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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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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선생이 동의보감 쓴 진짜 이유 지난 1991년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이북 파주시 장단에서 두동강 난 비석이 발견됐습니다. 동양의 의성 허준 선생의 무덤이었습니다. 서지학자가 10년 가까이 신분을 숨겨가며 찾아낸 것입니다. 도굴꾼에 의해 파헤쳐졌지만 두동강난 비석에는 ‘陽平○ ○聖功臣 ○浚’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었습니다. 허준 선생이 누구입니까.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독학을 의술을 공부한 분입니다. 정치색이 없었으며 오로지 임금과 백성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천생 의사였던 셈입니다. 뭐니뭐니해도 허준 선생의 특등 공적은 저술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오는 637개의 향약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서 백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의보감 편찬..
'낮퇴계 밤토끼' 퇴계의 부부관계론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을 대표하는 도학자입니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며 인간의 욕망을 없애는(存天理 滅人慾) 학자라는 소리죠. 그래서 퇴계 선생을 두고 공자와 주자의 맥을 잇는 성인이라는 뜻에서 이자(李子)라 높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민간에 전승된 구비설화를 보면 퇴계는 음담패설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니 말입니다. 뭐 ‘낮퇴계, 밤토끼’니 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퇴계 선생은 심지어 “부부관계란 너무 점잖게 하면 안되는거야. 비바람 치듯 요란하게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퇴계를 둘러싼 요절복통의 음담패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참으로 반전 캐릭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퇴계 선생에게 이런 음담패설이 집중되는 걸까요. 평소 “부부란 ..
간신과 혼군은 영원한 콤비다 얼마 전 여권에서 간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뭐 ‘한번 간신은 영원한 간신이니, 비루한 간신이니, 입안의 혀처럼 구는 간신이니’ 하는 사나운 말이 나왔습니다. 이왕 간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신에 담긴 모든 사연을 한번 담아보겠습니다. 살펴보니 간신이라는 낱말과 세트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혼군(암군) 혹은 폭군입니다. 간신과 혼군(암군, 폭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를 쓴 편찬자들은 ‘간신열전’을 집필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간신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현명한 임금이 있으면 간신들이 술수를 부릴 수 없었다”고…. 한때 ‘개원지치’의 태평성대를 구가한 당 현종은 명재상 한휴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휴 때문에 백성..
백제왕의 수수께끼 담긴 규슈 백제마을 골프 여행으로는 가벼운 발걸음이리라. 비행기로 불과 1시간30분 거리인 ‘따뜻한 남쪽나라’여서 그럴까. 친구끼리, 부부끼리…. 1월24일, 한 겨울 금요일 낮 인천발 미야자키행 비행기는 골프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만원사례였다. 미야자키 공항 한편에 산더미처럼 쌓인 수 십 개의 골프가방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북새통을 뚫고 백제왕의 전설이 숨쉬는 난고손(南鄕村)의 ‘구다라노사토(百濟の里)’, 즉 백제마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렸지만, 체감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규슈 산맥 끝자락의 심산유곡을 휘감는 산길을 돌고 돌아가는 여정…. 굽이굽이 흐르는 고마루(小丸) 강을 따라 한 1시간30분 정도 갔을까. 저만치에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걷고 있는 마츠리(お祭り) 행렬이 보였다. ‘미카..
'떠나볼까' 여행을 결행한 조선의 여인들 꽃피운 봄이 왔습니다. 싱숭생숭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나 과거의 여성들에게 담장 밖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에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부녀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여성들은 훌훌 떠났습니다. 제주 출신 김만덕은 임금의 허락까지 얻고 임금이 내린 특전까지 누리며 나름 호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또 한 분이 계십니다. 김금원이라는 원주 여인입니다. 기녀출신은 김금원은 불과 14살의 나이에 남장차림으로 호서지방-금강산-관동8경-설악산-한양 등을 유람한 전문여행가였습니다. 여행만 다니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음풍농월했고 훗날엔 그렇게 지은 시까지 묶어 기행문까지 썼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7..
그녀, 최초의 여성시단을 이끈 김금원 꽃피운 봄이 왔습니다. 싱숭생숭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나 과거의 여성들에게 담장 밖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에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부녀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여성들은 훌훌 떠났습니다. 제주 출신 김만덕은 임금의 허락까지 얻고 임금이 내린 특전까지 누리며 나름 호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또 한 분이 계십니다. 김금원이라는 원주 여인입니다. 기녀출신은 김금원은 불과 14살의 나이에 남장차림으로 호서지방-금강산-관동8경-설악산-한양 등을 유람한 전문여행가였습니다. 여행만 다니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음풍농월했고 훗날엔 그렇게 지은 시까지 묶어 기행문까지 썼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7..
과거 4수생 이규보의 궁색한 변명 ‘주필(走筆) 이당백(李唐白)’은 당나라 천재시인 이태백에 빗댄 고려 문인 이규보(1168~1241)의 별명입니다. 고려를 대표하는 천재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규보를 상징하는 이미지도 많습니다. 천재, 결벽, 대쪽, 주당, 풍류, 방랑, 광기, 운둔, 거사…. 대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짓는 등 평생 8000수의 시를 지은 인물이니 뭐 어떤 수식어라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규보는 당대 최고명문사학인 최충의 문헌공도를 다녔던 영재였습니다. 학창시절엔 문헌공도가 실시한 일종의 과거모의고사에서 거푸 1등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이규보도 생원·진사를 뽑는 과거시험(국자감시)에서 3번이나 거푸 떨어진 끝에 4번째 기회에 겨우 합격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3전4기 끝에 국자감시에 장원급제로..
올빼미 같은 인간…그 치욕적인 욕 요즘 남편들은 ‘오징어’라는 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그래서 뭐냐고 물었더니 ‘못생긴 남자’라는 뜻이랍니다. 왜 하필 ‘오징어냐’고 또 물으니 평면적이고 윤곽도 뚜렷하지 않는 오징어를 닮았으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고금을 통틀어 오징어 이미지는 좋지 않습니다. 그 어원이 ‘까마귀 도적’ 즉 오적어(烏賊魚)에서 비롯된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먹물로 바다를 흐리게 해서 먹이를 잡는다는 비열한 이미지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엔 선명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 흔적이 떨어져나가 나중엔 빈종이로 변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징어 먹물은 ‘사기계약’ ‘거짓약속’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오징어는 억울합니다. 그렇게까지 폄훼될 동물이 아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