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373)
아라가야 왕릉에서 발견된 ‘생명의 별자리’ 남두육성 아라가야인들이 바라본 봄철 남쪽 하늘의 별자리는 어땠을까. 아라가야 왕릉급 고분으로 알려진 함안 말이산 13호분(사적 제515호)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사수)자리 등의 별자리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 아라가야 왕릉 무덤으로 추정되는 함안 말이산 13호분 덮개돌에서 확인된 성혈. 궁수자리와 전갈자리 등의 별자리가 선명하게 확인됐다. 특히 궁수자리 안에 있는 남두육성이 눈에 띈다. 남두육성은 동양에서 생명과 태양을 의미한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제공 이 고분을 발굴한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18일 “붉게 채색된 구덩식 돌덧널 무덤(수혈식 석곽묘)의 벽면과 125개의 별자리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말이산 고분은 이번에 부대시설이 확인된 왕성터에서 2㎞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번에 1..
석기시대의 비밀…40만년전 사용된 나무창의 정제 석기시대(stone age)하면 떠오르는 도구는 역시 석기, 즉 돌이다. 그러나 돌 말고도 하나 더붙여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나무다.물론 인류는 처음에는 돌도끼 같은 도구를 이용했지만 점차 효용성 증대에 골몰하게 됐다. 독일 쉐닝겐 구석기 유적에서 거의 완형에 가까운 10여점의 나무창이 쏟아졌다. 석기시대는 흔히 ‘돌의 시대’로 알려졌지만 ‘도구가 나무’의 시대, 즉 ‘석 목기 시대’라 일컬어질만 하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그래서 사용한 것이 나무이다. 특히 사냥도구의 관점에서 창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창의 발명으로 사냥꾼은 안전한 곳에서 사냥감을 향해 창을 던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가볍고 날카로운 창의 찌르개는 살상력을 높였다. 석기시대가 아니라 ‘석·목기 시대’라 일컬어져야 하지 않을까.고인..
'아이 울음소리' 에밀레종의 신비는 비대칭의 미학에서 비롯됐다 “비대칭성의 미학이 에밀레종의 신비를 낳았다.”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의 또다른 이름인 ‘에밀레종’은 아주 끔찍한 작명의 전설을 갖고 있다. 771년(혜공왕 7년) 도무지 종이 완성되지 않자 어린 아이를 쇳물이 펄펄 끓는 도가니에 던졌더니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종에서 어린아이의 소리처럼 ‘에밀레’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자신을 쇳물에 던지게 만든 어미를 원망하며 ‘에미 죄’라고 울부짖는 소리라는 것이다. 성덕대왕 신종만의 고유 맥놀이 현상을 설명하는 그래프. 성덕대왕 신종의 음파는 타종하고 대략 9.1초 후에 “…어~엉…”하고 울고는 사라지는듯 하다가 다시 한번 9.1초 후에 울음을 토해낸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표현되는 이유다.|김석현 ..
혜공왕, 만월부인, 맥놀이, 스위트 스팟…'에밀레종, 천상의 소리' 비밀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 일명 ‘에밀레종’을 둘러싼 설화는 해괴하고 끔찍하다. 같은 주제인데 여러 버전으로 전해진다. 즉 성덕대왕 신종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해서 스님들이 시주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그런데 어느 가난한 집 부인이 시주를 받으러 문을 두드린 스님에게 “마음 같아서는 시주 하고 싶지만 있는 것은 갓난아이 뿐이니 이 아이라도 시주 받겠냐”고 했다. 스님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그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열심히 시주받아 종의 제작에 보탰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종은 완성되지 않았다. 2003년 타종 및 음향.진동 측정조사를 위해 종을 치는 모습.스님이 이상하게 여겨 점을 쳐보니 ‘받을 시주를 받지 않아서 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궤가 나왔다. 스님이 문득 갓난 아이..
