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1347)
40년만에 공개된 몽촌토성 '곰발바닥'…백제판 '강남개발'의 증거? 가지런히 놓인 말머리뼈, 사람 손과 너무 닮은 발톱 잘린 곰발바닥뼈의 정체는 무얼까. 1983~89년 조사된 몽촌토성의 미정리유물 일부가 40년 만에 공개됐다. 서울대박물관은 ‘왕도한성:몽촌토성 1983~2023’ 특별전(5월23~8월31일)에서 나무상자 속에 보관해왔던 동물유체 등 유물 일부를 꺼내 정리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최초로 정리·공개되는 제사의 흔적 유구와 유물이 특히 눈길을 끈다. 특히 40년 동안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동·식물유체 400여점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즉 소·사슴과·멧돼지·말·곰·개·꿩 등 포유류 및 조류와 대구, 숭어·백합 등의 어·패류 등으로 분류됐다. ■사람 손뼈와 똑같은 곰발바닥뼈 이중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인 치아가 보이는 말의 머리뼈가 도드라진다. 대략..
‘순종을 사육 동물로 전시하라’…이토 히로부미의 ‘창경원’ 프로젝트 최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창경궁 명칭 환원 40주년’을 맞아 올 연말까지 다채로운 행사를 벌인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마도 50대 이상의 세대에게는 이 소식이 색다른 감회로 다가왔을 겁니다. 저만 해도 20대 초반까지는 ‘창경원’이었구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소풍 가서 사자며, 호랑이며, 하마며, 기린같은 여러 진귀한 동물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동·식물을 서울대공원에 옮긴 뒤인 1983년 12월 비로소 ‘창경궁’의 명칭을 되찾게 되었죠. 원래는 ‘궁’이었는데, 일제강점 초창기(1911년) ‘동식물을 키우는 동산’인 ‘원(苑)’으로 명칭이 바뀌었죠. 그러나 해방 이후 40년 가까이 ‘창경원’ 이름을 답습했던 것도 퍽이나 기막힌 일입니다. %3C/p|CDM|1.3|{"originWidth..
"소주가 조선의 운명을 바꿨다"…세종도 '임금도 못막는다' 인정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기는커녕 제 한 몸도 돌보지 못한다는 말인가.(縱不能以國家爲念 獨不顧一身之性命乎)” 1433년(세종 15) 10월28일이었습니다. 세종이 술(酒)의 폐해와 훈계를 담은 글을 발표합니다. “술은 몸과 마음을 해친다. 술 때문에 부모의 봉양을 버리고, 남녀의 분별을 문란하게 한다. 나라를 잃고 집을 패망하게 만들며, 성품을 파괴시키고 생명을 잃게 한다…” 세종은 이 교서를 족자로 만들어 서울을 물론 전국의 관청에 걸어두게 했습니다. ■“임금이 막는다고 술을 끊겠냐.” 세종이 특히 개인과 나라를 망칠 술로 지목한 것은 바로 ‘소주’였습니다. 7개월전인 3월23일 이조판서 허조(1369~1439)가 세종에게 소주의 폐해를 열거하면서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예부터 술 때문..
'이순신 최후' 메모한 류성룡 다이어리서 세종의 '불멸 업적' 찾았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 중인 유물 하나가 눈에 띈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지니고 다녔다는 ‘경자년 대통력’이다. 요즘으로 치면 ‘1600년판 다이어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류성룡 대통력’은 8권이나 남아있었다. 안동 하회 풍산류씨 충효당(류성룡의 종택)에 1594·1596·1597·1598·1604·1605·1606·1607년판 대통력이 소장되어 있었다. 지난해 일본 소장자로부터 구입한 ‘1600년 대통력’은 류성룡의 9번째 다이어리라 할 수 있다. ■“대장은 몸을 가벼이 해서는 안됩니다.” 이번 9번째 ‘류성룡 다이어리’에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의미가 첫장부터 담겨 있었다. 임시로 철해 놓은 표지에 빼곡한 글씨 덕분에 단박에 유명세를 탔다. “전투(노량해전·1598년 ..
