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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코에 여드름 자국까지…임금 사마귀점도 그렸던 조선 초상화 “신의 나이 66세이고, 지병이 있는데다, 코에 혹이 생겨 모양이 보기 흉한데, 세월이 갈수록 더하니….” 1606년(선조 39) 9월1일자 기사이다. 당흥부원군 홍진(1541~1616)이 지병 때문에 선조 임금에게 사직을 청하는 내용이다. 실록의 기자가 홍진 스스로 밝힌 사직 이유를 기술하면서 달아놓은 각주가 ‘TMI’ 그 자체다, “홍진은 키가 다섯자(150㎝)도 안되는데, 코는 주먹만큼 커서 당시 보는 사람마다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마침내 콧병이 나서 출입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었다.” 실록의 기자가 좀 심했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홍진의 용모에 ‘팩폭’을 가하면서까지 소개했을까. 굳이? 지금 같으면 남의 신체적 약점을 드러내며 저격한 ‘기레기’ 소리를 들을 법하다. ■놀림감이 된 주먹코 공신 ..
'Coreen 109' <직지>는 120년전 단돈 180프랑에 팔렸었다. 그러나… 최근 문화유산계의 화제는 단연 입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7월16일까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에 를 50년만에 공개하고 있는데요. 특별전에서 는 첫번째 유물로 소개되고 있답니다. 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임을 재차 확인한 겁니다. 그런데 이번 특별전 기사를 준비하면서 저는 한가지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말로만 , 했지, 과연 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두말할 것없이 는 ‘학계의 공인을 받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1377)’이죠.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직지’와 관련해서 잘 모르거나, 기본 팩트조차 잘못 알려진 일화가 많습니다. 연구자인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의 논문과 단행본 등을 토대로 자세히 알아봅니다. ■손가락으로 직접 가리킨다는 ..
'탈출 미수극'에 '영감!'소리 들은 광해군 일가…폭군 대접 과연 옳은가 “‘영감’(爺爺)은 임금으로서 무엇이 부족해서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았소…‘영감’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말투가 요상하죠. 임금을 ‘영감!’이라 지칭하면서 뇌물로 받아챙긴 파렴치한으로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요. 이 발언의 주인공은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1608~1623)를 모신 궁비(궁궐 여종)입니다. 광해군은 이때 워낙 싸가지없이 구는 궁비를 꾸짖었는데요. 그러자 이 궁비가 “‘대체 누구 더러 제대로 모시라’고 호통을 치는 거냐. 영감이야 정치를 잘못해서 위리안치됐지만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쏘아붙인 겁니다. 그렇다면 광해군 면전에서 내뱉은 궁비의 질타는 ‘사이다 발언’이었겠네요. 그러나 100%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봅니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한결같..
“청와대는 남경 궁궐터”…서울은 고려국왕의 '성지순례코스'였다 인근 사찰(장의사·승가사)에 다녀가던 임금이 잠깐 쉬어갔던 ‘고려판 카페’인가, 혹은 ‘별서’인가, 아니면…. 얼마 전 서울 종로 신영동의 도시형 생활주택 부지에서 확인된 고려시대 건물터(1382㎡)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현재까지 건물터 3기를 비롯해 석축과 진입시설(계단), 담장, 배수로 등이 확인됐다. 중심 건물터는 파괴됐다. 그러나 두번째 건물터도 잔존 면적(길이 20.1×너비 5.5m)만 33.44평에 달한다. 건물의 입지조건과 배치 또한 심상치 않다. 땅을 깎지 않고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조성한 고려 궁궐(만월대)을 빼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유물의 위상 또한 만만치 않다. 건물 기초부에서 확인된 진단구(액막이용 공양물) 중에는 상급품의 고려자기가 확인됐다. 또 염주로 추정되는 수정 구슬을..
1400년전 초대형 '백제 냉장고'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가 사용했을까 막상 와서 보니까 대단하네.” 얼마전 전북 익산 서동생가터에서 공개된 6~7세기 ‘백제판 냉장고’를 현장에서 직접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우선 규모가 비슷한 2기가 아주 정연하게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고요. 규모 또한 상상 이상입니다. 두 기 모두 길이가 4.9m(1호)~5.3m(2호), 너비가 2.4m(1호)~2.5m(2호)나 되는데요. 무엇보다 깊이가 생각보다 엄청 깊습니다. 2.3(1호)~2.4m(2호)나 되는데요.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보이지 않고요. 사다리를 타야 겨우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각 냉장고의 벽면을 정연하면서 조밀하게 쌓아놓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더운 바람을 내보내는 통기구 두 유구가 ‘백제판 냉장고’ 였음을 알리는 장치가 또 백미죠. 각 유구의 동쪽 긴..
'법정 은퇴연령 70세인데…' 숙종·영조는 왜 50대에 노인대접 받았을까 ‘기로(耆老)’라는 말이 있습니다. ‘늙을 기(耆)’에 ‘늙을 노(老)’ 이므로 노인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곡례 상’은 “60세는 기(耆)이며, 남에게 일을 시켜도 되는 나이(六十耆指使)이고, 70세는 노(老)이며, 자기 일을 넘겨주고 은퇴하는 나이(七十曰老而傳)”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즉 ‘기로’는 예순살(60)이 넘어가면 노인 대접을 받고, 일흔살(70)이 되면 정년퇴직 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70세가 되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법은 있었습니다. 임금에게서 궤장(궤丈·의자와 지팡이)을 하사받는 것인데요.( ‘곡례·상’) 예컨대 신라 문무왕은 664년 70세가 된 김유신(595~673)에게 궤장을 하사했습니다.( ‘열전·김유신’조) 존경의 의미와 함께 은퇴하지 말고 임금이 내려준 지팡..
'독서휴가'는 세종의 또다른 업적…"죽어라 책만 읽으라" 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대에 ‘셰익스피어 휴가(Shakespeare Vacation)’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관리들에게 3년에 한번씩 유급휴가를 주는 대신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이끈 군주가 독서를 나랏일의 으뜸으로 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빅토리아 시대보다 무려 400년 이상 앞선 조선의 세종대왕이 그와 같은 제도를 시행했으니 말이다. 1426년(세종 8) 세종이 집현전 관리인 권채(1399~1438)·신석견(1407~1459)·남수문(1408~1442) 등에게 특명을 내린다. “나이가 젊고 전도양양한 너희를 집현관에 임명한 이유는 글을 익혀서 실제 효과를 나타내라고…. 하지만 직무 때..
임진왜란 때 항복한 일본인 1만명이었다…"우리 조선!" 외쳤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2~3만명(일본측 자료)에서 10만~40만명(조선측 자료)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어땠을까요. 그 숫자가 1만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597년(선조 30) 5월18일 도원수 권율(1537~1599)이 적진에 밀파된 첩자들의 보고를 정리해서 조정에 알렸는데요. “왜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항왜(항복한 일본인)의 수가 이미 1만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일본의 용병술을 다 털어놓았을테니 심히 걱정된다고 수근거린답니다.”() 한 연구자가 에 등장하는 항왜(귀화 혹은 항복한 일본인)의 수를 집계했는데요. 모두 42건에 600명에 달합니다. 기록된 숫자만 이 정도이니, 갖가지 이유로 항복하거나 귀화한 왜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