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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에 놓인 생뚱맞은 서양제 대한민국 보물 언필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보·보물 가운데는 ‘외제’나 외제로 ‘의심되는’ 유물이 더러 있다. 지정 당시에는 조선초기 작품으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중국 원나라제로 판명된 ‘백자 유리홍 매화 국화무늬 병’(국보 제168호)가 그렇다. 1916년 평양 석암리 9호분에서 발굴된 ‘금제 띠고리’(국보 제89호)도 낙랑제로 알려졌으니 중국제라 할 수 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도 기록은 없지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중국에서 가져온 당나라제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천 강화 전등사 철종(보물 제393호)은 일제강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 과정에서 중국에서 가져온 북송시대(1097년)의 작품이라는 명문이 있으니 중국종이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인 청동투구...
봉황? 천계? 아니면 그냥 새? 입점리 금동장식의 정체 “어! 이게 뭐야.” 1986년 2월2일 오전 10시쯤 전북 익산 웅포면 입점리에 사는 고교 1년생 임모군이 마을 뒷산에서 칡뿌리를 캐다가 무덤 1기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무덤 안으로 들어간 임군은 금동제 관장식 등 깜짝 놀랄만한 유물을 수습했다. 임군은 4일후인 6일 익산시청 공보실에 신고했다. 이른바 입점리 고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 고교생의 신고 덕분이었다.입점리에서 출토된 금동제 삼각형 장식에 표현된 이른바 봉황문 도안. 벼슬이 더듬이처럼 표현됐고 양쪽 날개 깃털은 4가닥, 꼬리는 3가닥, 2개의 다리, 3개의 발톱이 새겨져 있다. 학계일각에서는 상상의 새를 의미하는 ‘3족 봉황문’이라 했지만 ‘2족’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영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제공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최..
불편한 진실, 조선판 '미투' 가해자의 사건 그후 ‘성희롱범에게 곤장 80대를 선고한다.’ 2012년 7월 필자는 ‘조선의 성범죄, 어떤 처벌을 받았나’라는 기사에서 을 인용했다. 1438년(세종 20년) 8월1일 에 기록된 성범죄 사건의 요지는 ‘성균관 유생 둘이 옷을 벗고 목욕하다가 지나던 여인을 덮치려 했지만 여인이 도망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요지였다. 사헌부 수사 결과 문제의 유생 둘 중 실제 여인을 덮친 유생에게 장 80대의 형을 내렸다. 당시 조선은 모든 범죄의 판결에 1367년 제정된 명나라 형법()을 따랐다. “무릇 화간(和姦)은 장 80대, 남편이 있으면 장 90대이다. 조간(勺姦·여자를 유괴한 뒤 간음)은 장 100대이고, 강간한 자는 교수형에 처한다. 강간미수죄는 장 100대에 유배(流) 3000리에 처한다.”( ‘형률·..
'적국의 수괴, '적의 장교'를 도륙하겠다고 선언한 이봉창 윤봉길 의사 선서문 “나는 적성(赤誠·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서울의 제과점 점원, 만주의 운전견습생 및 철도원,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직공, 잡역부, 날품팔이 등을 가리지 않고 일본인 행세를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가 있었다. 바로 이봉창(1900~1932년) 의사였다.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적국의 수괴(일왕 히로히토)를 도륙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하오리(일본식 남자옷)에 게다짝까지 질질 끌고다니는 이봉창이 상하이 임정 건물을 출입하자 사람들은 “백범 선생은 왜놈 행색의 저런 자를 그냥 두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기노시타 쇼조(木下昌..
명사수 정조가 정약용에게 '지옥 훈련 캠프 입소'를 명한 까닭 50발중 49발 명중이 모두 10차례. 한번은 100발 쏘아 98발 명중…. 이것은 이순신 장군이나 태조 이성계의 활솜씨가 아니다. 문체반정을 주창한 문예군주라는 정조 임금의 활쏘기 솜씨이다. 정조의 활쏘기 점수가 다름아닌 에 아주 자세히 기록됐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을 보면 정조는 1792년(정조 16년) 10~12월 사이 춘당대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활쏘기 행사를 벌인다. 왜 유달리 이무렵에 집중된 것일까. 정조는 “과인이 활쏘기를 원체 좋아했고 그것이 가문의 법도여서 젊은 시절에는 즐겼지만 최근 10~20년 사이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1792년 10월12일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 을 보면 10월에는 32발(17일)~47발(26일)이던 것이 30일 49발이 된 이후 가히 신궁의..
"'철의 왕국'이 가야가 아니다. 신라였다" 이번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23회의 주제는 ‘철의 왕국은 어디었나’입니다. 이미 새해 초에 지면 기사로는 소개했는데요. 이번에 팟캐스트 용으로 재정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야=철의 왕국’의 지위가 확고했는데요. 그 근거는 3세기 역사서인 ‘동이전·한조’의 ‘나라(國)에서 철(鐵)이 생산된다(出)’는 기사였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철을 한(韓·마한)과 ‘예(濊)’, 왜(倭)가 수입해갔고, 또 2군(낙랑·대방군)에도 공급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중국의 돈을 사용하듯 모두 철을 거래수단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철의 왕국’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졌죠 3세기 중국 역사가 진수가 편찬한 '위지 동이전 한조'. '철이 생산되는 나라'를 헷갈리게 서술했다.,..
상감청자 바닥에서 확인된 비밀문양. 국화형 꽃무늬 국보 상감청자 사발의 바닥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꽃무늬가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드러났다.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전(대고려-찬란한 도전)에 전시중인 국보 제115호 청자 상감 국화넝쿨무늬 완(碗·사발)을 CT 촬영한 결과 바닥에서 국화형태의 꽃무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사발 밑바닥에 새겨져있던 꽃무늬 상감. 바닥에 고여있던 유약층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번 CT촬영 덕분에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분석결과 그릇 내부(0.53㎜)와 외부(0.40㎜) 유약층 두께는 비슷하지만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두꺼워지고(1.00㎜), 내부 바닥에는 아예 유약층이 고여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영범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청자 사발 바닥에 고여있던 유약층 때문에 가려..
이승만은 망가진 ‘미인 석탑’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대체 저게 어찌 된 것이요.” 1957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월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대통령과 경복궁 내 경회루 산책에 나선 이승만대통령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산산조각 난채 방치된 흉물스러운 탑 한 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외국정상과 함께 보았으니 얼마나 큰 망신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노기가 하늘을 찌르자 부랴부랴 방치된 탑의 복원에 나섰다. 한국전쟁 때의 폭격 유탄에 맞아 무려 1만2000조각으로 산산조각난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이후 여러차례 복원 수리 과정을 겪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문제의 탑은 바로 원주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었다. 원주 부론면을 떠나 서울-일본 오사카를 거쳐 원래의 자리인 원주로 가지못한채 서울 경복궁 한편에 서있다가 한국전쟁 때인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