몽골의 감시아래 흐느끼며 허물어야 했던 강화성벽의 흔적 “1259년(고종 49년) 6월 강도(강화도)의 내성을 헐기 시작했다. 몽골 사신이 급하게 독촉하자 군사들이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울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성을 쌓지 말걸 그랬다.’”()고려와 28년간(1231~59년) 6차례의 전쟁을 벌인 끝에 강화협정을 맺은 몽골이 내건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강화도성을 허무는 것이었다. 몽골이 느꼈던 물에 대한 경외심과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강화 중성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방어시설. 외부 침입을 막는 시설인 치와 외황(마른 도랑) 등이 발견됐다. 특히 몽골과의 항쟁이 끝나고 강화협정을 맺은 후 몽골의 압력에 의해 성벽을 허문 흔적도 보였다. |한백문화재 연구원 제공칭기즈칸이 13세기 초 제정한 법에는 “제4조=물이나 재에 방뇨하는 자는 사형이 ..
숙종 영조 부자는 왜 노인대접을 받으려 생떼를 썼을까 “주상(숙종)께서 기로신 10명을 초대하시어 종일토록 즐겼는데 5차례에 걸쳐 5잔씩 술을 마시도록 했다. 5번째 잔은 ‘사기로소(賜耆老所·기로소에 하사한다) 네 글자가 새겨진 큰 은술잔으로 마시게 했다. 기로신들은 주상의 명을 사양하지 못해 만취했다.” 1719년(숙종 45년) 4월18일 59세가 된 숙종 임금(1661~1720, 재위 1674~1720)이 기로소에 입소한 기념으로 기로신(70세 이상의 정 2품 이상의 문신) 10명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였다. 눈병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숙종은 “병든 몸이 궁전에 오르니…여러 관리 모여있고…이 연회는 본시 높이려는 뜻에서 나왔으니 가득한 술잔에 자주 손이 간들 어떠리”라는 시를 지었다. 이날의 연회 내용을 첩자로 만든 것이 바로 ‘기사계첩’이다. 에 ..
개로왕의 가묘인가, 제단인가…30년째 베일에 싸인 송산리 고분 석축 비명횡사한 개로왕을 위한 허묘일까, 제단일까, 아니면 석탑일까. 30년전 발굴조사 후 그 성격을 두고 설왕설래했던 유적이 있다. 무령왕릉으로 유명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 정상부에 존재하는 3단 석축시설이다. 이곳은 1988년 고지자기 탐사와 이에 따른 발굴조사로 확인된 유구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주장들이 오갔다.공주 송산리고분군 정상부에서 확인도니 3단 석축시설. 30년전 확인된 유구지만 적석총인지, 제단인지, 석탑인지 그 성격을 두고 논쟁을 벌여왔다. 올해 성격 규명을 위한 전면조사를 벌였지만 매장주체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문화재청 제공 먼저 돌로 쌓은 이 구조물이 특별한 시설을 갖추지 않았지만 구조적으로 서울 석촌동 2호·4호분 등의 적석총과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웅진백제 시절 ..
'통일의 유전자'를고려에서 찾는다-고려건국 1100주년 특별전 “태조가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했다. 즉위 조서에서 ‘임금과 신하는 물과 물고기처럼 즐거워하고(魚水之歡)이며 태평시대의 경사(晏淸之慶)를 도우리니 나라의 뭇 백성은 마땅히 내 뜻을 알도록 하라’고 했다.”( )은제 주전자와 그릇받침. 개성 부근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인다. 1935년 미국 보스턴 박물관이 구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918년 6월(음력) 태조 왕건이 고려의 건국을 만천하에 알렸다. 동북아는 당나라가 멸망하고(907년) 이른바 5대10국 시대(907~960)라는 혼란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시기 고려는 외세의 지원없이 자력으로 후삼국을 합쳤고, 곧 멸망한(926년) 발해의 유민까지 받아들인 진정한 통일을 이뤘다. 태조 왕건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