360만년 전 직립 보행한 인류, 이 ‘짱돌’ 하나로 세계를 정복했다 지난 2000년 11월 5일자 ‘마이니치(每日) 신문’에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이 보도됩니다. 이른바 ‘구석기 유적 조작 사건’이었습니다. 고고학자인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미야기현(宮城縣) 쓰기다테초(築館町)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 발굴 현장에서 가짜 석기를 파묻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폭로한 겁니다, 후지무라는 1981년 미야기현 자자라기(座散亂木)에서 일본 최초의 구석기 유적(약 4만 년 전)를 발굴한 인물이구요. 이후 잇단 발굴을 통해 일본 구석기 유적 연대를 ‘70만년전까지’로 올렸습니다. 덕분에 후지무라는 ‘신의 손(神の手)’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마이니치 신문의 폭로 이후의 검증결과 후지무라가 조사한 162곳의 구석기 유적 전체가 ‘가짜’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부터 ‘시신 소각’까지…왕릉의 저주 사실일까 “날씨 비온 뒤 맑음. 금관을 들어 올릴 때 청명하던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모두들 급변한 천기에 무섭고 놀라서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금관을 수습하여….” 경주 천마총 발굴단의 1973년 7월27일자 ‘발굴일지’의 내용입니다. 천마총 발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후일담이죠. 이 이야기는 “조사원과 인부들은 놀라 혼비백산, 옮기던 상자를 그 자리에 내려놓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현장사무실로 뛰었다”는 것으로 ‘봉대(棒大)’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뇌성벽력으로 놀란 가슴 진정시킨 뒤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지었다는 얘기였겠죠. 그런데 금관 상자를 무덤 밖으로 옮기자 암흑천지였던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개었다는 겁니다. 이전부터 조짐은 있..
일본 국보 2호에 찍힌 '사마'(무령왕) 명문…누구를 위해 만든 거울일까 “사마(斯麻)가 오래 받들 것(장수)를 생각하며…청동거울을 만들었다.” 일본 와키야마현(和歌山縣) 하시모토시(橋本市)에 스다하치만(隅田八幡)이라는 조그마한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신사에는 언젠가부터 심상치않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인물화상경’이다. 지름 19.8㎝ 정도인 인물화상경에는 9명의 인물상과 기마상이 그려져 있다. 거울의 둘레에 빙 둘러서 48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국립도쿄(東京)박물관이 소장중인 ‘인물화상경’은 일본 국보(고고자료 2호·1951)로 등재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명문 해석은 심상치 않다. ‘계미년 8월…대왕의 치세에 남제왕이 오시사카궁에 있을 때 사마가 오래 섬길 것(장수)를 생각하며…최고급 구리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게(취하게) 했다.(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男..
연산군이 질탕하게 놀았던 탕춘대…왜 유네스코 세계유산 감인가 “연산군이 황음무도한 짓을 벌인 탕춘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감이라고?” 최근 문화재청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포함한 ‘한양의 수도성곽’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후보로 선정했습니다. 이에따라 올해 9월에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예비평가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여기서 ‘탕춘대’의 유래를 안다면 납득이 가지 않을 분들도 있을 겁니다. 왜냐면 ‘탕춘대’는 중종반정 때(1506년 9월2일) 연산군이 시녀들과 질탕하게 놀았던 ‘문제적 장소’로 지목된 곳이니까요. ■탕춘대 돌구유에서의 음란행위 “…큰 정자를 지어…밤낮으로 시녀들과 놀았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삼각산 밑 장의사동의 탕춘정인데….”() ‘탕춘정(대)’가 들어섰다는 ‘삼각산 밑 장의사동’은 세검정 초등학교 인근을 가리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