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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전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 그녀는 누구인가 영산강 유역인 전남 나주의 다시면 복암리 너른 들에는 흥미로운 고분이 늘어서 있다. 예전에는 칠조산(七造山)이라고 해서 고분이 7기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3기는 1960~70년대 경지정리로 삭평되어 이제 4기만 남았다.1995년 이른바 복암리 고분 가운데 3호분에 대한 복원계획이 수립되어 발굴이 시작됐다. 3호분은 어느 종가의 선산이었는데, 주변 경작으로 계속 봉분 유실되자 복원계획을 세운 것이다. 영산강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 지도자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위). 신발 안에는 사람의 발뼈(사진 아래의 왼쪽)와 파리 번데기 껍질(오른쪽)이 보였다. ■도굴되지 않은 싱싱한 고분그런데 복원을 위한 기초조사만 하던 중 심상치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무덤 주위를 두른 주구(周溝·묘역을 구분하거나 배수, 혹..
‘집나간’ 천연기념물 영광 출생 노랑부리백로가 날아간 곳은? 영광에서 태어나 해남·고창에서 먹이를 먹고, 1200~2800㎞를 날아 타이완과 필리핀에서는 겨울을 나고….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천연기념물(제361호) 노랑부리백로가 대체 어느 곳까지 날아가 월동하는지 그 경로를 최초로 확인했다. 전남 영광 칠산도에서 번식한 노랑부리백로. 겨울나기 코스를 알아보려교 위치추적기를 달았다.노랑부리백로는 이곳에서 번식한 뒤 1200㎞를 날아 타이완과 필리핀까지 가서 월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5월 전남 영광 칠산도에서 태어난 천연기념물 노랑부리백로(제361호)에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한 결과 전남 해남과 고창 연안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겨울을 나려고 타이완과 필리핀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연구소는 지난 6월27일..
'7일의 왕비' 단경왕후가 남편(중종)의 자결을 말리고 쫓겨난 사연 드라마 로 알려진 비운의 단경왕후를 모신 경기 양주 온릉(사적 제210호)이 14일부터 일반에 전면공개된다. 나명하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은 “그동안 군사시설보호구역 내에 있어 비공개로 관리해오던 온릉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온릉은 조선의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첫번째 왕비 단경왕후 신씨(1487~1557)의 능이다. 문신 신수근(1450~1506)의 딸인 신씨는 1499년(연산군 5) 성종의 둘째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과 혼인했다. 에 따르면 둘 사이는 애정이 매우 도타웠다. 반정이 일어났을 때도 신씨의 현명함이 돋보였다. ‘7일간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가 묻힌 온릉. 단경왕후는 중종의 진성대군 시절 부인으로 중종반정 후 왕후에 올랐지만 단 7일만에 폐위됐다. 아..
②66쪽 중 18쪽 없는 <훈민정음 상주본>, <간송본>과의 비교? 어림없는 소리다 ‘훈민정음 상주본의 가치가 1조원? 어림없는 소리다.’ 언젠가부터 2008년 경북 상주에서 확인된 (이하 )의 가치가 1조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다닌다. 그러나 이 상주본을 직접 봤거나 깊게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고개를 내젓는다. 어떤 이는 “이 과연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랍다”고까지 한다. 그렇다면 왜 ‘=1조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왜 전문가들은 ‘문화유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는 것일까. 2008년 나타난 . 총 66쪽 가운데 18쪽이 없어서 ‘불완전한 진본’이라 평가된다. 66쪽 중 4쪽이 없는 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출현하자 마자 소유권 분쟁때는 바야흐로 이 출현한지(1940년) 68년 만인 2008년 7월 30일 엄청난..
①'반갑도다! 훈민정음의 나타남이여!' <간송본>의 출현에 외솔의 외침 최근 문화재위원회는 (간송본)을 보관할 간송미술관 보호각의 청사진을 조건부 가결했다. 2021년 완공될 보호각에 들어설 문화유산은 국보 12건, 보물 32건, 시도지정문화재 4건 등이다. 이중 최고의 문화유산은 뭐니뭐니해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강점기인 1940년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국보 제70호인 이다. 보호각 설립 계획안의 가결을 계기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알아보고 최근 말썽을 빚고 있는 과 을 2회에 걸쳐 비교해보고자 한다. ①은 간송본의 출현에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가 “반갑도다!”라 감탄사를 외친 이유, ②는 과 과의 비교가 어림없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어찌 뜻하였으랴. 수개월전 (훈민정음) 원본(이하 해례본)은 경북의 어떤 고가에서 발견되어 시내 모씨의 소유로..
'출생의 비밀'…고려 현종의 부모사랑 깃든 현화사 석등 공개 북한 땅 개성에 현화사라는 절이 있다. 북한의 국보유물(제139호)인 7층석탑으로 유명한 절이다. 이 절은 고려 현종(재위 1009~1031)이 불우하게 타계한 부모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불우하게 돌아간’이라는 사연이 아주 흥미롭다. 이 절을 창건한 현종은 태조 왕건의 여덟번째 아들인 왕욱(王郁·?~996·훗날 안종으로 추존)과 헌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현종의 어머니인 헌정왕후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개성 현화사에 있었던 석등. 현화사는 고려 현종의 ‘불우한 부모’를 추념하기 위해 세운 절이다. 이 절의 석등이 반출돼 1911년 일본인 골동품상인 곤도가 조선총독부에 팔아넘긴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즉 헌정왕후는 태조 왕건의 아들인 대종(?~969)..
"너의 목덜미가 좋고' 천재시인 이상이 썼다는 연서는 여성이 여성에게 보낸 편지였다 “나는 진정 네가 조타(좋다). 웬일인지 모루겟다(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조코 목들미(목덜미)가 조코 볼따구니도 조타….” 2014년 7월 제목만으로도 단박에 주목을 끄는 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25살이던 이상(1910~1937)이 당시 23살 소설가였던 최정희(1912~1990)에게 보냈다는 핑크빛 연서였다.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1910~1937)이 23살 젊은 이혼녀이자 동료소설가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처음 발견됐다’는 것도 핫뉴스일텐데, ‘네 입과 목덜미까지 좋다’는 편지 내용까지 일거에 대중의 시선을 빼앗을만한 소식이었다,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연서로 소개된 편지. 그러나 편지 끝부분의 서명이 ‘이상(李箱)’이라 했지만 이상이 아니라 이제(李弟)이며,..
경주 쪽샘에서 출토된 1500년전 '행렬도 토기', 말갑옷의 비밀 경주에 ‘쪽샘’이라는 지명이 있다. 황오동·황남동·인왕동 일대의 약 38만㎡ 면적인데, 이곳에 쪽빛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샘이 있다고 해서 ‘쪽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라의 천년고도 답게 경주는 그 어느 곳을 파도 유물밭인데, 바로 이 쪽샘 지구가 그렇다. 4~6세기에 살았던 신라 귀족들의 무덤이 800여기가 집중된 곳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부터 주택과 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고분 훼손이 심해지자 2002년부터 민가와 사유지를 매입하고 2007년부터 본격발굴하기 시작했다. 발굴은 20년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다.2009년 경주 쪽샘지구 C 10호 목곽묘에서 확인된 말갑옷이 복원을 끝내고 첫 공개됐다. 복원결과 말갑옷은 736매의 철편으로 중무장한 신라 중장기병의 것임이 드러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