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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초 대왕 정조임금이 꿈꾼 '담배의 나라' 1560년쯤 유럽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담배는 그야말로 요원의 들불처럼 전세계로 퍼진다. 결국 60년도 안되어 극동지역으로 몰려온다. 이른바 ‘담뱃길’은 여러 곳으로 추정된다. 우선 청나라 초기 사람인 왕포가 쓴 를 보면 담배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 연간(1628~1644)에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담뱃잎이 여송(필리핀 루손섬)에서 전래됐다는 것이다. 담배의 전래를 연구한 중국의 사상가 우한(오함)은 담뱃길을 대략 3가지로 요약한다. 즉 일본→조선→랴오둥(요동)이 한 갈래이고, 필리핀(루손)→푸젠(복건)→광둥(광동)이 또 다른 갈래, 그리고 남양(남태평양)군도→광둥(광동)→중국 북방 등이 또 하나의 갈래였다는 것이다. 중국 광저우(廣州)→조선→일본으로 거쳤다는 ‘역 담뱃길’의 주장도 있지..
담배 때문에 미국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남초(南草·담배)는 1616~17년 사이에 조선에 들어왔다. 5년 만에 조선에서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해롭다는 것을 알고 끊으려 해도 끝내 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담배를 요초(妖草), 즉 요망한 풀이라 했다.” 1638년(인조 16년)의 기록이다. 이 기사처럼 담배의 모든 것을 요약해주는 대목을 찾기 힘들다. 중독성이 얼마나 강했으면 단 5년 만에 조선 전역에 대유행했을까. 벌써 그 당시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무지 끊을 수가 없어서 요망한 풀이라 일컬었다니…. 빈센트 반 고흐가 1885년 그린 . 고흐는 장난스럽게 그렸지만 결과적으로 담배의 해악을 소름 끼치도록 표현했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부터 피웠던 담배 하기야 그럴 만도 했으리라. 유럽에 전해진 담배가 본격 ..
당 태종이 메뚜기를 꿀꺽 삼킨 이유는 “옛날 당 태종은 황충(蝗蟲·메뚜기 혹은 풀무치)를 삼킨 일이 있다. 아무리 어질고 의로운 군주라 해도 정성이 없었다면 어찌 황충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는가. 그것은 결국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765년 6월 3일조) 1765~68년 사이 전국에 황충 떼를 비롯한 해충이 기세를 부리고, 가뭄까지 겹치자 영조 임금이 깊은 시름에 잠겼다. 영조는 ‘당 태종의 고사’를 예로 들면서 “과인이 태종처럼 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영조가 언급한 ‘당태종의 고사’란 무엇인가. 당 태종의 치도를 논한 ‘무농(務農)’에 나와있는 일화를 일컫는다. 스페인령 카나라이 제도에 날라든 메뚜기 떼. 1억 마리의 메뚜기가 서아프리카 대륙에서 넘어왔단다. 오자 비상 경계령을 발동했다...
조선의 '요지경' 병역면제 수법 “근자에 병역에 해당된 자들 가운데 선현의 자손이라고 거짓말을 고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안(安)씨는 모두 안유(安裕·안향)의 후손이라 하고, 한(韓)씨는 모두 기자(箕子)의 후손이라 합니다.” 1682년(숙종 8년) 지사 김석주가 “큰 일 났다”면서 “상당수가 병역기피를 위해 거짓으로 선현의 후손을 칭하고 있다”고 상언했다. 무슨 말인가. 조선시대 때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하는 나이는 16~60세였다. 이들은 1년에 2~6개월씩 교대하는 방식으로 병역의 의무를 져야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병역면제의 헤택을 받는 ‘신의 자식들’이 있었다. 완문(完文). 1830년 충훈부가 신우태에게 발급한 문서. 공신 신숙주의 후손인 신우태의 잡역을 면제하는 내용이다.|국립중앙박물관 ■3학사의 후손에게 병역면제혜택을 줘..
한반도 중부엔 휴화산이 잠들고 있다. 해발 360m인 강원 철원 평야에 서있는 동주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라. 물론 북한 땅 평강이다. 지평선을 마치 담벼락처럼 가로막고 있는 것과 같은 평강고원이 어렴풋 시야에 들어온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야트막한 봉우리가 보인다. 그곳이 낙타고지(432m)다. 이름에서 보듯 한국전쟁 때 피아간 피를 흘린 곳이며, 낙타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었다. 그 뒤, 더 멀리 한탄강의 발원지라는 장암산(1052m)가 보인다. 그런데 낙타고지의 바로 곁에 아주 얕은 구릉 같은 산을 지나치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오리산(鴨山)이라 한다. 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해발 453m이니, 서울의 북악산(342m)보다 더 높은 산이다. 하지만 군사분계선 너머 저 멀리 보이니만큼 그저 봉긋한 구릉처럼 보일 뿐이다. ..
백제인의 발자국…그가 남긴 메시지 1999년 8월 풍납토성 성벽을 발굴 중이던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은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누군가 뻘층에 남긴 발자국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양생 중인 콘크리트에 실수로 찍힌 발자국이었다. 이 발자국의 연대는 기원후 200년 쯤으로 추정됐다. 백제는 최소한 2차례 이상에 걸쳐 풍납토성을 완성했는데, 발자국이 찍힌 곳의 연대측정 결과 기원후 200년 쯤으로 측정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은 최소한 1800년 전 백제인의 발자국인 셈이다. 발자국의 크기는 폭 12㎝, 길이 36㎝ 정도됐다. 주인공의 발자국은 뻘을 밟으면서 약간 밀려 실제의 발 크기보다 크게 나온 것이리라.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지목된 풍납토성의 성벽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백제인의 발자국. 1800년 전 쯤 성을 쌓..
전모…베이징 원인 실종사건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이다.’ 1650년 무렵, 영국 국교회의 제임스 어셔 대주교는 아주 흥미로운 계산을 해낸다. 성경의 인물들을 토대로 천지창조일을 역산한 결과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날짜를 지목한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후 이 날짜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날’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로부터 꼭 206년이 지난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 인근의 네안더 골짜기 석회암 동굴에서 이상한 화석이 발견됐다. 채석공들의 삽에서 골반뼈와 눈 위 부분이 뚜렷하게 튀어나온 머리뼈를 비롯, 상당량의 뼈들이 걸려나온 것이다. 사람 같지만, 오늘날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돌출이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네안더 골짜기에서 확인된 고인류라는 뜻에서 네안데르탈인..
3000년 전 청동기 마을의 비밀 춘천 중도에서 확인된 고인돌 군. 이런 고인돌들은 흔히 알려진 거대한 탁자식이나 바둑판식 고인돌이 아닌 개석식 고인돌이다. 소박한 형식의 고인돌이다. |서성일 기자 100년 전에도 심상치 않은 곳이었나 보다. 일본의 고고·인류학자인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역시 그 냄새를 맡았다. 하기야 강(江)은 선사시대의 고속도로(강)이자, 문명의 젖줄이니까…. 게다가 땅이 가라앉으며 이뤄진 침강분지인 춘천 일대는 북한강과 소양강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가 쌓여 이뤄진 비옥한 충적대지였다. 그러니 농사를 짓게 된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 1915년 식민지 경영을 위해 조선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던 도리이는 소양강변 춘천 천전리(泉田里·샘밭)에서 10기에 가까운 고인돌과 돌무지 무덤(적석총)을 확인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