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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당나라의 바둑전쟁 “온종일 배불리 먹고 마음 쓸 데가 없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박혁(바둑과 장기)이라는 게 있지 않으냐. 그걸 하는 게 그래도 현명한 일이다(不有博혁者乎 爲之猶賢乎已).”( ‘양화’) 공자님 ‘말씀’이다. 무위도식 하느니 바둑·장기로 마음을 다잡으라는 말이다. 기원전 5세기대의 말이다. 바둑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한·중 간 바둑 대결의 뿌리도 깊다. 738년 봄, 신라 효성왕 때의 일이었다. 당나라 현종이 사신을 파견하면서 신신당부했다. “신라는 군자의 나라란다. 중국과 견줄 만하다는구나. 그들에게 대국의 유교가 융성함을 자랑하라.” 또 하나 당부를 곁들였다. “당나라 바둑실력을 뽐내고 오라”는 것이었다. “(현종은) 신라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고 하여(以國人善碁) (바둑을 잘 두는) 양계응(..
1273년 전 나 당 바둑대결-한 중 반상대결의 효시 “온종일 배불리 먹고 마음 쓸 데가 없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박혁(바둑과 장기)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 그걸 하는 게 그래도 현명한 일이다.(不有博혁者乎 爲之猶賢乎已)”( ‘양화’) ■“노느니 바둑이라도 두어라” 먹고 노느니 바둑·장기로 마음을 다잡으라는 말이다. 기원전 5세기를 풍미했던 공자님 ‘말씀’이다. 바둑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기야 등 중국문헌은 “이미 요(堯)임금이 바둑으로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쳤다”고 기록했으니…. 바둑은 이후 다양한 이름을 얻었다. ‘난가(爛柯)의 전설’(“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지 모른다”)에 등장하는 ‘신선놀음’은 바로 바둑을 뜻한다. 또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 해서 ‘수담(手談)’, ‘앉아서 은둔한다’는 뜻의 ‘좌은(坐..
한산모시까지 세계유산? 한산모시, 택견과 줄타기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 등재 택견과 줄타기는 물론 한산모시가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반면 중국의 쿵푸는 등재보류 판정을 받음으로써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28일 6차 위원회를 열어 한국이 등재 신청한 6건 중 이들 3건을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했다. 택견과 줄타기는 이미 사전 심사 단계에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유네스코 관례상, 그리고 이번 회의 등재 경향을 볼 때 등재가 확실시됐다. 이로써 한국의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은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필두로 2003년 판소리, 2005년 강릉단오제, 2009년 강강술래·남사당놀이·영산재·제주 칠머리당영등굿·처용무, 지난해 가곡·대목장·매사냥에 이어 모두 14건이 됐다. 특히 택견은 세계 전통무예 가운데 첫번째로 인류무형유산에 올랐다. ..
추첨민주주의 갑골민주주의? 지난 2008년 6월. 한성백제 왕성인 풍납토성 발굴현장에서 의미심장한 유물들이 나왔다. 하나는 부여계 은제귀고리 장식편이었다. 다른 하나는 소의 견갑골에 점(占)을 친 흔적이 완연한 갑골(甲骨)이었다. 는 “백제의 세계(世系)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나왔다(世系與高句麗同出扶餘)”고 기록했다. 상나라시대 갑골 또 ‘위서·동이전’은 “부여와 고구려는 소를 잡아 그 굽으로 길흉을 점친다”고 했다. 이 발굴은 백제도 조상의 나라인 부여와 함께 갑골로 점을 쳤다는 사실을 입증시켜 준 것이다. 어디 고구려·백제 뿐인가. 박혁거세의 아들인 신라 2대왕 남해 차차웅(次次雄)’은 아예 ‘무당’이었다. 는 “차차웅은 무당이란 말의 사투리”라고 기록했다.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두려워..
