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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파주 적성 ‘칠중성’ 삼국시대 사람들은 칠중성이라 했다. 그후 1300년 가까이 흐른 1951년 4월, 한국전에 참전한 영국군은 캐슬고지(일명 148고지)라 했다. 경기 파주 적성 구읍리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148m의 야트막한 고지. 벌목으로 시야를 확보한 고지엔 군부대의 참호 및 군사시설이 설치돼 있다. # 교통의 요처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아시겠죠?”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이우형 연구원이 “앞 뒤의 전망을 보라”고 한다. 과연 그랬다. 좀 ‘초를 쳐서’ 저 멀리 스멀스멀 기어가는 개미 한마리까지 관측할 수 있는 확 트인 공간. 구불구불한 임진강 북쪽으로 황해도가 손에 잡힌다. 눈길을 뒤로 돌리면 감악산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설마치 계곡을 따라가면 의정부와 서울이 지호지간(指呼之間)이다. 황해도~한강을 잇는 교통 ..
(7) 연천군 백제 적석총과 온조왕 “재미있어요. 어찌 그렇게 일정한 간격으로 강변에 붙어있는지….”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의 이우형·김현준씨가 입을 모은다. 남방한계선 바로 밑인 연천 횡산리부터 임진강변을 따라 일의대수(一衣帶水)로 이어진 백제 적석총을 두고 하는 말이다. “7㎞ 정도의 일정한 간격으로 임진강변 충적대지에 분포돼있잖아요.” 적석총은 개풍 장학리(북한)~연천 횡산리~삼곶리~삼거리~우정리 1·2호분~동이리~학곡리로 이어진다. 한탄강의 전곡리 적석총과도 지근거리다. 누구일까. 임진강·한탄강 변에 이렇듯 일정하게 무덤을 만들어 놓은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 “우린 군더더기 살”(비류의 항변) 2002년 학곡리 적석총을 조사한 김성태씨(기전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의 보고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전형적인 고구려식 적석총입니다. 연..
(6)경기 연천군 30만년전 세계 경기 연천군 삼곶리. 야트막한 구릉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군 부대 포클레인이 마구 헤집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 지뢰탐지용 보호둑을 마련하는 겁니다.” 바로 앞에 수풀이 무성한 지형이 있었다. “수풀이 무성한 곳은 절대 가지 말라”는 것은 민통선 이북지역에서는 불문율. 미확인 지뢰지대 때문이다. 수풀이 무성한 곳에 있는 문제의 미확인 지뢰를 탐지하려고, 바로 앞에 둑 같은 것을 쌓아 위험에 대비하려는 작업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못마땅해한다. 이어진 구릉 위가 구석기 유물이 흩어진 곳. 따라서 유물 산포지를 마구 파헤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인지라 군 부대의 작업을 보면 자신의 가슴을 마구 파헤치는 것 같다. 포클레인의 굉음을 뒤로 한 채 구릉으로 올라가는 기자의 마음은 왠지 편치 않다. 넓은 ..
인류기원의 열쇠 ‘DNA’- 마틴 존스 <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 ▲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마틴 존스|바다출판사 유적에서 토기가 출토됐다고 치자. 그러면 고고학자들은 부드러운 솔로 항아리에 묻어있는 먼지와 쾨쾨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유기체를 조심스레 털어낼 것이다. 신주 모시듯 하면서…. 그러면서 기왕의 토기편년에 막 나온 유물을 대입시켜 연대가 어떻고, 성격이 어떻고를 설왕설래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고학은 한물 간 시대가 되었으니 세상, 참…. 이젠 막 출토된 토기는 거들떠보지 않고 토기에 묻은 생체분자들을 모아 최첨단 실험실로 가져간다. DNA 분석을 위해서다. 이 괴상한 사람들은 생체분자 고고학자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고고학자 노릇하기도 힘들어졌다. 고고학자는 고생물학, 분자생물학, 지구화학, 법의학 등 골치아픈 자연과학 공부까지 섭렵해야 행세할 수 ..
