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판다 외교와 코끼리 외교 ‘판다외교가 재개됐다?’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판다 한 쌍을 도입하기로 햇다. 지난해 6월 중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때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기증된 따오기에 이어 두번째 동물외교이다. 중국이 이른바 ‘판다외교’를 펼친 예는 많다. 1941년 12월 중국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부인인 쑹메이링(宋美齡)이 미국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 한쌍을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반일전선 구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보낸 미국 정부를 향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후 국민당 정부가 무너지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륙을 석구너한 이후에도 판다는 외교사절의 역할을 톡톡해 해냈다. 예컨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방문 때였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연회장 .. 자책골 선수 피살, '광란의 범죄' “자살골에 감사한다.” 1994년 7월 2일(현지 시간) 새벽 3시,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의 한 클럽 주차장에서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괴한들이 축구대표 수비수 안드레아스 에스코바르를 에워싸고는 ‘자살골, 고맙다’고 비아냥대면서 6발의 총탄세례를 퍼부었다, 괴한들은 한발씩 쏠 때마다 ‘골, 골, 골, 골, 골, 골’이라고 외치며 저주를 퍼부었다. 비극은 94미국 월드컵 무대에서 잉태됐다. 발데라마와 이기타 등 걸출한 스타들이 축을 이룬 콜롬비아는 남미 예선에서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5-0으로 대파하는 등 역대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축구황제 펠레는 “브라질보다 더 브라질다운 축구를 하는 팀”이라면서 콜롬비아를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다. 이 예언이 바로 ‘펠레의 저주’를 연 서막이었음.. 고지쟁탈전에 흘린 젊은 넋들의 피 “정말 저기가 비무장지대가 맞나.” 강원 철원 홍원리 평화전망대에 오를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갖는다. 비무장지대란 높고 깊은 산악지대, 즉 사람들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게 일반상식인데…. 그러나 철원은 해발 220~330미터 위 용암대지에 펼쳐진 드넓은 평원이다. 당장이라도 논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평야를 품에 안고 있는 저편 고지와 능선의 이름, 그리고 사연을 알게 되면 나른한 평온이 깨진다. 전망대에서 맨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백마고지다. 이곳에서는 1952년 10월6일부터 백마고지를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수 만 명의 인명피해를 주고받은 뒤 마침내 한국군 9사단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백마고지는 지금 민간인들은 갈 수 없는 남방한계선 .. 비무장지대엔 지하만리장성이 있다 “포격전이 한창일 때 F-80 제트전투 폭격기 편대가 나타나 공산군 진지에 네이팜탄을 쏟아부었다. 활활 타오느는 화염, 그리고 푸른 하늘 높이 뭉클 솟아오르는 소형 원자운 같은 버섯형 흑연. 유엔군은 공산군 진지 아래 병사들이 전부 불타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자 전멸했어야 할 공산군 진지에서 박격포가 날아왔다.” 1952년 불모고지 전투를 취재한 일본기자가 본국에 타전한 기사내용이다. 일본기자는 미군 장교의 말을 인용하면서 “산의 정상에서 20미터 쯤 내려온 공산군의 지하진지를 네이팜 탄이 완전히 불태울 수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대체 공산군 진지에 어떤 장치가 있었기에 이토록 철옹성이었을까. 아니면 이 지역에 만리장성이라도 구축했단 말인가. 그랬다. 정말로 중국군은 이른.. 유엔군 화장터, 한 줌 재로 스러진 젊은이들 1940~50년대 육체파 여배우였던 제인 러셀. 오성산 인근의 고지가 제인러셀의 가슴을 닮았다해서 '제인러셀' 고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피의 의미 한국전쟁은 국제전쟁이었다. 전쟁 당사자인 남북한과 중국, 소련, 그리고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16개국 등 20개국이 직접 참전했다. 차마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를 수 없었던 동서 양진영이 한반도에서 ‘제3차대전의 대체전’을 치른 것이다. 전쟁의 양상은 특이했다. 1년 여의 혈전 끝에 교착상태에 빠졌다.(1951년 6월) 전선은 지금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 공산측으로서는 1951년 두 차례에 걸친 대공세를 벌였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소련이 약속한 60개 사단분의 전투장비와 보급품도 도착하지 않았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와의 반.. 이승만과 김일성의 '합작 다리'를 아시나요 1950년 12월 30일 오전 11시. 기관사 한준기씨가 수색 차량기지를 출발했다. 개성역까지 가서 군수물자가 실린 화차를 달고 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러나 개성역에 도착하자 다른 명령이 떨어졌다. 북한 기관차를 인계받고는 다시 평양까지 올라가라는 지시였다. 하지만 31일 오전 1시. 열차가 황해도 평산 한포역에 도착하자 다시 급박한 소식이 들렸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후퇴가 불가피해지자 “다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한준기 기관사는 후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후진으로 개성역에서 간 한씨는 다시 화차 25량을 끌고 파주 장단역에 닿았다. 31일 밤 10시쯤이었다. “기차를 멈추고, 기관차 승무원은 기차에서 내려 대기하라.” 남과 북이 시차를 두고 건설한 승일교. 북의 김일성이 시.. 태종 이방원이 충성서약에 목맨 이유 “우리들 일을 같이 한 사람들은 임금을 섬기고, 친구를 신의로 사귀고, 부귀와 이익을 다투지 말며, 다른 자의 이간을 듣고 의심을 품지 말며, 과실은 바로잡고, 환란이 있으면 서로 구원해 줄 것입니다.” 왕씨의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1392년 7월 17일)한 지 두 달이 지난 뒤인 9월 28일, 정도전과 배극렴 등 개국 공신들이 총출동했다. 태조 이성계를 향한 충성서약식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개국 공신들은 “처음과 끝이 같도록 충성을 바치겠다”면서 “자손 대대로 이 맹약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신(神)이 벌을 내릴 것”이라 재차 다짐했다. 조선시대 공신들의 충성서약을 받던 회맹터. 지금의 청와대 북쪽에 있었다고 한다. ■“배신자는 대대로 복수할 것이다” 그러나 “공신 간 절대 반목하지 않겠다”.. 억울한 여인을 죽인 세종의 잘못된 판결 “무릇 화간(和姦)은 장 80대, 남편이 있으면 장 90대이다. 조간(勺姦·여자를 유괴한 뒤 간음)은 장 100대이고, 강간한 자는 교수형(絞刑)에 처한다. 강간미수죄는 장 100대에 유배(流) 3000리에 처한다.”(·‘형률·범간조(犯奸條)’) 1637년 명나라가 제정한 이다. 조선도 이 에 따라 성범죄나 성희롱을 엄단했다. 보기에도 무시무시하다. 강간범은 교수형에 처하고 미수범이라도 장 100대에 유배 3000리의 처벌을 받았다니…. 욕정을 함부로 발산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성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1404년(태종 4년) 사노(私奴) 실구지 형제와 그들의 처남인 박질이 능지처사의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 주인집 딸을 집단 성폭행한 죄였다. 피해자(내은이)는 손발이 묶인 채 밤새.. 이전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