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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상잔의 뿌리 “신과 고구려는 모두 부여 출신입니다(臣與高句麗 源出扶餘). 그런데 시랑(豺狼·승냥이와 이리), 장사(長蛇·큰 뱀)가 길을 막아…. 추류(醜類·추악한 무리)가 성해져서…. 소수(小竪·더벅머리 어린애)가….”( ‘개로왕조’) 472년. 백제 개로왕이 중국 북위 황제에게 장문의 표(表·외교문서)를 올린다. 요컨대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있는 시기(是滅亡之期)이니 백제와 북위가 손을 잡자”는 것이었다. ‘삼국시대판 위키리크스’의 폭로였을까. 문서에는 백제와 북위 간 외교의 전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리와 승냥이’ ‘추악한 무리’ ‘큰 뱀’은 모두 고구려를 욕하는 표현이다. ‘더벅머리 어린애’는 장수왕을 지칭한 것이다. 하기야 어디 백제뿐이랴. 고구려도 백제를 ‘백잔(百殘)’, 즉 백제의 잔당으로 비하..
고구려군의 짬밥 “좋은 밭이 없다. 힘들여 밭을 갈아봐야 수확이 충분치 못하다. 배가 고프다. 고로 사람들은 음식을 절약한다(無良田 雖力佃作 不足以實口腹 故其人節食飮).”( ‘위서·동이전’, ‘열전’ 등) 중국 역사서는 죄다 고구려를 ‘배고픈 나라’로 표현하고 있다. ‘큰 산과 깊은 계곡이 많기(多大山深谷)’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품이 흉악하고 급해서 노략질을 즐기며, 전투를 익힌다”(, )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더 꼬집었다. “농사를 짓지 않은 채 앉아서 밥을 먹는 자(坐食者)가 1만호나 됐다”()는 것이다. 비참한 일이다. 백성들이 배를 곯고, 고관대작들은 무위도식하고 있었다니…. 그러나 후세의 연구자들은 ‘고구려의 헝그리 정신’으로 미화했다. 배고픔을 ‘헝그리 정신’으로 이겨내며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벌였다는 것이..
성애의 나라 신라? “진흥왕의 태자(동륜)은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를 연모했다. 태자는 마침내 궁주의 담을 넘어 관계를 맺었다. 얼마 후, 태자가 밤중에 홀로 보명궁의 담장을 넘다가 큰 개에 물려 죽고 말았다.” 1989과 1995년. 김대문(金大問)이 7세기 말 편찬했다는 ‘화랑세기’의 발췌본과 필사본이 잇달아 발견됐다. 필사한 이는 한학자 박창화(1889~1962)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궁내청에서 일하던 중 의 원본을 보고 베꼈다는 것이다. 는 540~681년 사이에 활약한 화랑의 우두머리(풍월주) 32명의 전기다. 이 책은 540~681년 화랑의 우두머리(풍월주) 32명의 전기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가짜’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야말로 끝을 모르는 ‘어색(漁色·물고기를 사냥하는 듯한 엽색행..
공자는 가수다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인 에 200만명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리고 이 오디션에는 최고의 가수이자 작곡가가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하지만 아무리 타고난 ‘심사위원’이자 ‘멘토’일지언정, 공자님을 따를 수 있을까. 공자가 사양자(師襄子)로부터 거문고를 배웠을 때였다. ‘연주법’과 ‘곡조’를 차례로 터득했다. 그런 다음 ‘곡중(曲中)의 주인공’을 알아차렸다. “피부는 검고, 눈은 빛나고 사방 제후국을 바라보는 원대한 분…. 바로 문왕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성인(聖人)이십니다. 이 곡은 주나라(기원전 1046~771) 창업주 문왕의 덕을 칭송한 문왕조(文王操)입니다.”(사양자) 공자는 거문고와 경(磬·타악기), 노래에도 통달했다. 요즘으로 치면 기타와 드럼은 물론 보컬까지 소화하는 만능 뮤지션이었던 ..
군자불사의 나라 “왕은 술과 음악에 빠졌으며(好酒淫樂) 여자까지 좋아했다.” 는 상나라(기원전 1600~1046)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한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처럼 꾸몄다(以酒爲池 縣肉爲林). 그 안에서 벌거벗은 남녀들로 하여금 서로 쫓아다니게 했다.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使男女裸 相逐其閒 爲長夜之飮).”( ‘은본기’) 악명 높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사실이라면 이런 나라는 망해도 싸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동이의 후예인 상나라는 본디 하늘과 조상을 섬기는 전통으로 유명했다. ‘표기(表記)’는 “은(상)나라는 신을 존숭하고 귀신을 섬겨 백성을 통치한다(殷人尊神 率民以事鬼)”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군주인 주왕 때에 이르러 전통을 잃어버린다. “..
못말리는 동이족의 술사랑 “이건 술이야.” 1974년 초겨울.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핑산(平山). 전국시대(BC 475~BC 221) 중산국(中山國)의 왕릉터에서 흥미로운 유물1만9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액체가 가득 찬 병들이 다수 보였다. 조심스레 분석하던 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곡주(穀酒) 성분이 분명했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2300년 된 술이었다. 예로부터 중산국의 술은 전설로 남을 만큼 유명하다. 중산국에 적희(狄希)라는 술의 명인이 있었다. 그가 만든 ‘천일춘(千日春)’은 대륙을 풍미했다. 어느 날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자가 적희를 찾아왔다. “술맛 한번 보게 해주시면….” 적희가 “아직 숙성이 덜 됐다”고 말렸다. 하지만 유현석은 막무가내로 마셔버렸고, 술에 취해 죽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이 ..
2000년 전 백제인의 발자국 “응? 이거 뭐야?” 1999년 8월 어느 날. 풍납토성 성벽을 잘라 조사하던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은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누군가 뻘층에 남긴 발자국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양생 중인 콘크리트에 실수로 발자국을 찍은 것이죠. 백제는 최소한 2차례 이상에 걸쳐 풍납토성을 완성했는데요. 발자국이 찍힌 곳의 연대측정 결과 늦어도 AD 200년 쯤으로 측정됩니다.”(당시 신종국 학예사) 그러니까 적어도 1800년 전 한성백제인의 발자국인 것이다. 발자국은 폭 12㎝, 길이 36㎝ 정도됐다. 뻘을 밟으면서 밀려 실제의 발 크기보다 크게 나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발자국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였을까. 풍납토성은 한성백제(BC 18~AD 475년)의 왕성으로 지목된 곳이다. 백제 시조 온조..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대담 | 이종탁 사회에디터·정리 | 최승현 기자 ㆍ“직무정지 혼란 정리될 것… 동계올림픽 유치 전력” 위기의 이광재는 의외로 담담했다. 정치자금법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2심에서 금고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아 도지사직 수행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 속에서도 “척박한 강원도를 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들겠다”며 도정 구상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영호남을 제외하고 가장 압도적 표차로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며 친노세력의 부활을 견인한 그는 “이명박 정부가 갈등이슈를 추진하기엔 이미 힘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고 단언했다. 그는 “ ‘과잉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식의 잘못된 관념을 깨지 않는다면 소통부재와 억압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 견제심리가 작동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잇따른 방송중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