말 시아버지(유홍석 의병장)을 따라 독립운동에 나선 여성의병장 윤희순 선생(1860~1935)이 지은 의병가 ‘안사람 의병가’ 가사의 일부이다. 시아버지인 유홍석 의병장이 짓고 윤희순 선생이 필사해서 보급했다는 ‘안사람 의병가 노래’도 남아 있다. “…내집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지 하여보세. 우리들도 뭉쳐지면 나라찾기 운동이요, 왜놈들을 잡는거니 의복버선 손질하여 만져주세. 의병들이 오시거든 따뜻하게 안윽하게 만져주세…”라는 가사다. 윤희순의 중 ‘오랑캐들아 경고한다’는 주제의 격문. ‘조선의 안사람들도 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