무인(巫人), 혹은 무당 한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는 점(占)을 끔찍이 사랑했다. 어느 날 무제가 며느리를 들일 날짜를 잡고 역술인 7명을 불렀다. 한데 7인7색이었다. 오행가는 “좋다(可)”고 했고, 풍수가는 “안된다(不可)”고 했다. 12진과 오행을 연결시켜 점친 자는 “아주 흉하다(大凶)”고 했다. 지루한 논쟁이 벌어졌다. 골머리를 앓던 무제는 “사람은 오행(五行)에 따라 살지 않느냐”며 오행가의 손을 들어줬다. 한 문제(기원전 180~157) 때의 일이다. 송충(宋忠)과 가의(賈誼)가 ‘용하다’는 점쟁이(사마계주)를 찾았다. 사마계주(司馬季主)는 과연 길흉의 징험을 꿰뚫고 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선생님같이 어진 분이 왜 이런 천한 일을 하십니까. 점쟁이는 과장된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거나 상하게 ..
전국시대 최효종과 ‘풍자개그’ 전국시대 초나라에 우맹(優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초나라 재상 손숙오(孫叔敖)가 죽고, 손숙오의 집안은 곧 곤궁에 빠졌다. 우맹이 나섰다. 손숙오의 의관을 걸치고 행동과 말투를 흉내냈다. 가히 ‘인간복사기’였다. 초 장왕도 “손숙오가 다시 살아온 것이냐”며 당장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우맹은 ‘아내의 말’이라면서 재상직을 거절한다. “제 아내가 신신당부했습니다. 제발 초나라 재상은 되지 말라고…. 손숙오라는 분을 보라고…. 재상이 죽으니 그 자손들은 송곳 하나 세울만한 땅도 없어지지 않냐고…. 손숙오처럼 될 바에는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낫다고….” 그제서야 우맹의 뜻을 알아차린 장왕은 손숙오의 자식들에게 400호의 봉지를 내려줬다. 제나라에는 순우곤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초나라..
세워라!(立)세워라!(立)세워라!立 “망측스럽게….” 2000년 4월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주변 웅덩이에서 야릇한 유물이 출토됐다. ‘남근(男根)’목간이었다. 길이가 22.6㎝(두께 2.5㎝)나 됐다. 목간의 밑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다듬었고, 그것도 모자라 구멍까지 뚫었다. 한쪽 면에는 ‘천(天)’자와 ‘무봉(无奉)’자가 서로 방향을 거꾸로 해서 새겨져 있었다. 다른 한면에는 ‘道立立立’이라는 글자가 확연했다. 땅을 향해 새겨진 ‘天’은 무엇인고? 또 남근 목간에 ‘立’을 세 번이나 반복한 뜻은? 이것은 ‘세워라(立·서라)!세워라(立·서라)!세워라(立·서라)!’라는 뜻이 아닌가. 대관절 이 무슨 망측한 소리인가. 목간이 발견된 곳은 백제 각 지방에서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나성의 대문 및 중심도로와 아주 가까웠다. 그야말로 백주대로에서 이상..
궁정동 안가와 파가저택 조선시대 때 ‘파가저택(破家저澤)’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죄인을 극형에 처한 뒤 그 집을 헐고, 집터에 연못을 팠던…. 대역죄나 존속살인 등 삼강오륜을 위배한 강상죄인(綱常罪人)에게 부과된 형벌이었다. 풍운아 허균(許筠·1569~1618)과 천주교인 유항검(柳恒儉·1756~1801) 등이 바로 능지처참과 함께 파가저택의 형을 받았다. 형벌의 뿌리는 춘추시대 주루국(婁國)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루국의 정공(定公) 때 아비를 시해한 자가 있었다. 정공은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아들이 아비를 죽이면 용서없이 죽인 뒤 그 집을 허물고 집터를 파서 연못으로 만든다’고 했다.”( ‘단궁 하’) ‘주루국’은 동이계의 터전이었던 산둥성(山東省)에 존재했다. 주루국이 있었던 추(鄒)와 노(魯) 땅은 공자와 맹자가..