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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여사, 씨… 1932년 동아일보에 실린 춘원 이광수의 소설 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어른은 변호사 허숭씨 영부인, 이화의 천재시오. 미인이시죠.” 영부인의 영(令)자는 ‘남을 높인다’는 의미의 접두어다. 영부인은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일 뿐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게 됐을까.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를 ‘영부인’으로 지칭하는 기사가 1949년 11월 5일 동아일보에 실린다. “푸랑체스카 여사는 ‘더 초우즌 우-먼(선택된 부인)’으로서 최대최고의 희망인 일국 대통령의 영부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요즘의 관점이라면 엄청 시대착오적인 기사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이 기사의 부제는 ‘이 대통령 부인의 근황’이었다. 그때까지도 영부인 호칭은 대통령 부인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
'청와대 f4'… '미남이시네요' 심리학 용어 중에 ‘블링크(blink)’가 있다.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판단’을 일컫는데, 직관이나 통찰의 능력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순간판단이 틀릴 때가 있다. 편견과 차별이 눈 앞을 가릴 때이다. 이것을 ‘워런 하딩의 오류’라 한다. 미국 제29대 대통령인 하딩(1865~1923)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미남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899년 미정가의 막후 실력자인 해리 도허티는 오하이오주의 지역신문 ‘더 매리언 스타’의 편집장이던 하딩을 처음 보자마자 홀딱 빠졌다. ‘미국 역사를 바꿀 인물’로 여겼다. 능력과 자질 때문이 아니었다. 신의 은총을 받은 듯한 신체와 남자다운 인상, 경쾌한 걸음걸이와 꼿꼿한 자세, 그리고 다른 손님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의 정중함까지…. 조각미남이라는 뜻..
청와대 대통령과 광화문 대통령 청와대터의 풍수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주산인 북악산은 해발 342m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산이다. 그러나 막상 청와대에 서서 북악산을 치켜보면 사뭇 달라 보인다. 배를 쑥 내민채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운 독불장군처럼 오만하기 이를데 없다. 청와대 주인만 되면 ‘나홀로 우뚝 고집을 피우는 듯 서 있는’ 북악산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북악산 모습. 북악산 오른쪽 면을 보면 두 눈과 코가 있는 얼굴형상이다. 그런데 이 얼굴은 청와대를 외면하고 있는 상이다. 게다가 북악산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듯 곧추서있는 모습이다. 독불장군의 형세라 한다. 게다가 산의 오른쪽 면은 사람의 얼굴상이다. 그래서 ‘면악(面岳)’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얼굴을 뜯어보면 청와대를 외면한 형상이다. 최창조 전 서울대..
'감악산비'는 제5의 진흥왕순수비다? 진흥왕순수비. 한국사를 배울 때 놓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삼국 가운데 약소국이던 신라가 진흥왕 때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 함경도 이원지방까지 진출한 다음 새롭게 개척한 영토를 순행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으로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순수비는 창녕비ㆍ북한산비ㆍ마운령비ㆍ황초령비 등 4곳입니다. 한결같이 개척한 새로운 영토 중에서도 요충지에 속하는 지점에 건립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4곳 뿐일까요. 역사학자들은 진흥왕순수비가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상한 곳을 마침내 찾았습니다. 1980년대 초 학계에 보고된 감악산비입니다. 임진강유역의 요충지, 임진강-파주-서울을 잇는 감악산..
'야한' 구석기 비너스와 전곡리 축제 1864년 프랑스 고고학자 폴 우랄은 로즈리 바스 후기구석기 유적에서 희한한 조각물 1점을 발굴했다. 머리도, 발도, 팔도 없는데 유독 음부만은 예리한 칼로 표현한 구석기 말기의 유물이었다. 금방 이 조각상에 ‘야한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벌거벗은 자신의 음부를 오른손으로 살짝 가린 그리스 로마 시대의 비너스상을 흔히 ‘정숙한 비너스’라 일컫지 않은가. 2008년 발견된 홀레펠스 비너스. 3만5000년전의 작품이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꽁꽁 가려도 시원치않을 음부를 부끄럼없이 턱하니 내놓고 있으니, ‘야한 비너스’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아무런 상관 관계없는 비너스를 끌여들여 현대 서양인의 잣대로 구석기인의 문화를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여신상을 ‘○○비너스’로..
'피노키오' 트럼프와 중구삭금 성어 증삼은 스승인 공자가 효행의 본좌로 꼽을만큼 효자였던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베를 짜고 있던 증삼의 어머니에게 누군가 달려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외쳤다. 그러나 아들을 철석같이 믿었던 어머니는 태연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다시 어떤 이가 “증삼이 살인했다”고 고했지만 역시 눈하나 꿈쩍 안했다. 그런데 다시 다른 이가 달려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외치자 겁이 덜컥 난 어머니는 담을 넘어 도망쳤다. 천하의 효자아들을 둔 어머니조차도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 3방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를 두고 중구삭금(衆口삭金·여러 사람의 입은 쇠조차 녹인다)라 한다. 장삼이사의 거짓말조차 쇠까지 녹인다는데 말 한마디가 중천금인 정치지도자라면 어떨까. 웃지못할 ..
'멍때리기'와 무위는 일맥상통이다? 너덜겅(돌숲)과 용출갯돌밭, 구실잣밤나무숲…. 전남 완도군이 지난 3월 ‘멍때리기 좋은 곳’으로 선정한 섬마을(생일도) 명소 3곳이다. 하늘나라 궁궐을 지으려 가져가던 바위가 떨어져 산산조각 나 생겼다는 자연돌숲과, 출렁이는 파도와 몽돌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갯돌밭,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밤나무숲 등이 멍때리는 장소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멍때리기는 아무 생각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의 속어이다. 예전에는 ‘참 한심한 사람’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멍때리기에 적합한 장소가 선정되고, 심지어는 멍때리기 대회까지 성황리에 열리는 판국이다. 아닌게 아니라 뇌가 쌩쌩해지려면 ‘멍을 잘 때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대세로 등장했다. 아르키메데스와 아이작 뉴턴은 ‘멍때리기의..
간송 전형필과 야마나카의 문화재 전쟁 최근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인 '야마나카 상회'를 다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이 야마나카 상회를 거쳐 판매된 석조 및 도자 문화재의 도록 사진과 관련 기록을 정리한 논문입니다. 야마나카 상회? 관련 서적을 들춰보니 간송 전형필 선생과 몇차례 맞대결을 벌인 기록이 있었습니다. 논문이 나온 김에 간송과 야마나카 상회가 펼친 문화재 전쟁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간송도 조선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당대 글로벌 거대자본이던 야마나카 상회와는 견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간송은 당당히 맞섰습니다. 첫번째 야마나카 상회가 개최한 경매에서 석조물 4점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만남에서는 판정패였습니다. 어떤 이유때문일까요. 하지만 두번째 대면에서는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감상할 수 있는 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