18세기 천재들 ‘벽과 치’- <안대회 조선의 프로페셔널> ▲조선의 프로페셔널…안대회|휴머니스트 일찍이 박제가 선생은 벽(癖)이 없는 인간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쳤다. 여기에 치(痴)를 하나 더 붙이자. ‘벽과 치’. 이덕무 선생이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읽는 바보라는 호를 지은 이유다. 요즘 말로 한다면 ‘마니아’ 혹은 ‘폐인’이라 할까. 뭐 그런 뜻으로 한다면 10년 이상 고전에 빠져 불과 한달 반 만에 책을 두 권 내는 등 내공을 뿜어내는 저자야말로 ‘벽과 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각설하고 저자는 ‘벽과 치’, ‘마니아와 폐인’을 ‘프로페셔널’이라 칭했다. 저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카스트적인 신분사회질서가 횡행했던 조선에서 독보적인 ‘벽과 치’로 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이들의 삶을 발굴하는 일 또한 지난한 작업이었을 터. 그런 의미..
(5) 파주 진동 허준의 묘 1982년 어느 날. 서지학자 이양재씨는 어떤 골동품 거간꾼으로부터 한 통의 간찰(편지)을 입수했다. 눈이 번쩍 띄었다. “7월17일 허준 배(許浚拜). 비가 와서 길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내용이야 그렇다 치고 글쓴이가 허준이라고? 서지학자는 그만 흥분했다. “사실확인에 들어갔죠. 허씨 대종회를 찾아가 종친회 족보에서 준(浚)자를 썼던 분을 몇몇 발견했는데요.” 그러나 준(浚)자 이름을 지닌 분들 가운데 이런 초서의 글을 멋들어지게 쓸 만한 학식과 지위에 있었던 이는 단 한분이었다. 바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선생이었다. 더구나 글자체도 16~17세기쯤으로 추정됐다. ‘양천허씨족보’를 검토한 결과 한국전쟁 이후 실전(失傳)된 허준의 묘가 ‘장단 하포 광암동 선좌 쌍분(雙墳)’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4)파주 백학산 석불 “여기에는 지뢰 같은 것 없죠?” '> 기자가 농처럼 묻는다. ‘미확인 지뢰지대’라는 빨간 딱지의 표지를 스치듯 지나가노라니 왠지 꺼림칙하다. 수풀을 헤치며 다가가는 발걸음이 섬뜩하다. 그래서 묻노라면 동행한 이재 국방문화재연구원장과 이우형 연구원이 씩 웃는다. 그러면서 되받아치는 농담. “음, 신문도 아무리 철저하게 교정을 보아도 오·탈자가 생기잖아요. 여기도 마찬가지죠.” 오·탈자의 악몽에 시달려온 기자들에게는 참으로 절묘한 비유다. 지뢰탐사반이 철저하게 훑고 지나가도 간혹 발견하지 못한 지뢰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니까. “야! 정말 끝내주는 비유네!”하고 박장대소하지만 등짝에 맺히는 식은 땀방울을 어찌할꼬. 6·25 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학산 고지(229m·파주시 군내면 읍내리)...
(3) 파주 서곡리 벽화묘 -한씨자손이 권준선생을 600년 모신 사연- “민통선 안에서 누가(도굴범) 물건을 꺼내왔다는데…. 무덤에 뭔가 그림 같은 게 있다고 하네요.” 1989년 어느 날, 당시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에게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도굴된 벽화묘? 우리나라에서, 특히 한반도 남부에 벽화묘는 극히 드문 것이어서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제보자는 무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정실장에게 전했다. “파주 서곡리 야산이랍니다. 비석도 있다네요. 청주한씨, 문열공 한상질의 묘라고 하네요.” 한상질(1350?~1400년)이라. 여말선초의 문신이자, 세조 때의 권신인 한명회의 할아버지. “벽화묘라니까 발굴조사가 필요했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던 한병삼씨(작고)도 청주한씨거든. 내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