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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000원으로는 턱도 없고 중국 간섭도 심하지만…' 이상재 선생의 다짐 “~빨리 부는 바람 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따르겠네.” 육당 최남선의 ‘경부철도가’(1908년) 가사처럼 철도는 개화기 근대 문명의 상징이었다. 증기를 뿜으며 씩씩거리고 달리는 육중한 몸체의 열차가 얼마나 빨리 달렸으면 ‘바람처럼 달려 날개 가진 새도 따를 수없다’고 했을까. 철도 역사의 효시는 1899년 9월 일본측이 완공하여 가영업을 개시한 인천~영등포간의 경인선이었다. ■‘바람보다 빠른 철도’의 역사 사실 구한말 조선 내에서의 철도부설권은 열강의 먹잇감이었다. 서구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은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철도부설권을 따려고 이전투구를 벌였다. 지금까지는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1896년 조선정부로부터 부설허가권을 취득했지만 자금난에 빠져 일본측에 170만원에 허가권을 팔아넘긴..
황현의 절명시와 한용운의 추모시, 105년만에 공개되는 사연 “어지러운 세상에 떠밀려 백발의 나이에 이르도록(亂離滾到白頭年) 몇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가 이루지 못했네.(幾合捐生却未然)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으니(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 가물거리는 촛불 푸른 하늘 비추누나.(輝輝風燭照蒼天)… 새 짐승 슬피울고 바다와 산도 시름거리니((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세상은 다 망하고 말았네.(槿花世界已沈淪) 가을 등불 아래 책덮고 역사를 돌이켜보니(秋燈掩卷懷千古)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 죽음으로 경술국치에 항거한 매천 선생의 칠언절구 한시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매천 황현 선생 후손 소장 우국지사이자 시인인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이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식음을 전폐하다가 자결하면서 남..
박물관 전시관에 놓인 생뚱맞은 서양제 대한민국 보물 언필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보·보물 가운데는 ‘외제’나 외제로 ‘의심되는’ 유물이 더러 있다. 지정 당시에는 조선초기 작품으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중국 원나라제로 판명된 ‘백자 유리홍 매화 국화무늬 병’(국보 제168호)가 그렇다. 1916년 평양 석암리 9호분에서 발굴된 ‘금제 띠고리’(국보 제89호)도 낙랑제로 알려졌으니 중국제라 할 수 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도 기록은 없지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중국에서 가져온 당나라제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천 강화 전등사 철종(보물 제393호)은 일제강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 과정에서 중국에서 가져온 북송시대(1097년)의 작품이라는 명문이 있으니 중국종이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인 청동투구...
봉황? 천계? 아니면 그냥 새? 입점리 금동장식의 정체 “어! 이게 뭐야.” 1986년 2월2일 오전 10시쯤 전북 익산 웅포면 입점리에 사는 고교 1년생 임모군이 마을 뒷산에서 칡뿌리를 캐다가 무덤 1기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무덤 안으로 들어간 임군은 금동제 관장식 등 깜짝 놀랄만한 유물을 수습했다. 임군은 4일후인 6일 익산시청 공보실에 신고했다. 이른바 입점리 고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 고교생의 신고 덕분이었다.입점리에서 출토된 금동제 삼각형 장식에 표현된 이른바 봉황문 도안. 벼슬이 더듬이처럼 표현됐고 양쪽 날개 깃털은 4가닥, 꼬리는 3가닥, 2개의 다리, 3개의 발톱이 새겨져 있다. 학계일각에서는 상상의 새를 의미하는 ‘3족 봉황문’이라 했지만 ‘2족’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영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제공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최..
불편한 진실, 조선판 '미투' 가해자의 사건 그후 ‘성희롱범에게 곤장 80대를 선고한다.’ 2012년 7월 필자는 ‘조선의 성범죄, 어떤 처벌을 받았나’라는 기사에서 을 인용했다. 1438년(세종 20년) 8월1일 에 기록된 성범죄 사건의 요지는 ‘성균관 유생 둘이 옷을 벗고 목욕하다가 지나던 여인을 덮치려 했지만 여인이 도망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요지였다. 사헌부 수사 결과 문제의 유생 둘 중 실제 여인을 덮친 유생에게 장 80대의 형을 내렸다. 당시 조선은 모든 범죄의 판결에 1367년 제정된 명나라 형법()을 따랐다. “무릇 화간(和姦)은 장 80대, 남편이 있으면 장 90대이다. 조간(勺姦·여자를 유괴한 뒤 간음)은 장 100대이고, 강간한 자는 교수형에 처한다. 강간미수죄는 장 100대에 유배(流) 3000리에 처한다.”( ‘형률·..
'적국의 수괴, '적의 장교'를 도륙하겠다고 선언한 이봉창 윤봉길 의사 선서문 “나는 적성(赤誠·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서울의 제과점 점원, 만주의 운전견습생 및 철도원,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직공, 잡역부, 날품팔이 등을 가리지 않고 일본인 행세를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가 있었다. 바로 이봉창(1900~1932년) 의사였다.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적국의 수괴(일왕 히로히토)를 도륙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하오리(일본식 남자옷)에 게다짝까지 질질 끌고다니는 이봉창이 상하이 임정 건물을 출입하자 사람들은 “백범 선생은 왜놈 행색의 저런 자를 그냥 두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기노시타 쇼조(木下昌..
명사수 정조가 정약용에게 '지옥 훈련 캠프 입소'를 명한 까닭 50발중 49발 명중이 모두 10차례. 한번은 100발 쏘아 98발 명중…. 이것은 이순신 장군이나 태조 이성계의 활솜씨가 아니다. 문체반정을 주창한 문예군주라는 정조 임금의 활쏘기 솜씨이다. 정조의 활쏘기 점수가 다름아닌 에 아주 자세히 기록됐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을 보면 정조는 1792년(정조 16년) 10~12월 사이 춘당대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활쏘기 행사를 벌인다. 왜 유달리 이무렵에 집중된 것일까. 정조는 “과인이 활쏘기를 원체 좋아했고 그것이 가문의 법도여서 젊은 시절에는 즐겼지만 최근 10~20년 사이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1792년 10월12일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 을 보면 10월에는 32발(17일)~47발(26일)이던 것이 30일 49발이 된 이후 가히 신궁의..
"'철의 왕국'이 가야가 아니다. 신라였다" 이번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23회의 주제는 ‘철의 왕국은 어디었나’입니다. 이미 새해 초에 지면 기사로는 소개했는데요. 이번에 팟캐스트 용으로 재정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야=철의 왕국’의 지위가 확고했는데요. 그 근거는 3세기 역사서인 ‘동이전·한조’의 ‘나라(國)에서 철(鐵)이 생산된다(出)’는 기사였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철을 한(韓·마한)과 ‘예(濊)’, 왜(倭)가 수입해갔고, 또 2군(낙랑·대방군)에도 공급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중국의 돈을 사용하듯 모두 철을 거래수단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철의 왕국’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졌죠 3세기 중국 역사가 진수가 편찬한 '위지 동이전 한조'. '철이 생산되는 나라'를 헷갈리게 서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