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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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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도 율곡도 당했던 조선의 신입생환영회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대학가가 몸살을 앓습니다. 이른바 신입생 환영회 때문이죠. 작년에도 어떤 대학에서 신입생들이 묶는 방 이름을 무슨 '아이 러브 유방'이니 '자아도 만져방'이니 짓고 이상한 춤을 추도록 강요한 일이 일어나더니 올해도 유사성행위를 묘사하는 몸동작을 제시하는 게임을 하고, 여학생을 암학생 무릎 위에 올려놓는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그 추태가 드러난 대학이 생겼습니다. 각 언론의 단골 제목은 '술에 찌든 대학'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새내기들에게 술을 강제로 먹이고, 성희롱을 자행하며, 군기를 잡는 행위는 도댜체 어디서 배운 버릇일까요. 뿌리가 깊습니다. 기록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고려 우왕 때 처음 생긴 신입관리 신고식이 시간이 갈수록 추태로 변했답니다. 심지어 9번이나..
선죽교 핏자국은 정몽주의 피인가 “선죽교에 낭자한 핏자국을 보고(善竹橋頭血) 사람들은 슬퍼하지만 난 슬퍼하지 않으리.(人悲我不悲) 충신이 나라의 위기를 맞아(忠臣當國危) 죽지않고 또 무엇을 하겠는가.(不死更何爲)” 1947년 백범 김구 선생은 개성 선죽교를 탐방한 뒤 비분강개했다. 만 35년 간의 일제강점기가 끝났지만 외세에 의해 두 갈래로 찢긴 나라의 처지를 생각하면 울컥했을 것이다. 특히나 선죽교 다리 위에 지금도 남아있는 듯한 포은 정몽주의 핏자국을 보고 시 한 수 떠올리지 않는다면 어찌 의리와 충절의 후손이라 하겠는가. 개성 선죽교.포은 정몽주의 절개를 상징하는 유적이다. 북한에서도 국보(159호)로 지정했다. ■"포은의 피로 진혼가를 쓰겠다" 150년 전 인물인 18세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 역시 그랬다.( ‘아정..
바둑 간첩, 한성백제를 멸망시켰다 오는 3월9일부터 역사적인 바둑대결이 펼쳐집니다. 구글이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의 5번기입니다. 이미 1990년대 후반 체스 세계챔피언을 무릎꿇린 인공지능은 이제 경우의 수가 무한대라는 바둑에서 입신, 즉 신의 경지라는 9단, 그것도 세계최정상급 기사인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인공지능, 즉 컴퓨터가 경우의 수가 10의 180제곱, 즉 무한대라는 바둑에서 인간에게 도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감정, 직관, 통찰력이 집중되는 바둑에서조차 승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겠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을 열렬히 응원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의 마음마저 컴퓨터에게 빼앗긴다는 게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
박제가, '조선은 똥덩어리'라 셀프디스한 까닭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실학자 초정 박제가는 무던히도 '중국타령'을 해댔습니다. 그의 에는 중국을 배우자는 뜻의 '학중국(學中國)'이라는 표현이 20번도 더 나옵니다. 박제가가 말하는 중국이란 당시 조선 사대부가 오랑캐라 폄훼했던 '청나라'였습니다. 박제가는 대체 왜 중국, 즉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자고 노래를 불렀을까요. 반면 박제가는 조선을 똥투성이의 더럽고 지저분한 나라라 손가락질했습니다. 박제가, 그 분은 왜 그토록 자신이 태어난 조선이라는 나라를 '셀프디스'했을까요. 그가 조선의 버팀목이라 하는 사대부를 왜 그토록 '조선의 좀벌레'라 비난했을까요. 박제가는 아예 조선말을 금하고 중국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망언에 가까운 주장을 폅니다. 왜 그는 그토록 중국어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면서 중국어를 ..
민족반역자 연남생의 무덤을 찾은 까닭 지난해 10월 중국 역사에서 13개 왕조가 도읍지로 정한 낙양을 방문했습니다. 강남문화원 답사팀과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소림사도, 용문석굴도, 백양사도 아니었습니다. 북망산 인근의, 옥수수 수확을 막 끝낸 들판을 찾아 헤맸습니다. 드디어 발견했습니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가 듬성듬성한 봉분 3개였습니다. 농가 가건물에 강아지까지 묶여서 짖어대던 곳에 있던 봉분 3개의 주인공은 바로 연남생, 연헌성, 연비 등 연개소문 후손들의 무덤이었습니다. 1920년대에 비석이 출토됐고, 지난 2005년에 정확한 무덤의 위치를 찾았지만 지금은 그냥 방치된 채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답사단은 왜 이 초라한 무덤, 아니 민족반역자 연남생 일가의 무덤을 찾았을까요, 이번 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주제는 ‘민족반역자..
선화공주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 서동(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무왕조’에 등장하는 설화다. 서동이 경주 시내에 동요를 퍼뜨려 평소 연모했던 공주를 얻은 뒤 익산에 공주를 위한 절(미륵사)를 지었다는 설화를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2009년 1월 이 철석같은 믿음이 깨졌다. 미륵사지 서탑에서 ‘절을 세운 이는 좌평(16관등 중 첫번째)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왕후’라고 새긴 사리봉안기를 발견한 것이다.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가 절의 주인공이라면 내용은 새빨간 거짓이라는 얘기다. 역사고고학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안타깝지만 ‘선화공주=가공인물’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미륵사가 3개의 절을 합친 구조라는 점을 착안한 색다른 주장도 제기됐다. 동·서의 절은 백제 출신인 사택왕후가, 가운데 절은 ..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애틋한 사랑이야기 서동(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무왕조’에 등장하는 설화다. 서동이 경주 시내에 동요를 퍼뜨려 평소 연모했던 공주를 얻은 뒤 익산에 공주를 위한 절(미륵사)를 지었다는 설화를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2009년 1월 이 철석같은 믿음이 깨졌다. 미륵사지 서탑에서 ‘절을 세운 이는 좌평(16관등 중 첫번째)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왕후’라고 새긴 사리봉안기를 발견한 것이다.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가 절의 주인공이라면 내용은 새빨간 거짓이라는 얘기다. 역사고고학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안타깝지만 ‘선화공주=가공인물’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미륵사가 3개의 절을 합친 구조라는 점을 착안한 색다른 주장도 제기됐다. 동·서의 절은 백제 출신인 사택왕후가, 가운데 절은 ..
임금의 이름을 외자로 지은 까닭은 역사서를 읽으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대체 임금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래서 이름을 찾아 보면 또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 임금의 이름은 외자일까. 다시 임금의 한자 이름을 찾아보면 또다른 궁금증이 피어납니다. 임금의 한자이름은 왜 이렇게 한결같이 어려울까. 그렇습니다. 임금의 이름은 절대다수가 외자였으며, 그것도 어려운 한자만 골라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왕조시대 임금이나 황제의 이름을 둘러싼 갖가지 사연들을 풀어 놓으려 합니다. 여기에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씨가 담겨있습니다. 중국 황제를 사대(事大)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꿔야 했던 가슴아픈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팟캐스트 65회 주제는 ‘임금의 이름을 외자로 지은 까닭은?’ 입니다. “에서는 존귀한 사람과 친한 사람, 어진 사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